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편견
손홍규 지음 / 교유서가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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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제 세월이 할퀴고 간 상처는 끝내 세월로 치료할 수밖에 없음을 어렴풋이 알 만한 나이가 되었다. 크게 자랑할 거리는 아니지만 말이다. 그것은 치료라기보다 하나의 상처가 다 아물기도 전에 또 다른 상처를 더함으로써 생길 수 있는 고통에 대한 점진적 내성일지도 모른다. 고통에 대한 반응이 그렇게 점차적으로 둔해지다가 종국에는 '죽음'이라는 가장 큰 고통을 태연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네 삶이라면 상처에 또다른 상처를 더하는 것은 지당하고 옳은 일이다.

 

손홍규의 산문집 <다정한 편견>을 다시 읽었다. 실상은 어이없는 실수에서 비롯된 일이었지만 괜히 시간만 낭비했다, 자책할 일만은 아니었다. 재작년 여름에 이 책을 읽고 리뷰까지 썼음에도 불구하고(http://blog.aladin.co.kr/760404134/7660211) 어떻게 나는 남의 일인 양 까맣게 잊은 채 도통 기억을 떠올리지 못했던 것일까. 급기야 나는 책을 새로이 구매했고, 모르는 낱말에 밑줄까지 그어 가면서 꼼꼼히 읽었다. 지난 주말, 방 청소를 하던 중 마구잡이로 쌓아올린 책더미 속에서 유난히 낯이 익다 싶은 책 한 권을 발견하였는데, 아뿔싸, 그것은 바로 내가 읽고 잇는 바로 그 책, 손홍규의 <다정한 편견>이었다.

 

"완전한 독서를 위해 우리가 준비할 것은 경이로운 것들 앞에서 기꺼이 감탄할 자세 하나면 된다. 마치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그렇다면 언젠가 우리는 책 너머의 것들에 감탄하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독서는 읽는 행위가 아니라 교감하는 행위다. 좀더 외설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문장들과 속삭임을 나누고 손길을 나눈다. 책과 동침하고 책과 사랑을 나눈다. 책은 우리 안에서 익어가고 발효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책과 하나된 스스로를 출산한다." (p.167)

 

지난 2008년부터 3년 반 동안 일간지에 연재했던 칼럼 〈손홍규의 로그인>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는 그의 산문집에는 당시에 썼던 180여 편의 글 중에서 138편만이 실려 있다.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1부 '시간이 지날수록 초라해지는 목록', 2부 '선량한 물음', 3부 '바느질 소리', 4부 '다정한 편견'의 제목 하에 글의 내용에 따른 분류가 이루어진 듯했다.

 

1부에는 주로 작가의 고향이나 가족을 주제로 한 글들이 많다. 새로 산 하얀 고무신을 물에 떠내려 보낸 후 혼이 날까봐 무서워서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근동을 배회하다 밤이 늦어서야 들어간 집의 댓돌 위에 놓인 또다른 새하얀 고무신을 보고 눈물을 찔끔 흘렸던 추억 등 작가의 마음 속에서 한 폭의 그림으로 간직된 여러 이야기들이 읽는 이의 가슴을 아련하게 한다. 2부에는 소소한 일상에서 건져올린 작은 깨달음과 다정한 이웃들의 따뜻한 시선을 담았다. 방을 구하기 위해 인터넷 직거래 카페를 들락거리며 우연히 보게 된 타인의 삶의 일부, 고즈넉하지도 평안하지도 않았던 그들의 삶에서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3부에는 소설가로서 문학을 대하는 작가 자신의 자세와 습작시절 등을 다룬 글들이 담겨 있다. 글은 왜 쓰는지, 무엇을 쓸 것인지, 책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등 작가로서 살아가는 자신의 애환과 그럼에도 주관을 잃지 않고 살아가고자 애쓰는 작가의 모습이 그려진다. 4부에는 주로 사회적 이슈에 대한 작가 자신의 생각과 시대의 풍경이 담겨 있다.

 

재작년에 내가 썼던 리뷰에서도 언급했던 바이지만 작가의 글에는 잊혀져가는 순우리말이 적절히 섞여 있다. '여축없다', '몰강스럽다', '각다분하다', '끄느름하다', '비루먹다', '메지구름', '는질는질', '그들먹하다' 등의 낱말들이 섬처녀처럼 수줍게 다가온다. 이보다 더 많았더라면 아마도 나는 자신의 부족한 우리말 실력을 탓하기보다는 책을 읽는 내내 '잘났어 정말' 하고 비아냥거렸을지도 모른다.

 

"눈 내리는 바다는 늘 해맑게 웃던 이가 어느 날 속깊은 울음을 터뜨렸을 때처럼, 타인의 내면을 무심코 목격했을 때처럼 나를 당황스럽게 했다. 그리고 나는 이 당황스러움이 삶을 구성하는 찬란한 순간들임을 알았다. 상대의 진심을 알게 되던 속수무책의 순간들을 겪듯 매 순간 당황하고 당황하며 견뎌내야 하는 게 삶이라면 그 삶 가운데 비장하지 않은 삶이란 없다는 것도." (p.127)

 

길게 늘여 쓴 글이라고 해서 없던 감동이 갑자기 생길 리도 없지만 짧은 글이라고 해서 감동의 여운이 비례하여 짧아질 리도 없다. 내가 이 말을 하는 까닭은 작가의 글이 원고지 4.5매 내외의 짧은 글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말'에서도 밝혔듯 이와 같은 분량상의 제약 때문에 작가 또한 괴로웠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짤막짤막한 그의 글을 읽으면서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작가가 말하는 장면들을 모두 떠올릴 수 있었다. 원고지 4.5매로 압축했던 까닭에 행간의 의미는 더욱 깊어졌고 언어 너머의 여운 또한 길어진 듯했다. '행복은 건강과 좋지 않은 기억력에 달려 있다.'고 했던 잉그리드 버그만의 말이 새삼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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