다른 딸 아니 에르노 컬렉션
아니 에르노 지음, 김도연 옮김 / 1984Books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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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와의 만남은 대개 약간의 심적 충격을 동반한다. 나를 포함한 독자들 대부분은 작가의 솔직함에 놀라고, 그런 글을 쓸 수 있는 대범함에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 번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자신의 작품세계를 규정하는 작가이니만큼 그녀에게 있어 솔직함이란 그저 평일에 입는 일상복처럼 스스럼없는 어떤 것이겠지만, 어떻게든 자신의 치부를 가리고 좀 더 화려하게 자신을 치장하려는 많은 작가들의 글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아니 에르노라는 이름은 다만 하나의 돋을새김으로 기억될 뿐이다.

 

아니 에르노의 작품 중 내가 처음 읽었던 책은 <단순한 열정>이었다. 작가의 팬이 되기에는 그 한 권의 책만으로도 충분했다. 그 후 나는 <남자의 자리>, <한 여자> 등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그녀의 작품을 읽었다. '아니 에르노'는 그렇게 친숙한 이름이 되었다. 아니 에르노의 작품은 “개인의 기억 속에서 집단의 기억을 복원”하려는 사회학적 방법론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사회적 경험과 판단의 총합으로서의 자신을 객관적으로, 더없이 솔직하게 관찰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글로 포착하지 않는다면 정말 이상한 글이 되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당신은 언제나 죽은 사람이었어요. 내가 열 살 되던 해의 여름 어느 날, 당신은 죽은 채로 내 삶에 들어왔습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 스칼렛과 레트의 어린 딸 보니처럼 이야기 속에서 태어나고 죽은 거지요."  (p.13)

 

아니 에르노의 작품 <다른 딸>은 작가가 태어나기 2년 반 전에 죽은 언니 지네트에 대한 회상이다.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편지를 써달라는 출판사의 제안으로부터 출발한 이 글은 작가가 열 살 무렵 죽은 언니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게 된 순간부터 '언제나 죽은 사람'으로 자신과 함께 살았던 언니에 대한 부재와 존재의 탐구, 어머니로부터 사고로 죽은 언니에 대해 들었을 때의 불안과 혼란 등을 작가 특유의 유려하면서도 직설적인 문체로 담아내고 있다.

 

"내 시대가 시작되었을 때, 1945년 봄에 찍은 내가 나온 사진들에도 그들이 있습니다. 미소를 짓고 있지만 젊음이나 평온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씁쓸한 비애만 감돕니다. 얼굴에는 주름이 졌고, 피부도 탄력을 잃었지요. 그녀는 내가 오랫동안 봐왔던 줄무늬 원피스를 입고, 머리는 둥글게 말아 위로 틀어 올렸어요. 그들은 피난과 점령과 폭격을 겪었고, 당신의 죽음을 겪었어요. 아이를 잃은 부모인 겁니다. 당신이 거기 있어요. 보이지 않지만, 그들 사이에. 그들의 고통으로."  (p.47)

 

열 살의 어느 여름, 우연히 듣게 된 죽은 언니의 존재로 인해 외동딸로 살았던 십 년의 세월이 부정당하고, '나'를 선행한 '당신'이 존재했다는 것 자체로 인해 '나'는 탄생의 순간부터 '당신'의 그림자가 겹쳐진 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 '나'는 단순한 딸(One)이 아닌 다른 딸(The other)의 지위로 밀려났음을 알았다. 어느 날 갑자기 '다른 딸'이 된 '나'는 영영 비교의 대상이 되면서도, 존재하지만 끄트머리에서 탄생하는 대체품의 '나'는 부재하지만 불멸하는 '당신'을 영원히 넘어설 수 없었다.

 

"'당신'은 덫입니다. 숨 막히게 하는 무언가를 가진 채, 역겨운 슬픔의 냄새를 풍기며 당신에 대한 가상의 친밀감을 만들어내요. 나를 비난하려 가까이 다가오죠. 내가 존재하는 이유가 당신 때문이라고 믿게 하며, 당신의 죽음을 우위로 두어 내 존재 전부를 깎아내리려 합니다. 내가 그렇게 여기는 까닭은, 행복과 불행 사이에서 엄밀하게 저울질하여 만든 나에 대한 인식을 당신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완성할 수 있다는 유혹 때문이에요."  (p.71)

 

작가는 자신이 쓴 편지의 수신자가 '당신'이 아닌, '당신'만큼이나 보이지 않았던 독자라고 고백한다. 그러나 상상할 수 없는 신비한 아날로그 방식으로 '당신'에게 닿기를 소망한다. 자신 역시 수신자가 아니었던 이야기를 통해 '당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소식을 들었던 것처럼. '당신은 글쓰기로 채울 수 없는 텅 빈 형체'이지만 열 살 이후의 모든 삶에서 존재했던 불멸의 실존이기도 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가슴에 말할 수 없는 '당신' 한두 사람을 담고 평생을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그것의 시작이 열 살 무렵의 어느 여름 날일 수도 있고, 임종을 며칠 앞둔 어느 겨울 날일 수도 있겠다. 어떤 존재로 인해 자신의 고유성이 훼손되고, 넘어설 수 없었던 높디높은 벽으로만 존재했던 대상.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그것은 어둠 저편에 존재했던 또 다른 '나'가 아니었을까. 삶이란 '나'를 이기기 위해 끝없이 분투하는 과정이니까. 그리고 끝내 넘을 수 없는 대상 역시 바로 '나'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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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추, 말복도 지난 요즘도 말매미의 소음은 여전하다. 마치 거대한 모래바람의 소음이 한꺼번에 몰아치는 듯한 공원 한켠의 벤치에 앉아 오르한 파묵의 소설 <새로운 인생>을 읽었다. 지난 수요일부터 이어진 휴가. 고3 수험생 아들을 둔 나로서는 코로나 확산 국면이 오히려 반갑다. 핑계 김에 쉬어간다고 코로나를 핑계로 집안에 눌러앉은 나는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시도 때도 없이 잠을 자거나 하면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은 채 한껏 게으름을 피울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삶에 다만 하나의 나쁜 점이 있다면 이따금 시간의 경과를 잊는다는 것이다.

 

"책의 심연에 내려갈 수 없었고 자난의 진지함에 다다를 수 없었던 나는, 밤의 늦은 시간에 무엇인가를 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자난에게 시간이 가장 끔찍한 거라고 말했다. 우리가 시간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 여행을 나섰지만 이 사실을 알지는 못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출발했었고, 이 때문에 전혀 움직이지 않는 순간을 찾고 있었다. 그 어떤 것에도 비유할 수 없는 순간은 이 충만함이었다. 그것에 우리가 접근했을 때 어떤 탈출구가 있을 거라고 느꼈고, 이 믿을 수 없는 지역의 기적을 죽은 사람과 죽어가는 사람들과 함께 우리 눈으로 충분히 목격했었다. 아침에 우리가 뒤적이던 어린이 잡지에서, 책에 나오는 지혜가 온전한 상태로 가장 어린애 같은 형태로 존재했고 우리는 이제 머리를 사용하여 그것을 파악했어야 했다. 저편에는, 저 먼 곳에는 그 아무것도 없었다."  (P.210)

 

'어느 날 한 권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나의 모든 인생이 바뀌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우리의 내면을 건드리는 오르한 파묵의 장난기, 혹은 알쏭달쏭한 말장난으로 인해 한낮에도 잠이 솔솔 오게 만드는 신비한 힘을 지녔다. 이럴 때 파인만의 <강의>를 읽는다면 수학적 논리의 명쾌함에 눈이 번쩍 뜨일지도 모른다. 한 발 더 나아가서 '수학이 가장 쉬웠어요.'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다만 생각으로 그칠 뿐 실수로나마 입 밖으로 내뱉어서는 곤란한 지경에 처할지도 모른다.

 

바람이 불고, 한낮의 더위도 견딜 만한 수준으로 떨어진 요즘.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변화에 어리둥절 놀라는 눈치. 책에서 눈을 떼면 말매미의 소음이 귀를 먹먹하게 한다. 비가 내리려는지 두터운 습기가 온몸에 척척 감겨온다. 모공을 뚷고 들어오는 습기의 틈새로 앚었던 그리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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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 그 여자의 부엌 - 부엌에서 마주한 사랑과 이별
오다이라 가즈에 지음, 김단비 옮김 / 앨리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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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이란 소재의 적합성이 아니라 작가 개인의 역량에 달려 있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오다이라 가즈에가 쓴 <그 남자, 그 여자의 부엌>을 읽으면서 특별하지도 않은 그 사실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작가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부엌을 소재로 인생의 희로애락과 삶의 의미를 자연스레 끄집어내고 있었다. 부엌에 대한 취재라고 한다면 우리는 으레 독특한 취향의 부엌 인테리어나 남들은 모르는 요리 비법 몇 가지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나도 그랬다. 부엌이라는 공간에서 드러나는 안주인의 취향과 부엌을 배경으로 찍은 행복한 가족사진이 다이겠거니 생각했는데 나의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책의 분위기는 군더더기 없이 매끈하고 자연스러웠다. 어느 것 하나 도드라지지 않고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서 작가는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자했을 터였다. 어쩌면 삶의 곁다리가 될 수도 있는 부엌 인테리어와 요리 비법에 집중하지 않고 부엌이라는 공간에 묻은 시간의 흔적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꼭 닮은 부엌의 형태와 기능에 집중함으로써 집주인의 삶과 인생관을 알 수 있도록 한다.

 

"잡지에 실리는 근사한 부엌에서는 웃음과 단란함과 맛있는 음식이 그려진다. 그러나 살다보면 맛있는 음식을 만들 기분이나 몸 상태가 아닐 때도 있다. 그곳에는 뜻대로 되지 않는 사정과 이야기가 있다. 내가 보아온 바로는 어떤 부엌에나 아주 약간의 애절함과 애달픔이 섞여 있다. 생활이란 그런 것이다." (p.7)

 

2013년 1월부터 지금까지 매주 '아사히신문' 웹진 '&w'에 도쿄에서 생활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부엌을 찾아가 생활감 가득한 풍경과 일상의 이야기를 연재해오고 있다는 작가는 <그 남자, 그 여자의 부엌>에서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내세우고 있다. 55세의 1인 가구 여성을 비롯하여 21세의 아들과 함께 사는 46세의 여성 회사원, 63세의 아내와 함께 사는 73세의 남편, 물담배가게를 운영하는 38세의 독신 남성, 13세의 딸과 49세의 프리랜스 여성 편집자,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생활하고 있는 92세의 할머니 등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연령도, 직업도, 심지어 성적 취향도 제각각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자신뿐만 아니라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을 끔찍이 사랑한다는 점이다.

 

"그날그날의 작은 일상을 야무지게 살아간다. 밥을 안치고, 국물을 내고, 된장국을 끓인다. 병원에 가서 특별한 치료를 받거나, 돈을 들여 답답한 마음을 풀러 여행을 가거나, 어려운 책을 읽지 않아도, 사람은 자신의 힘으로 자신을, 마음을 회복할 수 있다. 부엌에 서면서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과 마주하고 잃어버린 시간과 대치했다. 그리고 지나간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부엌은 그녀에게 상처 입은 마음을 고치는 치료실이기도 했던 모양이다." (p89)

 

자신의 삶의 형태가 세월에 따라 변해가는 것처럼 가족의 삶을 지탱하는 부엌도 그 구성원의 변화를 고스란히 반영하게 마련이다. 남편과 이혼한 후 장성한 아들과 함께 살면서 크게 바뀌었을 수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을 가족으로 맞아들이면서 달라졌을 수도 있고, 세상을 떠난 남편을 기리며 부엌 한켠에 전에는 없던 남편의 불단을 마련할 수도 있다. 작가의 눈에는 그 모든 것들이 삶을 구성하는 더없이 소중한 변화들로 비친다.

 

"나는 그 바지런한 모습에서 긍지와 자부심 같은 것을 느꼈다. 그것은 말로는 표현하기 어렵다. 세 자녀를 길러내고, 다섯 식구를 부엌에서 보살펴온 어머니만이 갖는 자신감. 자녀들은 저마다 독립하고, 다시 둘이 된 부부가 함께 느끼는 평화로운 성취감. 그렇게 말하면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요, 하며 웃을 게 뻔하다. 하지만 이 다이닝 키친에는 내가 알고 싶은 인생의 힌트가 잔뜩 숨어 있다. 본인들이 눈치채지 못할 뿐이다. 대개 행복이라는 것은 그 한복판에서는 실감하기 어렵고, 지나고 나서야 그것이 행복이었음을 깨닫는 법이니까." (p.52)

 

책에 소개된 열아홉 곳의 부엌은 저마다의 비밀을 간직한 채 어떤 식으로든 삶을 유지하도록 하는 생명의 원동력인 동시에 가장 상처 받기 쉬운 내밀한 속살과도 같다. 작가는 그들의 속마음을 듣기 위해 해가 바뀌는 동안 몇 번이나 같은 집에 드나들었고 그러는 사이에 가족 구성원이 달라지기도 하고 삶의 애환이 부엌 곳곳에 스며들기도 했다. 그러나 삶이 계속되는 한 또다시 부엌에 서서 한 끼의 식사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삶은 이처럼 끝도 없이 반복되는 지루한 연속일지도 모른다.

 

"거리를 걷다 뜻밖에 그 옛날 연인과 나란히 앉았던 카페나 약속 장소였던 서점 앞을 맞닥뜨려 가슴을 꽉 조여올 때가 있다. 끝났다고 믿었던 사랑의 상처가 미세하게 벌어져버리는 탓이다. 사람들의 부엌에도 닮은 구석이 있다. 연인의 잔향을 말끔히 지웠다고 생각했는데, 쓰다 만 발사믹 식초나 도시락통, 위스키병 하나에 문득 잊었던 쓰라림이 되살아난다." (p.263)

 

정말 그렇다. 사랑하던 사람이 떠나고 동그마니 홀로 남겨진 부엌은 왠지 모르게 쓸쓸하다. 과거의 기억들이 사용하던 수저에, 밥그릇에, 물컵에 지문처럼 남아 있다가 문득문득 사람들의 가슴을 한바탕 헤집어놓곤 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앞으로 나아갈 결심을 할 수 있는 건 우리 곁에는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과거와 현재가, 또는 미래가 서먹서먹한 얼굴로 조우하는 곳, 부엌은 그런 곳이다. 누군가 곁에 없어도 차 한 잔을 앞에 놓고 자신과 스스럼없이 대화할 수 있는 곳. 그러므로 부엌은 마법의 공간이자 위로의 공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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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가 하나의 지구촌으로 변모하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 한민족 운운하면 '옛날 사람' 취급을 당할 수도 있겠으나, 동양의 섬과 같은 이 작은 나라에서 세계를 놀라게 하는 커다란 성과를 이룰 때마다 같은 한민족이라는 자부심과 함께 나는 왠지 모르게 가슴 뿌듯한 감동도 함께 느끼는 것이다. BTS의 버터가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에서 9주간 1위를 달리며 올해 최장 1위 기록을 세웠을 때도, LG화학의 배터리가 전 세계 시장을 석권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을 때도, 국내 조선업이 전 세계 선박 수주 1위를 달성했다는 뉴스를 들을 때도...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과 민간기업의 탁월한 능력과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극우 세력과 맥을 같이 하는 일부 친일 세력의 준동을 목격할 때마다 저들은 도대체 어떤 사고방식의 소유자인가 내심 궁금해지는 것이다. 어제는 MBC의 PD수첩을 보면서 깊은 한숨을 몰아쉴 수밖에 없었다. '부당거래 - 국정원과 日 극우'라는 제목의 금회 방영분에서 국가정보원과 일본 극우단체의 은밀한 거래 정황을 단독 공개했던 것인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대한민국의 최고 정보기관이자 정부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정원은 일본의 식민지 단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며 이에 동조하는 몇몇 인사들 역시 제국주의 일본의 신민이라고 단정할 수밖에 없다. 방송에 따르면 이명박 시절의 국정원은 일본의 혐한단체에게 금품을 제공했던 것은 물론 북한에 대한 극비 정보를 제공하는가 하면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합의 역시 국정원의 주도로 이루어졌다고 했다. 게다가 독도나 위안부 관련 인사가 일본을 방문할 시 일본 공안에게 그 정보를 알렸고 일본 공안은 그들의 극우 세력인 혐한단체에 정보를 제공했다고 하니 국정원은 과연 일본의 기관인지 대한민국의 기관인지...

 

일본의 신민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대한민국의 몇몇 인사들의 인터뷰도 실렸는데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그들은 과연 일본이 제공하는 돈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진심으로 일본의 신민이 되고자 하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다가오는 일요일은 제76주년 광복절. 태극기를 흔들며 제 나라의 대통령만 욕을 할 게 아니라 일본의 혐한단체와 이에 동조하는 대한민국의 몇몇 일본 신민을 욕하고 비난하는 게 광복절을 기념하는 취지에도 맞고, 대한민국 국민임을 증명하는 길 아닌가. 왜 허구한 날 성조기와 관련도 없는 이스라엘 국기가 난무하는가. 하느님도 까불면 죽는다고 하는 놈들이 왜 일본의 총리에게는 까불면 죽는다는 말을 못 하나. 참으로 딱한 작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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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쓴 것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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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에서 과거로 가는 길은 언제나  외길이다. 현재에서 미래로 가는 길이 천 갈래 만 갈래 예측할 수 없는 수많은 가능성의 조합이라면 과거로 가는 길은 얼마나 소박하고 단출한가. 젊어서는 잘 가지 않던 그 길을 나이가 들면 우리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 걷고 또 걸어서 생각의 문턱이 닰아 반질반질 윤이 날 때까지 반복한다. 조남주의 소설집 <우리가 쓴 것> 역시 과거로 향하는 그 길에서 건져 올린 작품이 대부분이다. 대부분의 소설이 과거 시점으로 다루어지고 그것을 소재로 창작되는 게 일반적이지만 작가도 이제 나이가 들었음이다. 물론 각각의 작품이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이나 결은 서로 다를지언정 우리가 쓰고 기록한 것들은 이미 과거로 향하는 그 길의 어디쯤으로 확실한 좌표가 정해졌을 테니까 말이다.

 

"내가 살아온 길고 복잡한 시간과 지금 수행하고 있는 여러 역할과 글을 쓰는 사람이자 생활인으로서의 다양한 고민과 각각의 고민에서 시작된 모두 다른 글들이 간단하게 요약되어 함부로 호명되고 있었다. 납작한 것은 뭘까. 납작하게 만든다는 것은 뭘까. 이후로 한 글자도 쓸 수 없었다."  (p.75 '오기' 중에서)

 

<매화나무 아래>에서 남편의 장례가 끝나고 개명을 한 '나'는 큰언니인 금주가 지내는 치매 요양원에 들러 지난 시절을 추억한다. 디귿자 모양의 요양원은 가운데 쑥 들어간 부분에 작은 앞마당이 있고 그곳엔 매화나무 한그루가 서 있다. 김말녀에서 동주로 개명한 '나'는 폐암으로 사망한 둘째 언니 은주와 지난 시절의 추억들을 회상하며 큰언니와 함께 할 수 있는 길지 않은 시간을 아쉬워한다. 치매로 인해 시간의 경과를 잊은 큰언니. 죽음과 함께 찾아올 명멸의 시간들. '나'도 이제 그 평범한 진리를 깨닫는다. '꽃이 눈이고 눈이 꽃이다. 겨울이 봄이고 봄이 겨울이다.'

 

페미니즘 소설을 쓴 후 악플러들의 괴롭힘과 소설의 줄거리가 자신의 경험을 도용했다는 등의 시비에 휘말리면서 이후의 작품을 써나가는 데 대한 고통을 겪는 어느 소설가의 이야기를 쓴 <오기>는 어느 정도 자전적 성격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또한 <미스김은 알고 있다>는 병원 홍보대행사에서 특별한 업무나 급여가 정해지지도 않은 채 회사의 전반적인 일을 두루 책임지던 미스 김이 쫓겨난 후 그 후임으로 입사한 '나'는 미스 김의 부재로 인해 곳곳에서 업무상 차질이 빚어지는 모습을 보며 망연자실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제라도 내 인생을 살고 싶다.'는 짧은 메모를 남긴 채 어느 날 홀연히 가출한 72세의 아버지로 인해 남겨진 가족들이 겪는 그 후의 일상을 다룬 <가출>은 아버지가 지니고 있는 '나'의 카드로 인해 희미한 연계가 이어지는 가운데 대책을 모의하기 위한 모임이 정기적으로 이어짐으로써 가족들의 연대는 이전보다 오히려 더 돈독해진 느낌이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맺어진 인연으로 10년 넘게 사귄 연인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꾸며진 <현남 오빠에게>는 연인이자 후배로서 오랫동안 그에게 길들여진 자신을 뒤돌아보며 새로운 출발을 결심하는 주인공의 의지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오빠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나를 돌봐줬던 게 아니라 나를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만들었더라. 사람 하나 바보 만들어서 마음대로 휘두르니까 좋았니? 청혼해 줘서 고마워. 덕분에 이제라도 깨달았거든, 강현남, 이 개자식아!"  (p.190 '현남 오빠에게' 중에서)

 

남편이 죽은 후 시어머니와의 관계를 재정립한 채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내용을 그린 <오로라의 밤>은 다른 작품에 비해 인상 깊게 읽었던 작품이다. 오로라를 보고 싶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시어머니와 함께 캐나다로 향하는 내용을 담은 이 소설은 고부간의 이야기라기보다 차라리 함께 늙어가는 친구 혹은 자매의 이야기처럼 따스하다.

 

"사람이 할 수 없는 영역이 분명 있다. 그럼에도 할 수 있는 일은 기다리는 것, 준비하는 것, 완전히 절망해 버리지 않는 것, 실낱같은 운이 따라왔을 때 인정하고 감사하고 모두 내 노력인 듯 포장하지 않는 것."  (p.250 '오로라의 밤' 중에서)

 

"성실하고 꾸준하게 자기 일을 해 나가는 것. 그 평범한 일상이 삶을 버티게 해 준다는 것을 안다. 그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가치 있는지도, 누군가에게는 싸워 얻어내야 하는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p.258 '오로라의 밤' 중에서)

 

30여 년 전 지방의 소도시에서 가정 폭력 상담소를 열었던 엄마와 이를 보고 자랐던 '나'는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성폭력 관련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했다. 이제는 중학생인 딸을 두고 있는 '나'는 주변의 엄마들과 적당히 어울리며 도움을 받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학생들의 성희롱 문제를 고발한 딸로 인해 여성 문제에 대한 세대 간의 시각과 입장 차이를 자각하게 된다는 내용의 <여자아이는 자라서>. 마지막 작품인 <첫사랑 2020>은 코로나19의 확산으로 길어진 비대면 수업과 직업에 따른 가구 소득의 차이로 인한 고민과 갈등을 섬세하게 그렸다. 서연과 승민의 달콤 쌉싸름한 첫사랑을 통해 코로나 정국의 고통과 현실을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80세 노인부터 13세 초등학생까지 다양한 나이대의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다양한 서사를 선보이는 소설집 <우리가 쓴 것>에서 작가는 유독 과거로 향하는 그들의 기억에 천착하고 있다. 그들 중에는 우리의 경험 어느 한 귀퉁이에서 찾을 수 있는 보편적인 것들일 수도 있고, 코로나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겪는 이질적인 현실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좋든 싫든 자신의 경험을 다독이면서, 자신의 과거와 친해지면서, 천천히 나이들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가 여전히 쓰지 않은 것들에 작은 희망을 걸 수밖에 없다.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보편적인 삶이라는 걸 작가는 말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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