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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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 순해진 햇살과 물기가 쏙 빠진 보송보송한 바람이 마치 가을을 알리는 전조처럼 다가왔다. 예년에 비하면 무척이나 이른 변화였다. 인간을 제외한 다른 모든 자연이 디데이를 기다리며 함구하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앞에 짜잔 하고 깜짝 이벤트라도 펼치보이려고 했던 것처럼 갑작스럽고 놀라운 변화였다. 사람들은 그런 변화가 싫지 않은 눈치였다. 길었던 여름으로부터 이제야 벗어나게 되었구나 싶었던 게다. 여름을 갈무리하는 사람들에게 지난 여름은 또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지... 누군가에게 여름은 단순한 고통의 시간이었을 테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여름은 치열한 삶의 흔적이었을 터,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고 했던 어느 가수의 노랫말처럼 여름은 그렇게 각자의 언어로 기록된다.

 

김애란의 소설집 <바깥은 여름>을 읽었다. 작가가 토해내는 하나하나의 낱말 알갱이들이 가슴 언저리에 탄환처럼 깊이 박힌다. 흩어지지 않는다. 어느 여름날에 내렸던 우박 알갱이들처럼 고통의 형태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바람처럼 저리 쓸려갔다가 다시 또 이리 쓸려오곤 한다. 삶을 어렵게 하는 건 지금 겪고 있는 현실의 가난이나 배고픔 때문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아직 오지 않은 공포가 있고 현실이 힘들수록 동반하여 그 공포는 부풀어오른다. 우리는 그게 두려울 뿐이고, 삶을 힘들게 하는 것 또한 그와 같은 공포 때문이다. 닥친 현실은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갈 뿐이다.

 

"시간이 나를 가라앉히거나 쓸어 보내지 못할 유속으로, 딱 그만큼의 힘으로 지나가게 놔뒀다. 나는 관광 명소를 찾지 않고, 신문을 보지 않고, 사진을찍지 않았다. 친구를 사귀지 않고, 티브이를 켜지 않고, 운동을 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연락이 오면 문자나 메일로 답했다. 그리고 어느 때는 그마저 하지 않았다." (p.234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중에서)

 

<바깥은 여름>에는 일곱 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입동', '노찬성과 에반', '건너편' '침묵의 미래', '풍경의 쓸모', '가리는 손',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가 그것이다. 소설은 대개 쓸쓸하거나 건조하다. 여름에서 한 뼘쯤 밀려난 듯한 지금의 날씨처럼 각각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뜨거운 삶의 현장에서 힘없이 밀려난 듯한 인상을 받는다. 자신들의 자발적인 선택에 기인하는 것도 아닌데 어쩌다 보니 그런 인생을 살게 된 것이다. '삶의 부조리'라고 간략하게 요약하기에는 울컥 치미는 뭔가를 자제하기 힘들다.

 

"오래전 당신과 팔짱을 끼고 걸을 때, 사람들이 자꾸 쳐다보자 당신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 병원 어르신들을 보면 가끔 그 말이 떠올랐다. 나는 늘 당신의 그런 영민함이랄까 재치에 반했지만 한편으론 당신이 무언가 가뿐하게 요약하고 판정할 때마다 묘한 반발심을 느꼈다. 어느 땐 그게 타인을 가장 쉬운 방식으로 이해하는, 한 개인의 역사와 무게, 맥락과 분투를 생략하는 너무 예쁜 합리성처럼 보여서. 이 답답하고 지루한 소도시에서 나부터가 그 합리성에 꽤 목말라 있으면서 그랬다." (p.200 '가리는 손' 중에서)

 

'입동'에는 어린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고 그 상실감에 어찌할 바 모르는 부부가 등장한다. 복분자의 붉은 물이 튄 벽에 새로 도배를 하는 부부. 찬바람이 부는 입동의 자정 무렵. 날씨에 더해 부부를 더 을씨년스럽게 만드는 것은 아들의 흔적이다. 가구를 치우자 그 밑에서 드러난 아들의 삐뚤빼뚤한 낙서. 부부는 마지막 남은 한 장의 벽지를 마저 붙이지 못한 채 오열한다. '이십 년간 셋방을 부유하던 부부가 힘들게 뿌리 내린 곳, 비로소 정착했다고 안심했던 곳이 허공이었다'고 부부는 한탄한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가슴이 저릴 정도로 무고한 얼굴로 잤다. 신기한 건 그렇게 짧은 잠을 청하고도 눈뜨면 그사이 살이 오르고 인상이 변해 있다는 거였다. 아이들은 정말 크는 게 아까울 정도로 빨리 자랐다. 그리고 그런 걸 마주한 때라야 비로소 나는 계절이 하는 일과 시간이 맡은 몫을 알 수 있었다. 3월이 하는 일과 7월이 해낸 일을 알 수 있었다. 5월 또는 9월도 마찬가지였다." (p.18 '입동' 중에서)

 

'풍경의 쓸모'는 또 어떤가. 가족이지만 끈끈함이 사라진 관계를 작가는 '프로'라는 말로 대체한다. 새장가를 든 아버지와 아들인 나. 아버지는 나에게 어떤 행사가 있을 때마다 선물을 보내왔고, 성인이 되어 더이상 축하할 일이 남지 않은 나에게 아버지는 돈을 요구한다. 엄마와 함께 사는 나는 나락으로 떨어진 아버지의 처지를 이해하면서도 스스로 관계를 끊었던 그의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 허울뿐인 '프로'아버지의 쓸쓸한 말년을 지켜보는 나. 우리도 언젠가 '프로' 아버지, '프로' 엄마, '프로' 아들로 헤어지는 건 아닐까.

 

"그러니 언젠가부터 아버지의 안부가 뜸해졌다면 그건 아버지가 무심해진 탓이 아니라 당신 아들이 웬만한 사회적 의례를 다 마칠 만큼 나이든 까닭이었다. 당신 인생에도 내 삶에도 더이상 박수 치며 축하할 일이 생기지 않는 까닭이었다. 그래서 최근 아버지로부터 몇 년 만에 만나자는 연락이 왔을 때, 나는 그게 당연히 아내의 임신 소식 때문인 줄 알았다." (p.156 '풍경의 쓸모' 중에서)

 

김애란의 소설은 여백을 따라 흥건한 물이 고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서로를 바라보면서 더이상 슬픔이 느껴지지 않는 관계는 이미 생명이 다한 관계라는 걸 작가는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눈물이든, 빗물이든 물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선 생명이 자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시급한 건 어쩌면 슬픔의 복원인지도 모른다. 너를 애틋하게 바라보는 것, 나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는 것, 그것이 우리를 엮는 관계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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