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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인시공 - 책 읽는 사람의 시간과 공간
정수복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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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학창시절 시험을 코앞에 둔 학생이 공부할 양은 많고, 시간은 넉넉하지 않을 때 밑줄을 그으며 읽었던 '요점 정리'를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저자도 그랬으리라.  책의 내용을 알차게 꾸미겠다는 욕심에 준비한 것은 많은데 지면은 한정되어 있고 아무리 줄이고 줄여도 꼭 넣겠다 생각했던 것을 뺄 수도 없는 처지이고...  이쯤 되면 저자도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결국 저자는 하나의 주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나 인용글을 과감히 삭제할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겠다고 생각한다.  책은 저자가 처음에 의도했던 방향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간다.  책이 인쇄되고 제본된 책을 처음 받았을 때 저자가 느꼈을 실망감과 아쉬움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책이다.

 

"원고의 양은 계속 늘어났다.  욕심을 줄이고 초심을 되찾아야 했다.  그래서 원래 생각했던 대로 일단 가장 산뜻하고 기분 좋고 경쾌하고 재미있는 글들을 가려 뽑아 한 권의 책을 완성하기로 했다.  그렇게 추려지고 모인 글들이 이 책을 이루고 있다.  책을 쓰는 몇 년 동안 파리에서 찍은 책 읽는 사람과 책이 있는 장소의 사진들을 글과 함께 배치했다.  사진이 독자들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하면 좋겠다."    (p.23) 

 

책을 읽는 시간과 공간, 책을 읽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 책의 제목은 그래서 <책인시공 冊人時空>이다.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제1부 책을 읽는 시간, 제2부 집 안에서 책을 읽다, 제3부 집 밖에서 책을 읽다이고 책을 읽는 사람들은 사진으로서 책의 배경 역할을 한다.  본문에 앞서 "독자 권리 장전"이란 제목으로 쓴 17개의 항목은 재미있다.  제1부는 '책이란 무엇인가'라는 소제목으로 시작된다.  책에 대한 저자의 주관이 드러나는 대목이니 빼먹을 수 없겠다.

 

"책의 면은 선으로 이루어진 건축물이다.  글자와 글자 사이, 행과 행 사이에는 빈 공간이 있다.  면의 가장자리에도 빈자리가 남아 있다.  종이 면 위에 인쇄된 글자가 목소리라면 행간과 가장자리의 여백은 침묵이다.  그렇다면 책의 본문 편집은 단순히 글자를 배열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와 고용함, 채움과 비움을 조합하여 책을 읽는 사람의 느낌과 생각이 물결처럼 순조롭게 흐르게 하는 고귀한 예술이다."    (p.31)

 

조금 딱딱한 인상을 주지만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는 이런 종류의 책은 늘 분주하게 움직이는 청소년들이나 대학생들에게는 딱이겠다 싶었다.  시간에 쫓기고 공부해야 할 양은 많으니 학생들은 대부분 간략하게 줄인 '요점 정리'를 선호하게 마련이다.  그렇게 길들여진 습관은 독서에서도 나타나는 듯하다.  비유와 은유가 포함된, 그러면서도 길게 이어지는 문학보다는 해야 할 말만 씌어있는 설명문이나 논설문을,  다 읽고도 한참을 생각해야 하는 '시'보다는 산문을, 그도 저도 아니면 아무 생각없이 읽을 수 있는 만화나 영화를 선호하는 경향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전체가 짧은 단락만으로 꾸며진 이런 종류의 책이 좋을 때가 있다.  진득하니 앉아 책을 읽지 못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짬짬이 독서를 나로서는 내용이 길게 이어지는 소설이나, 깊은 생각을 필요로 하는 철학서의 경우에 앞에서 읽었던 내용이 생각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다시 넘어가야 하는 경우가 하도 많아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물론 그 횟수에 비례하여 시간도 많이 걸린다.  반면에 이런 책은 책장을 앞으로 되돌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앞에서 읽었던 내용이 생각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뒷부분을 읽는 데 하등의 불편함이 없기 때문이다.

 

책을(그것도 종이책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책에 관련된 신간 도서가 나올 때마다 읽고 싶은 유혹을 억제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살 때마다 모조리 다 읽고 넘어가는 것도 아니다.  어떤 때는 아직 읽지도 않은 새책이 여기 저기 굴러다니다 괜히 방만 어지럽히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기도 하지만 여전히 나는 책과 관련된 책을 궁금해 한다.  그리고 저자도 그렇지만 나도 간혹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책을 읽는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의 얼굴을 다시 한 번 쳐다보게 된다.  그 행복한 풍경을 놓치기 싫어서이다.

 

"나는 책을 읽는 사람을 바라보며 그 사람의 머릿속에서 피어나는 생각들을 상상해본다.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옆이나 앞에 앉은 사람이 책을 읽을 때 슬쩍 그 책의 제목을 보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짐작해본다.  그 순간 책 읽는 사람은 나에게 말을 거는 풍경이 되고 풍경화와 초상화 사이의 거리가 없어진다."    (p.292)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는 지금도 책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이 책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하지 않던가.  많은 내용을 한 권의 책에 담으려 했던 저자의 욕심으로 인해 책의 내용은 오히려 빈약해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런 까닭에 덩달아 가독력도 떨어진다.  오히려 책을 읽는 시간이면 시간, 공간이면 공간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책의 내용을 풍부하게 하고, 저자도 약간의 여유로운 마음으로 책을 완성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쉬운 마음에 하는 얘기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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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병 - 나를 달뜨게 했던 그날의, 티베트 여행 에세이
박동식 글.사진 / 북하우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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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의 공직자가 벌인 부적절한 행동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어찌 보면 이런 일쯤이야 미리 예견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뭔 말이냐고?  어설픈 민주주의 국가인 우리나라는 개인의 도덕성은 안중에도 없고 그닥 큰 차이도 없는 능력만을 하느님처럼 맹신하는 까닭에 벌어진 일이기에 하는 말이다.  선진국일수록 도덕성의 잣대는 냉정하고 엄한 법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털어서 먼지 나지 않는 사람 있느냐'는 식으로 탈법과 도덕의 문제 만큼은 유독 관대한 편이다.  알다시피 현 정부의 임명직 관리들도 도덕적으로 깨끗한 사람은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찾기 어렵다.  그런 사람들을 최고 공직자의 자리에 앉혀놓고도 나라가 편안하기를 바랬다면 미쳐도 단단히 미친 것이다.

 

속에서 열불이 나는 것을 가라앉히려 박동식의 <나를 달뜨게 했던 그날의 열병>을 읽었다.  내가 이 책을 선택한 데에는 울화를 삭이려는 목적 말고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이상적인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이라면 마땅히 우리 주변국에서 벌어지는 안타까운 사연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비록 그들을 직접적으로 돕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생각만으로라도 지지와 응원을 보내는 게 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 코가 석 자인데 님의 나라를 염려한다고 비웃을 수도 있겠으나 꼭 그렇게만 따질 문제도 아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제 욕심만 차리려다 나라를 이 모양, 이 꼴로 만들었으니 말이다.  이런 연유로 나는 티베트 관련 서적을 두 권이나 샀다.  읽어야 할 책이 여전히 밀려있는데 또 욕심을 부린 꼴이다.  아무튼 중국의 통치에 반대하는 티베트인들은 2009년 이래 110명 이상이 분신하였고 그들 대부분이 죽었다고 한다.  우리의 관심에서는 아주 멀리 있지만 지금도 티베트인들은 독립을 갈망하며 분신을 기도하고 있다.

 

"노인을 만나기 전에는 티베트의 독립은 외국인에게나 주목받는 정치적 쟁점일 뿐, 정작 티베트인들은 무관심하거나 체념한 사안들이라고 생각했었다.  독립에 대한 그들의 열망을 티베트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언론과 종교, 표현의 자유에 있어서 극단적으로 제한을 받는 그들에게 독립에 대한 이야기는 금기에 가까운 이야기일 것이다.  입 밖으로 내뱉는 것 자체가 때로 자신의 신변을 위협받는 일이기 때문이다."    (p.202)

 

일반적인 여행기와는 달리 티베트를 다녀온 사람들의 글은 어떤 범접하지 못할 성스러움이 깃들어 있는 듯하다.  설산을 가까이 둔 지형적 특성도 그렇거니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때묻지 않은 순박함이 독자들로 하여금 막연한 추측을 불러일으키는지도 모른다.   책은 1부. '라싸를 향하여'와 2부. '카일라스를 향하여로 이루어져 있다.  특이하게도 1부의 시작은 실종된 친구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카트만두의 한 숙소에서 만났던 동갑내기 친구는 무스탕으로, 저자는 티베트로 향할 때 먼저 돌아오는 사람이 서로에게 메일을 보내기로 약속했지만 그에게 보내는 메일은 전달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서울로 돌아온 후 녀석의 가족을 만났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답답한 일이었다.  전산 시설이 낙후된 네팔에서 그의 흔적을 찾는 일도 쉽지 않았다.  그나마 확인된 사항에 의하면 비자를 연장한 흔적도, 국경을 출국한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찾아보지 못한 어딘가에 그의 출국 기록이 숨겨져 있기를 바라야 했다."    (p.19)  

 

1부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이야기는 조장(鳥葬)을 목도하고 쓴 글이었다.  척박하고 황량하여 시신을 태울 나무도 구하기 어려운 곳 티베트, 시신의 살점을 모두 독수리의 먹이로 던져주고 남겨진 뼈만 수습하는 그들의 풍습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분명히 보여주는 듯했다.

 

"언덕을 내려오기 전 뒤를 돌아보았다.  포식을 마친 독수리 한 마리가 하늘에 원을 그리며 선회하고 있었다.  결코 풀리지 않는, 삶과 죽음의 수수께끼를 독수리는 알고 있는 것일까.  이제 됐어, 산을 내려가자.  우리 중에 몇이 또 그렇게 떠났고 여전히 나는 남았으니 삶은 아직 나의 편.  사는 것이 구차해도 얼마나 좋은가.  여전히 나에게는 보장되지 않은 내일이 있으니 오늘을 휴치처럼 구겨도 죄 없음."    (p.146)

 

2부 '카일라스를 향하여'에서 저자는 자신이 겪은 소소한 일상과 카일라스 순례길을 동행했던 사람들, 그리고 저자를 감동시킨 현지인들과 그곳 풍광들의 묘사가 주를 이루고 있다.  1부에 비하면 이야기의 대부분이 밝고 가볍다.  사진으로 만나는 그곳의 풍경도 한결 밝아진 듯하다.

 

"이제 나의 여행은 서서히 이별 준비가 필요했다.  그리워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별은 차라리 불현듯 찾아오는 것이 나은 일이겠지만 헤어질 날이 정해져 있다고 해도 상관은 없다.  이루지 못할 꿈이 없는 것처럼, 견디지 못할 이별이 또 어디 있겠는가.  아쉬움과 미련은 어디에든 남는 것.  어디에서 멈추든 여행자의 길은 늘 아련하고 서글픈 것이다.  라싸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고 그만큼 이별도 가슴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p.354)

 

명상을 하듯 시작된 나의 독서도 이렇게 끝을 맺었다.  어떤 시각, 어떤 장소에서든 내 마음이 지옥이면 그곳 또한 지옥이 아니겠는가.  세상은 점점 이기심과 탐욕으로 굳어가는데 자신 혼자만 도덕을 강조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항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런 유혹에 편승하여 나마저 그 마음을 놓는다면 세상은 내가 놓은 그 마음만큼 더 더럽혀지지 않겠는가.  한 사람의 잘못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 사회의 모든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잠시 잊혀질 뿐이다.  하기에 우리 모두는 이번 일의 공범이며 저마다의 가슴에 주홍글씨를 새겨야 할 죄인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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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덤 라이터스 다이어리 - 절망을 이기는 용기를 가르쳐 준 감동과 기적의 글쓰기 수업
에린 그루웰 지음, 김태훈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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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겉모습만으로 평가하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여러 책에서 수도 없이 읽었고,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으로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이야기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것을 실천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만일 누군가를 겉모습만으로 평가했다면 최소한 우리는 그 사람에게 무관심하거나 적어도 우리는 그에게 애정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내가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애정을 갖고 있다면 영원히 마음에 상처가 될 그런 가벼운 평가나 편견으로 그 사람을 매도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간혹 자신이 경솔했었다고 뒤늦게 후회하는 사람들조차도 용서를 비는 태도에 있어서는 그야말로 ‘무례함’ 그 자체인 경우가 많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그저 '미안'이라는 말 한 마디 툭 던져놓고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다했다는 투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너무너무 바쁜 상황이었기 때문에 상대방의 마음을 미처 헤아리지 못하는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아무런 생각 없이 내뱉었던 말은 이미 상대방의 가슴에 커다란 상처를 남기고도 남았으리라.

 

캘리포니아주 롱비치에 있는 윌슨고등학교.  에린 그루웰은 윌슨고의 국어선생님으로 교사활동을 시작했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문제아반은 으레 신참에게 가지 않던가.  그루웰 선생님이 맡은 아이들도 다르지 않았다.  그녀가 가르쳐야 할 아이들은 보호 관찰 대상이거나 마약 중독 치료중인 아이, 전학 조치를 당한 아이들이 대부분인 203호 교실이었다.  인종차별과 무자비한 폭력, 이유도 없이 희생당하는 아이들, 단 한 사람도 믿고 의지할 수 없는 현실에서 자신의 목숨은 스스로 지켜야만 했던 아이들, 그리고 그 모든 것으로 인한 숙명적인 가난과 체념.  이 책은 그 모든 악조건 속에서 희망의 빛으로 나아가는 학생들과 그들을 지도하는 그루웰 선생님이 직접 쓴 142편의 릴레이식 일기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졸업장보다 죽음이 더 가까웠던 아이들을 위해 그루웰 선생님이 고른 네 권의 책은 <안네 프랑크-어느 소녀의 일기>, <즐라타의 일기-어느 사라예보 소녀의 삶>, 그리고 토드 스트라서의 <파도>와 엘리 비젤의 <밤>이었다.  해가 바뀌어 <호밀밭의 파수꾼>과 <컬러 피플> 등 다른 책이 포함되기도 했지만 말이다.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책의 저자나 관련 인물을 초청하여 강연을 듣고, 때로는 박물관을 견학하거나 후원자인 매리어트 호텔에서 가족 초청 만찬을 하는 등 그루웰 선생님의 수업 방식은 다른 선생님의 그것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차츰 변하기 시작했다.  1994년 봄학기부터 1998년 가을학기까지 아이들과 그루웰 선생님이 쓴 릴레이식 일기는 우리가 왜 불의에 저항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보여준다.

 

"다시 또 다른 친구의 무덤 앞에 꽃과 담배가 놓여졌다.  요즘 전사들이 너무 많이 죽거나 감옥에 가고 있어서 조만간 재모집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정말 까다롭게 뽑아야 한다.  전사는 유능해야 하고, 기꺼이 총을 쏘거나 죽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거기에는 그만한 가치가 있다."    (p.53)

 

자유와 꿈의 나라 미국!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행되는 폭력과 인종차별, 마약과 알콜 중독, 성폭력과 인간 소외는 아이들의 시각에서 전쟁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언론과 기성 세대는 그렇게 인식하지 않는다.  하루하루를 공포와 절망감 속에서 사는 아이들과는 달리 그 누구도 미국의 치부를 드러내고 문제의 심각성을 고발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아이들만의 문제일 뿐이다.  그루웰 선생님은 아이들 편에서 생각하고 그들의 문제를 공유하려 했다.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었던 아이들은 비로소 닫혔던 가슴을 열고 악에 저항하며 관용의 정신을 배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불합리와 폭력의 악순환은 결코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우리들의 체념이 아이들을 통해 가능성으로 전환되는 시점이다.

 

"오늘 나는 그루웰 선생님에게서 진정으로 주체적인 사람은 모든 것을 운에 맡기지 않고 스스로 실천하며, 변명만 해서는 성공할 수 없고, 역경은 탓할 것이 아니라 극복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선생님의 말대로 장애물은 자신이 극복할 때만 장애가 된다.  쇠사슬의 강도는 가장 약한 고리에서 결정되듯이, 진정으로 주체적인 사람은 자신의 약한 부분을 찾아 단련한다.  앞으로 나도 주체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p.241)

 

영화로도 제작되었던 이 책은 <굿 윌 헌팅>이나 <죽은 시인의 사회> 또는 <언제나 마음은 태양>에서 보여지는 훌륭한 교사상과는 약간의 거리가 있다.  불의에 저항하고 아이들을 진심으로 위하는 점에서는 같지만 그루웰 선생님의 교육 방식은 전적으로 독서와 글쓰기, 견학과 강연에 의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책을 극도로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독서의 즐거움을 심어준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자기 비하와 자기 부정이 일상화된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훈련시킨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아이들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4년 전, 누군가 그루웰 선생님이 한 달 이상 버틸 거라고 말했다면 아마 대놓고 비웃었을 것이다.  선생님은 절대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모두들 퇴학당할 거라고 생각했던 우리는 이제 대학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우리 같은 불량학생들이 졸업생이 될 거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4년 뒤면 졸업생이 된다.  우리의 이름은 콜럼비아 대학, 프린스턴 대학, 스탠포드 대학, 심지어 하버드 대학의 졸업생 명부에 실릴 것이다."    (p.514) 

 

부와 물질적 안락만을 좇아 경쟁의 덫에 꼼짝없이 갇힌 우리의 아이들을 볼 때마다 나는 우리나라 공교육에 대한 불신과 화를 억누르지 못한다.  게다가 우리 기성세대는 자신들의 잘못이나 현 체제의 불합리성을 비판하는 젊은이들에게 미안해하거나 반성은커녕 그들 모두를 '좌빨', '종북'으로 매도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그것이 옳다고 주장한다면 우리의 교육은 그야말로 체제에 순응하고 잘못을 외면하는 '인간사육'에 지나지 않는다.  아이들과 대화를 해보면 80-90%의 아이들이 현재의 제도와 정책 방향에 부정적이다.  그렇다면 당신의 자녀들 모두가 종북이고 좌빨이란 말인가. 프랑스의 작가 카뮈는 "유일하게 일관성 있는 철학적 태도는 저항이다"라고 했다.  삶의 부조리성과 무의미성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불의에 대한 저항은 그 사회가 건강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며칠 있으면 '스승의 날'이다.  위선과 편견, 폭력과 불의에 저항하고 관용의 정신을 일깨울 수 있는 진정한 스승이 그립다.  체제에 순응하고 불의를 외면하는 그런 젊은이는 더 이상 우리 사회에서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형제로 같이 사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바보로 같이 죽게 될 것이다.'라고 했던 마틴 루터 킹의 한마디는 분열된 우리 사회에 던지는 경고의 메시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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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 - 어느 여행자의 기억
변종모 글.사진 / 허밍버드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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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에서만큼 사람에 대한 허기를 절실히 느끼는 데가 달리 또 있을까.  차라리 그것은 덜 익은 피망의 잘린 단면, 앞뒤가 잘려나간 연속극의 한 장면, 그와 유사한 영원한 공복이자 결말을 알 길 없는 도대체의 미궁이리라.  무엇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부담감이나 의무가 감쪽같이 지워지는 장소가 바로 여행지 아니던가.  갑작스러운 이완은 중립에 놓여진 자동차 변속기처럼 탄력을 받고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오히려 깊은 나락으로 떨어질 것만 같은 피로가 한동안 이어지게 마련이다.  외로움으로 파랗게 변해가는 눈사람처럼.

 

"문득, 텅 빈 소리가 난다는 것을 알았을 때 당신은 이미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길을 나섰고, 자주 누군가가 빈 공간을 메워주기도 했지만 그만큼 허기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걸었다.  걷지 않으면 만날 수 없고 만나지 않으면 채워질 수 없던 많은 공복의 날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그 생각이 나를 길 위로 내몰았다."    (p.72)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 놀랄 때가 있다.  시간의 경과를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자신의 얼굴에서 보여지던 수많은 시간들의 처참한 죽음과 한꺼번에 대면해야 하는 순간, 우리는 오싹 소름이 돋는다.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진실이. 도저한 운명 앞에 마냥 나약하게만 느껴지는 자신의 초라한 모습이 마치 브라운관에 스쳐 지나가는 모르는 사람의 얼굴처럼 멀기만 하다.  삶에 자신만만했던 자신은 간 데 없고 여지없이 무너져내리는 스스로를 가까스로 붙잡는 순간, 귓가에는 윙윙거리는 바람소리만 들린다.

 

어쩌다 보니 연이어 여행기만 읽게 되었다.  계절이 계절인지라 진득하니 앉아 뭐 하나에 집중할 수 없는 까닭이다.  마음이 저만치 달아날 때마다 겨우 한 구절씩 읽으려니 독서의 속도는 좀체 빨라지지 않는다.  여행기는 부담없이 잊을 수 있어서 좋다.  무엇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 오래도록 내 머릿속에 무언가를 두고 살아야 한다는 의무감은 후줄근히 처진 배낭에 무거운 돌덩이를 얹는 것과 같다.  그 무게가 지친 발걸음을 한없이 느리게 할 때가 있다.

 

"이글거리는 뙤약볕 아래 뜨거운 피자 한 판을 들고 기차를 기다린다.  오후의 열기에 지쳐버린 사람들이 승강장 바닥에 누워 기차를 기다린다.  이 수많은 사람들 중에 누군가는 나처럼 무모한 마음으로 북쪽으로 갈지도 모른다.  산다는 것은 그런 것이리.  뚜렷하지 않은 것을 제대로 보려고 조금씩 가까이 다가가는 일.  그래서 그것을 끝내는 확인하고 마는 일.  하지만 그 무엇도 내가 다가가지 않으면 쉽게 다가오지 않으리.  당신이 움직일 수 없다면 내가 가야 하리.  그 일은 희생이 아니라 희망이리.  무모한 일이 아니라 무한한 일이리."    (p.147) 

 

변종모 작가의 책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무런 기대도 없이 그저 여행기를 읽고 싶어서 골라잡았을 뿐인데, 작가는 자꾸 자신의 가슴을 열어 보인다.  어느 낡은 일기장에 비밀처럼 적었을 이야기들도 서슴없이 들려준다.  나는 가끔 메슥메슥 멀미를 한다.  삶에 내쳐진 듯한, 어쩌면 우리의 일상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는 듯한 그의 태도가 나를 흔들리게 한다.  갠지즈 강가에서 소원이 없기를 소원하는 작가의 희미한 마음이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

 

"돌아오는 길, 억수 같은 비가 내린다.  새벽은 비에 젖어 일어날 줄 모르고, 가끔 천둥이 그 문을 열어주는 까마득한 하늘 아래 우리는 침묵으로 달린다.  하지만 무겁지 않다.  이 길의 끝에 또 각자가 걸어야 할 새로웅 길이 놓였으니, 우리는 아무 일 없이 비가 갠 오후의 하늘을 기대하듯 상쾌해질 것이다.  각자의 길이 있으니, 그 길을 걸어야겠으니."    (p.309)

 

"여행이란 결국 삶을 등지고 죽음의 냄새를 맡으러 가는 머나먼 길"이라고 했던 유성용 작가의 말이 귓전을 맴돈다.  그날이 그날 같은 일상의 껌벅임 속에서 나도 언젠가 이 길에서 밀려나 아주 긴 휴식의 시간을 갖겠지만 아직은 내게 오지 않은 그 아스라한 길을 생각할 때 자신을 목적없이 사는 사람이라고, 그래도 평화주의자라고 했던 변종모 작가를 문득 부러워했다.   혼자라서 열심히 살 수밖에 없다는 작가의 한마디.  누군가는 혼자가 아니라서 더 열심히 산다지만 또 누군가는 혼자이기 때문에 악착같이 살아야 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5월의 나른한 오후 햇살이 긴 하품에 젖는다.  눈물이 찔끔 솟으면 다시 정신을 차리고 남은 하루를 살아야 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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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 이병률 여행산문집
이병률 지음 / 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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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서 별을 바라본 사람들은 안다.

그 잠깐의 시간에 마치 최면에 걸린 듯 나를 잊을 수 있다는 것을.  광대무변의 하늘에 비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란 것을.  그 하찮음이 결코 싫지 않다는 것을.  일상에선 한없이 커졌던 자존심이 낮게 엎드려 먼지처럼 흩어진다는 것을.  그 겸손함이 결코 불쾌하거나 싫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작고 가벼워진 몸으로 수십 광년의 별에 닿을 수 있다는 것을.

 

여행도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본 밤하늘에 비하면 지구라는 이 별은 먼지처럼 작은 존재이지만 낯선 곳에서 한나절을 걷다 보면 크게만 보였던 내 자리와 내가 욕심내던 모든 것들이 그렇게 작고 하찮은 것이었나 생각하곤 했다.  한순간에 다가오는 그 선명함은 어느 유명인의 설득으로도 바꿀 수 없었던 내 마음의 벽을 너무나 쉽게 앗아가버렸다.  별을 바라보며 아주 쉽게 내 존재를 잊을 수 있었듯, 여행을 하면서 내 욕심의 크기를 잴 수 있었다.  지구의 어느 곳에 있어도 하루 24시간은 달라지지 않을 텐데 어느 모난 시간이 나의 마음을 찌르고 있었던 것일까? 

 

이병률의 여행 에세이는 이번이 두번째다.  <끌림>에 이어 7년만에 나온 그의 책은 내가 견딘 세월만큼 조금은 편해졌고, 조금은 쉬워졌다.  세월은 그 속에 담겨진 경험만큼 나이들게 한다.  작가의 글은 이제 <끌림>에서 보이던 조금은 현학적이고 멋을 부리던 치기에선 조금쯤 멀어진 것처럼 보였다.  독자들과 이만큼 가까워졌다고 해야 할까?  그러나 쉽고 편한 글일수록 그 속에 담겨지는 의미는 크고 넓어지게 마련이니 참 이상한 일이다.  편한 사람일수록 그의 가슴은 넓고, 쉬운 글일수록 그 의미가 넓어지니 말이다.  어쩌면 '쉽다'는 말 속에는 우리가 그 폭을 가늠할 수 없는 '여백'이 숨겨져 있는지도 모른다.

 

"여행의 많은 순간순간들을 극한 지경으로 몰다보면 그 안에서 선명한 쾌감을 만난다.  막막히 갈 곳도 없고 깊은 밤이 되어 눈 붙일 데가 마땅하지 않아도 그 상황 속에서 서성이다보면 이상할 정도로 강렬한 그 무엇에 대한 애착도 느끼게 된다.  적어도 거지가 아니라 여행자라고 스스로를 토닥이며, 이미 멀리 떠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세상 그 어떤 순간과도 비교할 수 없는 상태에 깊숙이 빠져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1# '심장이 시켰다'에서)

 

'전편보다 나은 속편이 없다'는 속설은 책에서 만큼은 예외인 경우가 많다.  이병률의 산문집도 그렇다.  상업성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한 작가의 작품에서 세월은 무시할 수가 없는 법이다.  세월의 경과는 그의 글뿐만 아니라 사진에서도 보여진다.  그가 만난 사람들과 집과 거리와 산과 하늘들.  사진의 색은 선명하다.  눈에 확 띌 정도로.  그러나 자극적이지 않고 오히려 친근하다.  작고 소소한 것에 눈길이 가는 것은 세월의 변화가 보여주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한번은 루마니아에서 '쓸쓸히 아름답고, 쓸쓸히 눈부셨던 그 외진 길을 다시 보기 위해 택시를 타고 가야 했던 작가에게 왕복 요금을 다 내기엔 너무 많다는 이유로 편도 요금만 받았던 어느 택시 기사의 이야기를 작가는 이렇게 적고 있다. 

 

"그가 좀 너무했다는 생각도, 나 같은 속물은 어떻게 살아가란 말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미안한 마음에 머뭇머뭇거리느라 얼른 차에서 내리지도 못했다.  아저씨는 나를 내려놓고, 그리고 '너무 많은 그 무언가'를 내려놓고 그렇게 그곳을 떠났다."    (16# '쓸쓸히 왔던 길' 에서)

 

이병률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허허로움이 목까지 차오른다.  아니, 아무것도 아닌 것이 어떤 것을 채울 수는 없다.  어쩌면 바닥까지 비우졌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뭔가 알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하다.   그것이 고독인지, 사랑인지, 슬픔인지, 또는 알 수 없는 삶의 의미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그 무엇으로 비틀거리다 일상의 바쁜 손놀림에서 멈칫하게 된다.

 

"오랫동안 나를 붙들고 있는 건 슬픔의 색깔이다.  슬픔으로 지금까지의 삶을 그나마 지탱해왔다면 이해가 쉬울까.  슬픔의 냄새와 슬픔의 더께가 가득 들어찬 내 마음은 그래서 뚱뚱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정체가 무엇인가를 따져보면 슬픔이 맞다.  약기운 같은 슬픔.  말갛고 탁한, 흰색에 가까운 액체를 뚝뚝 흘려 모으다가 어느 날 그것들을 치우고 그 자리를 말리는 일이 내가 사는 방식이었다면 당신은 이해가 쉬울까."    (29# '조금만 더 내 옆에 있어달라고'에서)

 

여행을 한다는 것은 '인간'이라는 단어에 어깨동무를 하는 일이다.  새끼손가락을 걸며 이별하는 일이다.  더러는 내가 잘못했던 일을 떠올리며 눈발 날리는 거리에서 바람으로부터 회초리를 맞는 일이다.  그 모든 것의 중심에는 한 치쯤 낮아진 자존심과, 한 뼘쯤 두꺼워진 '낯 두꺼움'이 있다.  친한 친구로부터 걸려온 전화에 '여행 중'이라고, '그래서 널 만날 수 없다고 당당히 대답하고 싶다.  낯선 이국땅에서 '몹시 외롭다'고 말하고 싶다.  그런 외로움으로 너에게 한발짝 더 다가가고 싶다.  이병률의 산문집을 읽으면 꼭 그래야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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