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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좋아하세요... - 미술관장 이명옥이 매주 배달하는 한 편의 시와 그림
이명옥 지음 / 이봄 / 2016년 12월
평점 :
'시'는 '읽는다'거나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다. 그렇게 말하는 순간 '시'는 저 멀리로 사라져버린다. '시'는 단순히 우리의 눈을 통하여 적당히 '스며들' 뿐이고 서서히 '중독되는' 것이기에 읽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시어를 보는 순간 우리는 뇌를 통하여 이해하는 게 아니라 가슴을 통하여 젖어들거나 숨을 쉬듯 세포 깊숙이 스며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는 설명할 수 없다.
단순히 단어와 단어의 결합인 듯 보이는 것은 '시'가 아니다. 시의 첫 행을 읽는 순간,멀고도 먼 과거의 어느 한 시절로 회귀하거나 고향 마을 어드메쯤을 배회하거나 동화 속 꿈길을 걷게 되는 게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시'의 마법이다. 그러므로 '시'는 졸졸졸 시냇물 소리가 되었다가 눈 내리는 고요가 되었다가 산골 소녀의 맑은 노래가 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시'를 어떻게 '이것이다' 하고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을까.
미술관장 이명옥의 <시를 좋아하세요...>를 읽다가 그 옛날 내가 좋아하던 시집을 밤새 뒤적였었다. 윤동주, 정지용, 한용운,서정주, 김수영, 김남조, 기형도, 이성복, 프랑시스 잠, 로버트 프로스트... 세월이 한참 흘러 주름이 깊게 진 옛동무를 만난 듯 책에서는 구수한 곰팡내가 풍겨왔다. 나는 얼마나 오랜 시간'시'를 잊은 채, '시'와 동떨어진 삶을 살았던 것인가. '시'를 잊은 채 얼마나 많은 아픔을 위로받지 못하였던가.
"시 배달을 하는 동안 '시는 펜디멘토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긴 세월 동안 나 자신도 몰랐던 나의 진짜 얼굴, 차마 말하지 못하고 묻어버린 감정들, 깊숙이 숨겨버린 그리운 기억들을 새롭게 끄집어내어, 그것을 다시 보고 느끼게 해주었다는 의미에서 말입니다." (p.6)
서울 안국동에 위치한 사비나 미술관의 관장이기도 한 저자는 이 책에서 '그림 큐레이션'에서 더 나아가, '시 큐레이션'을 융합했다. 저자는 지인 중 한 사람에게 매주 한 편의 시를 배달하고 감상평을 주고받으면서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떨 때 기뻐하고 괴로워하는지, 삶의 고민이 무엇인지, 위로받기를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지 알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이 책은 저자가 사랑하는 시와 그에 대한 감상평과 그에 알맞은 그림의 콜라보인 셈이다. 1장 '시가 처음일지도 모를 당신에게', 2장 '사랑, 시' 3장 '오직 나에게만' 4장 '삶에게, 죽음으로부터' 5장 '시를 더 좋아하게 된 당신에게' 마지막 장 '아주 특별한 두 사람에게'로 구성된 이 책은 저자에게도, 책을 읽는 독자에게도 각별한 의미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제겐 좋은 책과 평범한 책을 가르는 기준이밑줄긋기를 했느냐 아니냐로 결정되거든요. 저는 책을 읽다가 저와 생각이 같거나 공감하는 구절이 나오면 곧바로 밑줄긋기를 합니다. 제가 글로 표현하고 싶었지만 능력이 부족해 포기한 문장을 책 속에서 발견했을 때도 역시 밑줄을 긋습니다. 밑줄긋기하고 싶은 책을 발견할 때의 제 기쁨에는 부러움과 질투심이 섞여 있어요. 타인의 마음을 읽어내고, 그것을 글에 완벽하게 담아내는 재능을 가진 이에 대한 찬사와 제 부족함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지요." (P.272)
이 책에 실린 28편의 시만 보더라도 시에 대한 저자의 내공을 가늠할 수 있다. 사실 시의 소개와 더불어 자신의 감상을 덧붙인 책은 많지만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만한 책은 그리 많지 않다. 자신만의 독특한 감상이나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 획일적인 감상은 자칫 식상한 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 책을 주목했던 것도 바로 그런 까닭이다. 저자는 비록 글에 대한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고는 있지만 미술을 전공한 분이 시에 대한 이해력이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시는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체감되는 것이기에 아무리 서툰 글솜씨라고 해도 그 깊이가 느껴지게 마련이다. 누군가에게 중독된 시 한 편은 다른 누군가에게 고스란히 전이되어 그렇게 스며드는 법이다. 그러므로 시는 아름다운 중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