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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시간의 역사 - 시곗바늘 위를 걷는 유쾌한 지적 탐험
사이먼 가필드 지음, 남기철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몇 년 전에 읽었던 <사막별 여행자>는 사하라 사막의 유목민 투아레그 족으로 살았던 저자가 우연한 기회로 읽게 된 <어린 왕자>에 매료되어 프랑스에 정착하게 되는 과정과 그 속에서 자신이 살았던 이질적인 두 세계에 대한 비판과 깨달음을 담은 책이다. 저자인 무사 앗사리드는 원시 유목민처럼 살았던 자신의 어린 시절과 문명화된 프랑스 현대인의 삶을 비교하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삶이 바람직한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사막별 여행자>에서 인상적이었던 문장을 옮겨보면 이랬다. '우리는 시간을 재지 않는다. 시간뿐만 아니라 돈과 거리 또는 물건의 양을 재거나 측량하는 단위도 없다. 우리에게 양 한 마리는 그저 양 한 마리일 뿐이다. 몇 킬로그램의 고깃덩어리가 아닌 것이다. 현대인들이 가진 가장 큰 문제점은 지금 이 순간을 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시간을 호주머니 안에 넣고 다니면서 재고로 남아 있는 시간을 파악하여 새로운 계획을 세우거나 늘 시간에 쫓기며 살아간다.'
사이먼 가필드가 쓴 <거의 모든 시간의 역사>를 읽으면서 자연스레 <사막별 여행자>가 떠올랐던 건 우연이 아니다. 자연의 시간에서 인간의 시간으로 그 기준이 옮겨오기 시작한 기원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이 책은 시간에 대한 역사, 개념, 산업, 철학까지 다양한 방면에서 미처 몰랐던 시간의 단면들을 훑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과 동화되어 자연의 일부로서 살아왔던 자연의 시간이 과학의 발전과 함께 시간을 재고 측량할 수 있게 됨으로써 객관화된 인간의 시간을 갖게 된 현대인이 시간의 주인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시간의 노예가 되어 시간에 쫓기고 평생 동안 바쁘게 살아야만 한다는 건 어찌 보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시간을 정형화하고 객관화할수록 우리의 삶으로부터 시간은 더 멀어지는 게 아닐까.
"이 책은 인간들의 시간에 대한 강박적인 집착을 다루었다. 시간 측정, 시간 통제, 시간 판매, 시간에 관한 영화 만들기, 약속 시간 이행, 시간의 불멸화 그리고 시간의 의미화를 갈망하는 인간의 모습을 소재로 삼았다. 지난 250년간 시간은 어떻게 우리 일상에 파고들어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했을까? 수천 년 동안 하늘의 별자리를 보면서 방향을 찾다가 지금은 왜 전화와 컴퓨터로 정확한 정보를 얻으려 하는 걸까? 그것도 하루에 한두 번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강박적으로. 이 책을 쓴 의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시간과 관련하여 벌어진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들이 전부 미친 듯이 시간에 집착했는지를 알아보고자 함이다." (p.11)
2,500년간 인간이 미워하고 욕망했던 애증의 존재인 시간에 대해 저자는 총 15개 장에 걸쳐 다루고 있다. 1부 '자연의 것에서 인간의 것으로'에서는 태양의 시간에 맞추어 살아가던 인간이 어떻게 표준시간제를 채택하고 시간 질서를 갖추었는지를 탐구하고, 2부 '산업혁명 이후의 시간혁명'에서는 산업혁명 전후 급격하게 진행된 시간혁명을 다룬다. 기술의 발전으로 좀 더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있게 된 250년간, 우리의 삶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탐구한다. 3부 '잡힐 듯 잡히지 않는'에서 저자는 과거로 회귀하고 싶은 향수와 더 나은 미래를 만들려는 인간의 이중적인 노력을 말하고 있다.
"물론 요즘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시간 관리에 관한 나름의 전문적 식견을 가지고 있다. 해야 할 일을 머릿속으로 결정할 때 소요 시간도 계산해 보아야 한다. 본인의 판단으로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이는 일도 위기라고 해석될 수 있는 문제들이 느닷없이 생겨 막히는 경우가 많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짧다. 그렇다면 무엇을 먼저 해야 할까? 딸기나 수확하면서 사는 게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더 좋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매일 저녁 4시간 동안 부모의 얼굴을 보는 게 2시간 동안 보는 것보다 우리 아이들에게 갑절의 이익을 가져다주는가? 수많은 시간 관리 서적을 읽는다고 그러한 물음에 답할 수 있을까?" (p.338)
우리는 모두 시간 속에 살면서도 정작 시간의 실체는 제대로 알지 못한다. 막연하고 추상적인 개념으로만 이해할 뿐이다. 그러나 시간에 대한 개념이나 이론을 설명하면 할수록 시간은 더욱 멀어지고 어렵게 느껴질 뿐이다. 그러므로 저자는 이 책에서 여러 사람들이 직접 겪은 체험을 통해 인간의 다양한 단면들을 독자에게 전해준다. 시간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가볍고 흥미롭게 풀어냄으로써 물리적인 시간에 대해 우리는 좀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다.
오늘도 얼쩡거리다 보니 벌써 하루가 다 가고 말았다. 특별한 일로 시간을 알차게 보낸 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다. 봄빛 완연한 오후 햇살이 베란다 유리창을 뚫고 집 안으로 가득 쏟아진다.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하고 황홀하다. 나른한 봄 햇살 속을 느린 시간이 유영하고 있다.
"우리 현대인들은 산업화된 사회에서 시간과 싸우며 200여 년의 시간을 보냈다. 기차를 타기 위해 뛰었고 결승선 테이프를 끊기 위해 달렸으며 능률적인 세상을 만든다고 앞만 보고 뜀박질을 했다. 이제 속도를 늦추어야 할 때다. 속도를 늦춘다는 건 도시를 떠나 밭에서 쟁기질을 하는 일과 같은 것이다. 우리들 가운데 누가 그런 일을 감당해 낼 것인가?" (p.4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