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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이 나를 깨웠다
구영회 지음 / 프리이코노미라이프 / 2014년 11월
평점 :
품절
내가 아침에 본 하늘은 쪽빛 궁룽이 금방이라도 와그르르 무너져 내릴 듯 맑고 투명한 것이었다. 허공을 가로지르는 바람과 갑자기 뚝 떨어진 기온은 선선하다 못해 소슬한 추위를 느낄 만큼 갑작스러운 것이었지만 달라지지 않은 하늘에 나는 저으기 안심했던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그 길고 혹독했던 더위를 우리 곁에서 물러나게 만드는 데에도 지극히 짧은 시간이 필요했던 것처럼 가을 기분을 제대로 느끼기도 전에 벌써 이른 추위를 느끼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올 더위가 어찌나 질기고 무더웠던지 혹서의 고통은 9월을 지나 10월까지 이어지는 게 아닌가, 걱정했었는데 웬걸 달라져도 이렇게 달라질 수 있을까 싶게 변하지 않았던가. '급변'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인 듯 싶었다. 바야흐로 '독서의 계절'이 찾아왔구나, 싶었던 게 엊그제인데 나는 벌써 겨울을 염려하고 있으니 올해도 '독서의 계절'은 허울뿐인 말잔치에 그치고 말았다. 그러나 이맘때의 시간은 생각을 가다듬고 주변을 둘러보기에는 더없이 좋은 계절이 아닌가.
얼마전 어느 인터넷 기사에 구영회 저자의 인터뷰 기사가 실린 걸 우연히 보게 되었다. 전에 방송에서 보았던 그의 얼굴과는 판이하게 달라져 있었다. 그것은 세월의 흐름에서 오는 필연적인 어떤 것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명함이 필요 없을 때,비로소 자유롭다" 는 제목의 기사에 곁들인 그의 사진에서 그는 티끌만 한 욕심도 없이 모든 걸 내려 놓은 듯한 편안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33년의 방송생활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었던 그런 얼굴이었다. 어제 도서관에 들렀을 때 나는 문득 그의 얼굴이 떠올랐고, 그의 저서 <지리산이 나를 깨웠다>를 빌려 읽게 되었다. MBC 방송국의 평기자로 시작하여 CEO까지 지낸, 자타가 공인하는 방송맨인 그가 지리산에 정착하여 써내려간 산중일기는 그의 책 <지리산이 나를 깨웠다>에 고스란히 실려 있었다.
"나 자신이 '허방 지르는 나'로부터 잘 벗어나, 진정 나는 누구이며 어떤 존재인지, 나의 삶의 본질은 무엇인지에 대해 내가 깊은 잠에서 활짝 깨어나야 한다는 성찰을 하게 된다. 이것은 앞으로 남은 삶을 무엇을 향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내 삶의 방향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깨어나는 그리고 깨어난' 삶을 살아야 하겠다는 것이다. 깨어나지 못한다면 꿈속을 헤매게 될 것이다." (p.152)
1부 '나는 누구일까', 2부 '길 안개가 걷히다', 3부 '그물망을 타고 온 인연들'의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 <지리산이 나를 깨웠다>는 저자가 지리산에 정착하여 제2의 삶을 살면서 깨달았던 삶의 경구와 소소한 일상과 그 속에서의 소중한 인연들을 기록하고 있다. 방송생활을 하면서도 지리산을 수없이 오갔다는 저자가 지리산에 정착한 것은 어쩌면 정해진 순서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30여 년을 방송계에 몸담았던 그가 산중에서의 불편한 삶을 자발적으로 선택하기까지는 책에 다 쓰지 못한 많은 사연들이 있었을 것이다.
"당신과 나의 삶은 어쩌면 동그란 원의 한 점에서, 온갖 매혹적인 것들을 찾아 가출했다가 매혹의 화장이 지워진 맨얼굴과 잿더미를 수없이 겪은 뒤에, 다시 그 출발점에 되돌아오는 귀가의 과정일 수 있다." (p.74)
여름내 온 산을 가득 메우던 매미 울음 소리가 귀뚜라미 소리로 바뀌었던 것도 한 달여. 내가 잠시 잊고 있는 순간에도, 다른 무엇엔가 한눈을 판 순간에도 뭇 생명들의 쉼 없는 대체는 끊김이 없이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올해로 은퇴 7년차가 되었다는 저자는 앞만 보고 달렸던 지난 삶을 되돌아보며 그의 불편했던 마음을 이 책에 쓰고 있다. 젊은 시절에 그가 앉았던 자리는 이제 다른 누군가로 대체되었을 것이다. 계절이 순환하듯 우리의 자리 또한 순환하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허망할 수도 있는 이런 순리가 <지리산이 나를 깨웠다>의 앞부분인 '나는 누구일까'에 실려 있다. 그 부분을 읽고 있노라면 언젠가 내가 읽었던 마이클A. 싱어의 <상처받지 않는 영혼>을 떠올리게 된다. <상처받지 않는 영혼>의 실천편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저자의 생각은 여러 면에서 마이클A. 싱어의 사상에 영향받고 있었다.
"내가 강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듯이, 내 안에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자가 있다. 그 자는 내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언제나 나를 관통하고 있다. 그 자는 내가 알아차리면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내 안의 알아차림 '너머'에 분명히 어떤 존재가 있는 듯하다. 그 자가 바로 나의 최종적인 정체성 아닐까. 낌새는 분명하지만 아직 드러나지 않는 이 자가 나에게 손짓한다. 이 존재의 이름을 순수 의식이라 부르든, 우주 생명이라 부르든, 영혼이라 부르든, 아니면 종교적으로 성령 또는 불성이라고 부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p.29)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고 했던가. 여우가 죽을 때 제가 살던 굴이 있는 언덕 쪽으로 머리를 둔다는 뜻의 한자성어 말이다. 지리산 인근 전남 구례 출신의 저자가 자신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지리산에 정착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내 머릿속에 순간적으로 떠올랐던 단어는 바로 그것이었다. 저자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저자의 성정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오히려 순리인 양 여겨지기 때문이다. 노년기는 제2의 유아기가 아닐 수 없다. 인생을 통틀어 오직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기는 유아기와 노년기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람에게나 뭇 짐승들에게나 노년이 되면 자신의 어린 시절이 떠오르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