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 - 안도현의 시작법詩作法
안도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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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미혹되어 시인으로 살아온 지 30년이 지난 안도현 시인.  그의 작품이야 워낙 유명하여 다는 아니더라도 몇 구절쯤은 암송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을 터.  그러나 바쁜 현대인에게 시는 역시 어렵고 다가가기 어려운 대상일 뿐, 낭만과 여유로움 속에 맘에 두었던 시를 나즉나즉 읊으며 조용히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는 사람은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어쩌면 시인은 이 책을 쓰기 위해 수많은 책을 뒤적이고 몇 날 며칠을 뜬 눈으로 지새웠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인의 열정에 비하면 내가 이 책을 읽은 소회는 아주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이었다.  이처럼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 시를 이해한다는 것, 나아가 자신이 직접 시를 쓴다는 것은 다락에 쌓아 둔 먼지 묻은 시집 몇 권의 가치보다도 못할 터였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 책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를 읽었다.  민주화 열기가 뜨거웠던 1980년대의 시 열풍, 그 정점에는 서정윤의 <홀로서기>와 도종환의 <접시꽃 당신>이 있었다.  대학생은 물론 중고생과 직장인 모두에게도 시는 삶의 허기를 채워주는 마음의 양식이었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물질적 풍요를 경험한 요즘의 젊은 세대에게는 시는 한낱 시인의 전유물이자 대학 입시를 위한 통과의례쯤으로 밖에는 여겨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한 해 동안 발행된 시집을 다 합쳐도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의 판매량에 미치지 못하는 이 현실은 시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서글프기 그지없는 일이다.

 

"우리나라만큼 시인이 많은 나라도 흔치 않을 것이다.  수천 명의 시인이 책상 앞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시의 나라라면 적어도 시적인 일들이 곳곳에 넘쳐나야 마땅하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비시적인 생각과 행동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며 움직이는 이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시인이 되는 일을 단순히 개인적 명예와 욕망을 채우는 장신구로 활용하려는 사람들은 왜 또 그렇게 많을까?  혹시 글 쓰는 자의 태도에 어처구니없는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시를 쓰는 기술과 훈련뿐만 아니라 영혼의 생산자로서 시인이 된다는 일이 무엇인가를 여기에서 조금 따져보고 싶었다."    ('머리글'에서)

 

작가는 이 책에서 시의 전반에 대해 논하고 있다.  시인이 되기를 바라는 자가 아니라면 어쩌면 공허한 메아리로 들릴 수도 있는 이 한 권의 책이 시를 읽는 독자의 마음을 흔들고, 어제의 비처럼 가슴을 적시고, 종국에는 그들 모두가 서늘한 시의 숲으로 걸어 들어가는 날이 오기나 하는 걸까?  나는 결국 가슴 에이는 심정으로 이 책의 책장을 넘긴다.  우리 사회에서 시인으로 산다는 것, 아니 그보다는 시인의 가슴으로 살아가고자 한다는 것은 '바보', '멍충이'로 살아가겠다고 서언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그럼에도 안도현 시인은 생활인으로서의 시 쓰기를 강조하고 있다.

 

"시를 창작하는 사람은 시인의 개인적인 삶과 시를 별개로 보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삶은 엉망진창으로 살되 건강한 시를 쓰라는 말이 아니다.  시라는 텍스트의 자율성을 존중해야지 창작자의 사사로운 체험이나 느낌을 가지고 시를 간섭하지 말라는 말이다.  한 편의 시는 한 사람의 시인이 쓴 것이지만 그 시는 시인의 것이 아니다.  시인은 우주가 불러주는 감정을 대필하는 사람일 뿐이다.  시에다 쓴 언어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의 것이며 독자의 것이지 시인의 개인 소유물이 아니다."    (p.271)

 

요즘 들어 '시의 위기'를 말하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어쩌면 우리 문학의 총체적 위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 사람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지 않은가.  한 나라의 미래는 그 구성원의 영혼이 바로 설 때, 그리고 민족의 정신이 흔들리지 않을 때 밝아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디선가 장인수 시인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어차피 우리 시대는 활자매체에 의한 시집은 팔리지 않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판매 부수 따위는 이제 특별한 의미가 없는 시대가 되었다. 판매부수에 연연해 할 필요는 전혀 없다. 판매부수는 엄밀한 의미에서 시인의 몫이 아니라 출판사의 몫일 뿐이다. 판매부수보다는 다른 장르와의 넘나들기로 통한 독자와의 만남을 넓혀야 한다. 그러면 되는 것이다. 내 생각은 단호하다. 시의 탄생 과정에서는 대중성과의 단절을 고독하게, 외롭게 추구해야 하며,  시의 유통에 있어서는 대중성과의 결합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본다.'

 

내가 자라면서 아이 적의 생각을 버렸듯 시대는 이제 시를 버린 것은 아닐까?  우리 사회는 그렇게 병들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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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 위젤 지음, 김하락 옮김 / 예담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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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를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사람들은 '여행'이나 MT 등 낭만적인 그 무엇을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아니다.  내게 떠오르는 그 장면은 기대와 설레임에 가득 찬 낭만의 풍경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늦가을의 서늘한 한기를 품은 공포와 두려움이다.  내가 지금처럼 열차에 대한 트라우마를 갖게 된 것은 군생활의 경험 때문이었을 게다.  그런 까닭에 나는 지금도 열차를 타지 않는다.  더불어 병역의 의무가 신성하다는 둥 자랑스럽다는 둥 남자는 군대를 다녀와야 철이 든다는 둥 하는 말도 되지 않는 말을 들을 때마다 울컥울컥 치솟는 구역질을 느끼곤 했다.  그런 말들은 아마도 아직 군대에 가지 않은 누군가를 현혹시키려고 하는 말이거나, 군대 경험이 전혀 없는 누군가의 입을 통하여 근거도 없이 지어낸 말이기 쉬울 것이다.  가장 빛나야 할 청춘의 시기에 살인의 기술을 배우면서 보내야 했던 29개월의 지옥 같았던 시간을 지금까지 나는 단 한 번도 자랑스럽게 여겨본 적이 없었다.

 

나는 논산에서 6주간의 신병 훈련을 마쳤다.  그래도 그 기간 동안 몸은 고되고 힘들었지만 그럭저럭 지낼 만했다.  훈련을 마치고 자대배치를 받던 늦가을의 어느 날.  우리는 밤 10시에 출발하는 연무대발 의정부행 TMO열차에 몸을 실었다.  풋내기 병사들을 가득 실은 밤열차가 대전-조치원-천안을 지나면서 각각의 역에 정차할 때마다  한 무더기의 화물처럼 신병들을 토해내었다.  정들었던 동기들과 헤어지는 슬픔도 슬픔이지만 자신이 근무할 곳이 어딘지도 모른 채 자신의 키만한 더블백을 짊어지고 떠나는 신병들의 뒷모습은 지켜보는 사람이나 떠나는 사람 모두에게 뻣뻣하게 굳은 공포로 다가왔었다.  그날의 풍경은 세월이 한참이나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엘리 위젤의 <나이트>를 읽으며 나는 신병 훈련소를 떠나던 그날을 생각했었다.  2차 세계대전 중 열다섯 살의 나이에 가족들과 함께 강제수용소에 수감되었던 작가는 화물열차에 실려 강제수용소로 향하던 그때의 풍경을, 그리고 전쟁의 막바지에 탔던 가축 수송용 무개열차에서의 끔찍했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우리는 식량을 배급받지 못했다.  눈으로 연명했다.  빵 대신 눈을 먹었다.  낮도 밤과 다름없었고, 밤은 암흑의 찌꺼기를 우리 영혼 속에 남겼다.  열차는 천천히 달렸다.  때로는 몇 시간이나 멈추었다가 다시 달렸다.  눈은 그칠 줄 몰랐다.  다른 사람 위에 올라탄 사람도 있었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우리는 얼어붙은 몸뚱어리에 지나지 않았다.  모두 눈을 감고 있었고, 열차가 멈추어서 시체를 들어내기만 기다렸다."    (p.175~p.176)

 

이런 종류의 책을 읽고 있노라면 가끔 이런 의문이 고개를 내민다.  '나는 왜 이런 끔찍한 이야기를 읽는가?  우리 민족의 이야기도 아니고, 내 일가친척의 이야기도 아닌데.  게다가 인간의 잔혹한 모습에서 내가 배울 것이라고는 인간에 대한 혐오뿐인데...'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내가 내릴 수 있는 답은 인간의 기억력이 그리 좋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결론이다.  역사는 그 비슷한 일을 수없이 반복하는데 인간은 그때마다 경각심은커녕 너무도 빨리 잊는다.  다음 수업이 기다리고 있다는 듯.

 

"저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일은 어제 일어난 일이기도 하고 까마득한 옛날에 일어난 일이기도 합니다.  한 유대인 소년이 '밤의 왕국'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소년이 겪은 혼란과 고뇌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전광석화같이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게토.  추방.  밀폐된 가축 수송용 열차.  유대 민족의 역사와 인류의 미래.  그 모든 것의 희생을 뜻하는 불타는 제단."    (p.202 -노벨 평화상 수락 연설문 중에서)

 

1986년에 엘리 위젤은 '인종차별 철폐와 인권신장을 위해 노력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어떠한 명목으로든 전쟁은 모두 미친 짓이다.  그럼에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에서는 전쟁의 망령이 하루도 멈추어지지 않는다.  테러와의 전쟁을 기치로 내걸고 중동을 불바다로 만들었던 미국도, 이에 동조했던 유럽의 각국도 여전히 테러의 공포에 떨고 있다.  인류애와 관용을 전면에 내세우는 지도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살육의 역사는 결코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 사실은 세살배기 어린 애도 다 안다.  그저 알 뿐이다.

 

"사랑의 반대는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이다. 예술의 반대는 추함이 아니라 무관심이다. 신앙의 반대는 이단이 아니라 무관심이다. 생명의 반대는 죽음이 아니라 무관심이다."  작가 엘리 위젤의 외침이다.  무관심의 역사는 끝업이 반복될 뿐이다.  뱀이 입으로 제 꼬리를 물고 있는 우로보로스(ouroboros)의 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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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 사랑을 만나다 - 섬 순례자 강제윤의 제주 올레길 여행
강제윤 지음 / 예담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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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윤 작가를 처음 알게된 것은 가볍게 스치는 우연이었다.

법정 스님의 추천 도서를 열심히 찾아 읽던 시절, 그 중 한 권의 책이 강제윤 시인을 만나게 했다.  허균의 <한정록>을 김원우 작가가 우리말로 옮긴 <숨어사는 즐거움>.  근처의 도서관에서 제목만 검색하여 빌렸었다.  당연히 허균의 책이겠거니 안심하고 빌린 책의 표지에는 '아뿔사!', 허균이 아닌 '강제윤'이라는 낯선 이름이 씌어 있었다.  빌린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서둘러 반납하기도 머쓱하여 부득불 읽게 되었다.  그렇게 우연처럼 만난 작가의 책은 좋았다.  기대 이상이었다.  오죽하면 작가의 홈페이지 '동천다려'를 방문하여 그가 쓴 글을 모두 읽었을까.

 

작가의 삶은 그야말로 유목민의 삶이었다.  1988년 '문화와 비평'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한 그는 한동안 인권 활동가로 살다가 고향인 보길도로 귀향했다.  찻집 '동천다려'를 운영하며 고향의 자연을 지키는 일에 헌신하던 그는 이번에는 홀연히 청도 한옥학교 한옥 목수 과정을 졸업한 뒤 티베트 유랑을 하고 2006년 가을 완도군 덕우도를 시작으로 섬 순례에 나선 작가는 10년 계획으로 사람이 사는 한국의 모든 섬 500여 개를 걸어서 순례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런 까닭에 한곳에서 열흘 이상을 머무르지 않던 그가 제주에서 1년 남짓을 살았던 것은 제주의 사람들과 자연 풍광이 그의 발길을 붙잡았기 때문이리라.

 

작가는 이 책에서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는 가급적 숨기고 올레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제주의 아픈 역사와 약간의 풍경 스케치를 아주 담담한 필체로 수채화처럼 펼쳐 보이고 있다.  올레길의 소개를 목적으로 쓴 까닭에 주관적 사색을 삼간 것인지, 아니면 작가의 내면적 성숙이 어떤 것에도 매이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인지 나는 작가의 의중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깅제윤 시인의 다른 작품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 책이 풍기는 담백함에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작가는 책에서 폭풍의 화가 변시지를 비롯하여, 청도 운문사 진광과 현우 스님, 산전수전 다 겪은 15세 선장 출신의 김성일, 끈질긴 집념으로 원수 집안의 여자와 결혼한 가파도 이장 김동욱, 올레 교감 선생님 한산도, 집시적 삶의 종착지로 제주도를 선택한 연예인 출신 화가 유퉁, 올레길 이방인 데럴 쿠드와 트레이시 베럿, 5.18 시민군 출신 민주화 운동가 진희종, 허름한 30년 국수집 춘자싸롱의 아낙네 그리고 제주 올레 이사장 서명숙과 조폭 보스 출신의 올레 탐사대장 서동철 등 작가가 만났거나 인연이 닿은 사람들과 역사 속의 인물 홍윤애 등을 그리고 있다.

 

내가 책을 읽으면서 이제나 저제나 기다렸던 인물은 제주를 사랑하여 평생 제주의 풍광을 사진에 담았던 김영갑 사진작가였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끝내 찾을 수 없었다.  어쩌면 작가는 지금 이 순간을 사는 사람들에게 집중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신처럼 홀홀 단신 떠돌았던 김영갑 작가의 갤러리를 들르면 자신도 영영 제주의 산천을 벗어나지 못할까봐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

 

"여행지에서의 사랑은 불가능이 없다. 어떠한 조건이나 난관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여행 중에 만나는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기 때문이다. 이방인이건 토착민이건 누구나 여행자다. 여행지에서의 사랑은 즉흥적이고 충동적이지만 그것은 또한 사랑의 본성에 가장 충실한 것이기도 하다. 조건에 대한 사랑이 아닌 사람 자체에 대한 사랑. 사내의 순정이 사랑을 완성했다. 하지만 사랑의 시작은 여행자와의 만남이었기에 가능했다. ―여행자의 사랑은 불가능이 없다."    (p.97)

  

내가 요즘 아침, 저녁으로 지나치는 길은 쌀밥처럼 하얗게 꽃이 핀 이팝나무 가로수길이다.  그 길을 지날 때면 배고팠던 시절의 하얀 쌀밥 냄새가 나곤 한다.  사람의 마음에 사랑이 없으면 그 아름다운 풍경이 무슨 소용이랴.  길을 걸으며 떠올릴 추억이 없다면 꽃 피는 계절인들 무슨 소용이랴.  올레길은 저마다의 추억을 안고 모르는 사람에게 가슴을 여는 길임을 작가는 말하고 싶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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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우울 - 최영미의 유럽 일기
최영미 지음 / 창비 / 199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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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책에 대한 저 나름의 버릇이 한두 가지쯤 있게 마련이지만 내게도 그런 게 있다.  그 중에서도 좀 유별나다 싶은 것은 유명 작가의 신간이 나왔을 때, 신간을 읽기보다는 오히려 오래 전에 나왔던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을 찾아 읽는 버릇이 바로 그것이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일약 베스트 셀러 작가가 된 최영미 시인은 적어도 1년에 한두 권의 책을 꾸준히 내왔던 듯하다.  그런데 나만 모르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대다수 독자들이 그렇겠지만 나도 그동안 시에는 무심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시인이 시집만 내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러나 고집스런 나의 편견은 시인의 작품마저 멀리하게 만들었었나 보다.

 

1994년에 출판된 시집<서른, 잔치는 끝났다>가 베스트 셀러가 되었을 때만 해도 시인을 바라보는 독자의 시선은 그리 곱지만은 않았다.  24살의 젊은 나이에 이혼한 그녀의 이력도 그랬고, 시에서 보여지는 그녀의 솔직함 - 예컨대 '자위 끝의 허망한 한 모금 니코틴의 깊은 맛을'<너에게로 가는 길을 나는 모른다>, '그날 밤 음부처럼 무섭도록 단순해지는'<마지막 섹스의 추억>, 사람들은 내가 이혼한 줄만 알지/몇번 했는지 모른다'<어떤 사기>, 녀석과 간음할 생각으로/뱃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를 때'<어떤 게릴라>, '아아 컴-퓨-터와 (X)할 수 있다면'-때문에 '도발적'이라거나 '트러블메이커'라는 세간의 비아냥이 줄곧 이어졌다.  게다가 시인의 이름이 알려질수록 회자되는 스캔들도 끊이지 않았다.

 

작가의 산문집 <시대의 우울>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녀의 이미지와는 도통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책이다.  차분하고 편안한 문체와 여행지에서의 풀어진 모습과 자유로운 생각들이 독자들로 하여금 '최영미 시인이 이런 사람이었어?'하는 의문이 절로 들게 할 정도이다.  '최영미의 유럽 일기'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작가가 두 차례에 걸친 유럽 여행-1995년 11월~12월, 그리고 1996년 4월~7월-을 하면서 틈틈이 쓴 일기를 정리해 도시별로 엮은 것이라고 한다.  홍익대 대학원 미술사학과를 졸업한 작가답게 유럽의 미술관과 작품 감상이 주를 이루지만 흐린 날 언뜻언뜻 비치는 파란 하늘처럼 가벼운 일상들이 무늬를 더한다.

 

"기차를 타고 미지의 도시에 다가갈 때의 느낌은 서투른 연애의 메커니즘과 비슷한 데가 있다.  우리가 어느 한 장소의 혹은 한 사람의 본질을 가장 잘 깨닫게 되는 것은 그 속에 머물 때보다는 오히려 그것에 다가갈 때, 혹은 그것을 떠날 때인지도 모른다.  기대 이상의 즐거움을 경험할 것인가, 아니면 환멸을 맛볼 것인가는 어느 정도 변덕스런 날씨나 그때그때 당신의 컨디션과 같은 우연의 폭력에 의해 좌우된다."    (p.149)

 

책을 읽고 이따금 블로그에 리뷰를 쓸 때마다 나는 '실패한 독자(讀者)'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읽은 작품의 문체가 화려하면 나도 그에 따라 화려해지고, 소박하고 정겨우면 또 그렇게 따라하고, 슬프고 외로우면 비슷한 감정으로 리뷰를 쓰기 때문이다.  독자의 감정이나 문체마저 작가의 그것을 따르게 한다면 작가의 입장에서는 일단 성공했다고 평해도 무방하겠지만 책을 읽는 내 입장에서는 오롯이 내 의견을 고집하지 못하는 '실패한 독자'로 남게 마련이다.  책을 읽고 자신의 것으로 승화시키지 못했다는 자괴감은 약간의 우울함을 동반한다.  그러나 그만큼 책이 내 맘에 들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나는 여전히 '실패한 독자'가 되기를 꿈꿀 뿐 아니라 그런 책에 매료된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빈다.  그날 그 뮌헨의 숲에서 날 소스라치게 했던 빗방울처럼 나 또한 누군가의 현재에 툭, 내려앉기를.  어느날 문득 기억의 숲에서 솟아올라 그를 깨우기를......"    (p.144)

 

어쩌면 우리는 내가 저지른 지난 잘못을 참회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지도 모른다.  내게 용서를 비는 마음 밑바닥의 나를 대면하고 한바탕 울음과 함께 서로의 등을 토닥이고 나면 비로소 허기진 마음 한 곁에 희망의 싹이 움트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여전히 '실패한 독자(讀者)'로 남아 작가를 닮은 리뷰 한 편을 끄적이겠지만 내일 또 다른 실패를 꿈꾸게 될지도 모른다.  실패한 독자로서.

 

"곧 나는 지리한 일상을 되찾았다.  이곳의 사람들과 부대끼며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잠시 맛보았던 새 세상, '거기'의 추억과 냄새도 차츰 희미해져갔다.  그러나...... 나는 안다.  이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임을.  내가 앞으로도 떠나고 돌아오는 일을 반복하리라는 것을.  내 속의 우울을 들여다보며 이 시대의 우울을 통과하기 위해서."    (p.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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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책마을을 가다 - 사랑하는 이와 함께 걷고 싶은 동네
정진국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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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웠다.  시골의 작은 마을이 책을 매개로 전 세계의 관광객들과 연결된다는 것이.  그것은 어쩌면 책 하나만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오히려 잘 보존된 그들의 역사와 문화가 후대에 와서 책과 함께 꽃을 피우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역사의 변방이었던 우리 나라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기에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부러움과 약간의 시기심을 느껴야만 했다.

 

우리 나라에도 이와 비슷한 것이 있기는 하다.  파주 출판단지가 그것인데 이 책에서 소개하는 책마을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 또한 현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유람 삼아 파주 출판단지를 가보았겠지만 그곳에는 몇몇 출판사가 들어서 있고, 각 출판사가 운영하는 북아울렛과 갤러리, 그리고 외지인들을 유혹하는 북카페가 보이기도 한다.  게다가 특색 있는 현대식 건물들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하지만 역사의 숨결과 오래된 책에서 풍기는 쾨쾨한 곰팡이 냄새는 맡을 수 없다.  결국 파주 출판단지는 출판사가 밀집한 소도시에 불과한 것이다.  하기에 역사와 문화 유산을 배경으로 전 세계의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유럽의 책마을에 비하면 파주 출판단지는 다른 나라의 관광객을 유혹하는 데에 한계가 있는 셈이다. 

 

최근에는 뜻있는 작가들이 모여 강정마을에 책마을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제주 해군기지를 짓겠다는 바로 그 마을이다.  해군기지 건설을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이 극한 대립을 펼치고 있는 강정마을에 대규모 책마을을 만들어 마을 사람들의 피폐해진 마음을 위로하겠다는 취지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이것도 유럽의 책마을과는 성격도 다르고 모양도 다를 것임에 분명하다.  아무튼 우리가 책을 통하여 다른 나라의 관광객을 유치하려면 어떤 획기적인 유인책이 있어야만 하고 지금으로서는 요원한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저자는 마을 주민 전체가 중심이 되어 책마을 잔치를 여는 스위스의 생 피에르 드 클라주를 시작으로 유럽 곳곳에 위치한 24곳의 책마을을 돌며 저자가 만난 책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대형서점과 인터넷의 세파에 밀려났던 중고, 중소 서적상들이 책이 설 자리를 되찾으려는 이런 현상은 지방문화의 활력을 도모하고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지지와 동참을 이끌어내는 사회운동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책은 우리 유년기의 기억을 가장 강렬한 냄새로 물들인다.  아마 엄마 젖 냄새 다음으로 강렬하지 않을까.  본능을 자극하는 달콤하고 야만적인 젖 냄새가 가장 깊은 자연의 냄새라고 한다면, 책은 가장 해묵은 문명의 냄새를 풍긴다.  엄마 품에서 떨어져, 아니면 엄마 품 안에서도, 처음 책장을 넘길 때 고약하게 우리의 콧구멍을 파고들던 그 종이와 잉크 냄새......"    (p.9)

 

책마을을 소개하는 글은 가족 모두가 산보를 나온 듯 가볍고 경쾌하다.  군더더기가 없다.  스위스 마스 다주네에서 우리도 남과 북이 매년 단 하루라도 모여 책마을 잔치라도 벌일 수 있기를 소망기도 하고, 독일의 뷘스도르프에서는 아픈 전쟁의 기억을 떠올리며 사색에 잠기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1962년 세계 최초의 책마을을 선언하고 종주국으로서의 위상을 높여온 영국의 헤이 온 와이에서 저자는 이제는 책을 주제로 한 관광촌의 전형이 된 헤이 온 와이를 아쉬워 하기도 한다.

 

"어쨌든 출판 관광으로 완전히 자족하는 이 마을에서 보낸 하루는 아주 잘 짜인 한 편의 '트릭' 속에 빠진 날이었다.  마주치던 노인은 발걸음을 멈추고 손을 맞잡으며, "헤이 온 와이를 즐기고 가시게"라고 덕담을 던지곤 했다.  제법 그럴싸한 책을 진열장에 내세운 '더 북 숍' 앞에서 입맛을 다시며 어정대고 있자니 점심을 차려준 식당 아주머니가 지나가다가 한마디 던졌다.  그런데 그 말이 참 걸작이었다.  "아니, 여기서 돈 다 쓰고 갈 참이구려!""    (p.289)

 

저자는 책마을을 돌며 시골의 그 작은 마을에서 자신들의 문화와 전통을 지키며 살아가는 모습에 감동하며 우리의 현실을 시시때때로 생각하곤 한다.  한번은 '윌슨 런'이라는 16킬로미터 달리기 경주를 하는 한 무리의 소녀들을 보며 '밤늦도록 학원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아무리 눈을 반짝여도 풀이 죽을 수밖에 없는, 입시 지옥의 가마솥 속에서 젊음을 불사르는 우리 딸들의 안쓰러운 모습'을 떠올리기도 한다.  2007년 봄에서 2008년 초 겨울까지 유럽의 책마을을 돌며 책과 더불어 사는 사람의 이야기를 기록하고자 했던 저자의 노력은 헛된 것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현실을 생각할 때, 저자가 느꼈을 마지막 소회는 역시 진한 아쉬움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책이 잘되자면, 우선 책을 다루는 사람이 잘되어야 한다.  책을 쓰는 사람뿐 아니라, 만들고 전하는 모든 사람이 중시되어야 한다.  엘리트도 적지 않게 투입된 요즘의 출판계에도, 일반이 생각하기에 책은 필자와 독자만 있고, 그 사이에 있는 편집자는 있는 듯 없는 듯하다.  그런 날이 언제일까.  중매쟁이들이 어느 출판사 다니는 총각이나 색싯감을 잡으려고 난리를 피우고, "책 만드는 놈한테 딸을 보내야 할 텐데......"라든가, "아무개 서점 아들 없소?"하면서 수소문하는 부모들이 많아지는 세상이......"    (p.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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