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
공선옥 지음 / 창비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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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독자들보다 프로 작가들에게 더 사랑받는 작가가 있게 마련입니다. 공선옥 작가도 그런 작가 중 한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고 작가들 사이에서만 인기가 있고 일반 독자들로부터의 인기가 아주 없다는 애기는 아닙니다. 일반 독자들로부터 듣는 찬사보다 동료 작가들의 칭찬이 더 깊고 강하다는 것이지요. 이런 데에는 아마도 그녀의 작품 속에 깃든 날것의 느낌, 어느 것에 물들거나 규격화되지 않은 자유로운 느낌이 작품을 읽는 독자들 가슴에 차곡차곡 쌓이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소설가 공선옥의 오랜 독자 중 한 사람인 나는 한국 소설의 정형화된 틀로부터 툭 불거져 나간 듯한 그녀의 작품들을 늘 기꺼운 마음으로 읽어 왔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광주 민주화운동에 맞닿아 있는 작가의 오랜 분노가 답답한 응어리로 남아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었습니다. 작가로 등단하기 이전까지의 힘들었던 삶에서 발원하는 절망 또한 작품 속에서 그 분노에 더해졌던 까닭에 독자가 느끼는 한과 분노는 한층 배가되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어제는 대통령의 3차 대국민 담화가 있었습니다. 탄핵 소추안 표결을 염두에 둔 여러 포석이었겠지요. 이미 예견된 일이었지만 내용인 즉 자신은 잘못이 없지만 국정의 공백과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여야 정치권이 논의하여 정권 이양 방안을 만들어주면 그 일정과 법 절차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달리 말하면 자신은 잘못이 없지만 '퇴진을 바라는 국민들 의사가 완고하니 국민들을 대신하는 국회에서 알아서 해라' 하는 의미이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누가 보더라도 가능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찌 보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지 않겠다는 속내를 사과의 형식으로 에둘러 말한 것일 뿐 아무런 의미도 없는 담화였습니다. '뮤전무죄 무전유죄'의 속설에 더하여 '유권무죄 무권유죄'의 현실은 과거 5ㆍ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듯합니다.

 

"세상이 미친 거여. 미치지 않은 세상은 언제였을까. 나한테도 미치지 않은 세상이 있었을까. 딸한테 몹쓸 짓을 한 아버지는 미쳤지. 아버지가 미쳤다는 것을 모른 척한 엄마도 미쳤지. 식구들 다 미쳤지. 동네 사람들 다 미쳤지. 나도 미쳤지. 내 속에 이 큰 슬픔을 누구한테 말할까. 미친 세상에서 미치지 않는 사람들은 다 미친 거여. 미친 세상에서 미친 사람만이 미치지 않은 거여." (p.198)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많지만 이야기는 주로 정애와 묘자에게 집중되고 있습니다. 소설은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1970년대 중반 남도의 시골 마을 '새정지'와 80년을 전후한 광주를 배경으로 진행됩니다. 새정지에서 나고 자란 두 소녀 정애와 묘자는 가난한 시골 마을에서도 가장 힘없고 가난한 축에 속했습니다. 경제적으로 무능한 아버지와 정신이 온전치 못한 어머니 사이에서 맏딸로 태어난 정애는 어느 날 그녀의 아버지가 투전판에서 돈을 모두 잃고 도망가는 바람에 세 명의 동생과 임신한 어머니를 도맡게 됩니다. 묘자 또한 정애와 별반 다르지 않아서 그녀의 어머니가 자신과 할머니를 두고 개가를 하는 바람에 몸이 불편한 할머니를 모시는 가장의 입장이 되었습니다.

 

바람막이가 없는 두 소녀에게 가해지는 마을 남자들의 더럽고 추악한 폭력은 끊이질 않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정애네 집 담장을 무너뜨리고 돼지와 오리를 훔쳐갑니다. 한편 새마을 연쇄점에서 하드를 얻어 먹은 바로 밑 동생 순애는 주인에게 몸을 뺏긴 후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우물가에서 빨래를 하던 정애도 '부로꾸 찍는 남자'에게 끌려가 몹쓸 짓을 당하고 맙니다. 정애의 엄마가 쌍둥이를 낳다가 목숨을 잃었고 아버지마저 동네 사람에게 살해되자 정애는 살아 남은 동생 두 명을 데리고 광주로 나가 콩나물 장사를 시작합니다.

 

"옛날이야기 싫어하는 세상에서 옛날이야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은 어디나 푸근하다. 새것을 말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무섭다. 모든 새것들은 다 무서운 것이다. 돈도 없고 힘도 없는 사람들에게는." (p.137)

 

정애가 새정지를 떠나고 5년의 세월이 흐른 1981년, 재가한 엄마와 함께 살기 위해 광주로 나온 묘자는 그곳에서 우연히 정애를 만나게 됩니다. 정애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소설에서는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지는 않지만 지난봄에 이 도시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다는 소문과 함께 군인들이 정애에게 몹쓸 짓을 하지 않았을까 추정할 뿐입니다.

 

엄마의 식당일을 돕던 묘자는 박용재와 사랑에 빠져 살림을 차리게 됩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발발 전에 카센타에서 일을 했던 박용재는 시민군으로 몰려 군인들에게 끌려가 모진 고초를 겪고 나온 후 충격으로 정신이 온전치 않았습니다. 직장마저 얻지 못한 박용재를 대신하여 묘자는 정애를 돌봐주던 식당 '영암집'에서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용재가 칼을 들고 자신을 죽이려 들자 그를 목졸라 죽이고 살인죄로 구속됩니다.

 

"영암집 숙자가 죽은 사람은 있어도 죽인 사람은 없는 야속한 세상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산 사람들은 사는 것에 바빠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어도 그 사람들이 언제 죽었냐 하고서 잊어버리고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인 사람이 분명히 있을 텐데도 그 사람이 누구를 죽였든지 말든지 내 알 바가 아니라고 시치미 뚝 떼는 세상이라고." (p.165)

 

정애는 동생들만 광주에 남겨둔 채 다시 새정지로 돌아갑니다. 육체와 정신이 온전치 못한 정애는 폐가로 변한 고향집에서 간신히 연명합니다. 그것도 한동안.

 

"이 세상에서 잡고 싶은 것은 아름다운 것이고 잡고 싶은 데도 잡히지 않는 것은 슬픈 것이다." (p.34)

 

세월을 훌쩍 건너뛰어 감옥에서 풀려난 묘자는 숙자가 하던 '영암집'을 자신이 맡아서 하게 됩니다. 백발이 된 묘자는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정애인 듯한 여인과 조우합니다. 묘자의 귀에 그 여자의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묘자는 사라진 여인과 아련한 노랫소리에 빗속에서 넋을 놓습니다.

 

"나는 어디서 왔을까, 하고 묻던 여자는 어디로 갔을까. 내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 하고 묻던 여자의 노래는 어디로 갔을까. 여자가 남긴 노랫소리만이 빗물에 젖고 있었다. 노래에 빗물이 스며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빗물은 노래와 한몸이 되어 어디론가로 흘러갔다. 빗물을 타고 노래가 어디로 흘러가는 것인지 알 수 없어 묘자는 한참 동안 빗속에 있었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저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를 생각하면서." (p.260)

 

아침부터 흐렸던 하늘에선 기어코 비가 내립니다. 궂은 날씨를 핑계삼았던 나는 공선옥 작가의 소설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를 끝내 다 읽고 말았습니다. 차마 중간에 내려놓을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삶이 말할 수 없이 힘들 때에는 누구나 노랫가락 한 소절 흘러나오게 마련입니다. 들어주는 사람 아무도 없을지라도 허공에 대고 꾸역꾸역 부르게 되지요. 아마도 우리의 핏속에는 원시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노래 DNA가 흐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인지 공선옥의 소설 <그 노래는 어디에서 왔을까>에는 차마 말로 할 수 없는 참혹한 장면에서는 여지없이 노래가 등장하곤 합니다. 작자미상의 오래된 노래인 양 출처도 알 수 없는 노래들이지요. 그 노래로 인해 소설은 아주 오래전의 구전가요인 양 환상과 추억으로 읽힙니다. 작가는 아픈 현대사의 슬픔을 노래로 씻어내려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주말마다 광화문 광장에 울려퍼지는 노래도 이와 같을 것입니다. 국민들의 분노와 응어리가 노랫가락에 한처럼 서려 있음을 정치인들은 똑똑히 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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