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약 집을 짓는다면 - 후암동 골목 그 집 이야기
권희라.김종대 지음 / 리더스북 / 2016년 4월
평점 :
품절


삶을 유지하는 데 의,식,주보다 더 중요한 게 있을까마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세 가지를 모두 제 손으로 직접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많지 않은 게 아니라 현대에 이르러서는 극히 적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물론 나라고 다를 게 없다. 돈이라는 매개체가 없다면 의,식,주 중 하나도 제대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얘기다. 말하자면 나는 누군가의 손길이 끊긴다면 잠시라도 생을 지탱할 수 없는 딱한 존재인 것이다. 농경사회를 경험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현대인 대부분이 나와 같은 어른아이가 아닐까 싶다. 자신의 생명을 온전히 다른 사람의 손에 의지하는 지극히 연약한 존재로서 말이다.

 

"어느덧 사람들은 가방을 비교하는 것처럼 아파트도 비교하며 고른다.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생각한다. 단순히 쇼핑하듯 소비적으로 주거환경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삶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을 창조해내는 것. 그것이 바로 집짓기에서만 가능한 순기능이라고." (p.41)

 

오래전에 보았던 인간극장이 생각난다. 강원도의 오지인 곰배령에 정착하여 사는 부부의 이야기이다. 아내는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엘리트였고 남편 역시 도시에서만 살던 도시내기였는데 우연히 들렀던 곰배령이 맘에 들어 그들은 결혼을 하고 그곳에 정착하였다고 했다. 겨울에는 눈이 2m씩 쌓인다는 그곳에서 그들은 행복한 듯 보였고, 인간극장이 방영되던 당시 남편은 손수 새 집을 짓고 있었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말이다. 그때 그가 했던 말을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동물들도 제 살 집은 스스로 짓는데 인간도 그래야 하지 않겠나 하는 취지였던 것 같다.

 

실내건축 디자이너 아내 권희라와 영화 프로듀서 남편 김종대가 쓴 <우리가 만약 집을 짓는다면>은 시골이 아닌 도심 한복판에서의 집짓기에 관한 책이다. 땅을 사고 설계를 하고 건축을 하고 분양이나 임대를 하는 전문 건축업자로서의 집짓기가 아닌, 비록 건축에 관련된 일을 하고는 있었지만 자신이 살 집을 지어본 적 없는 초보자로서 그들은 우리네 일반인과 하등 다르지 않았다. 땅을 물색하고, 부동산 구매계약을 하고, 설계를 하고, 최종적으로 집을 짓기까지의 500일간의 이야기가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전문기술이 있다고 해도 건축주의 의견에 귀 기울이지 않는 건축가는 남의 집을 설계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고 싶은 집과 살고 싶은 삶이 같은 의미인데 우리 삶에 대한 이해가 없는 건축가에게 모든 걸 맡기고 싶지 않았다. 우리의 꿈을 실현하는 것이니 우리가 하는 게 당연하다는 야심 찬 생각이 든 순간이었다." (p.112)

 

집짓기는 자존적인 삶을 살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부부는 말한다. 집값에 휘둘리지 않고, 유행이나 트렌드가 바뀔 때마다 쇼핑을 하듯 이 집 저 집을 비교하지도 않고, 그런 습관으로 인해 우리집 아이와 남의 집 아이를 비교하며 키우지도 않고, 텃밭에서 직접 키운 채소로 요리를 해서 가족과 함께 나누고, 집 전체를 놀이터 삼아 만껏 뛰놀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집짓기는 그들 부부에게 일차적인 선결 조건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집을 짓는 과정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때로는 6개월간 공들여 그린 설계도를 쓰레기통에 버리기도 했고, 암벽으로 인해 공사를 멈추기도 했고, 관련 건축법에 의해 고생을 하기도 했고, 시공사와의 충돌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집짓기는 단순히 주거공간을 마련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그들 부부의 전 재산과 부모님의 주거비를 모두 합쳐 뛰어든 공사였기에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낭비 없는 삶이란 주변 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우리가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며 사는 것일 뿐 인색한 구두쇠가 되자는 의미는 아니다. 집 짓는 과정도 힘들기는 했지만 우리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들에 집중할 수 있었기에 후회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삶의 질을 바꿀 수 있는 의미 있는 실천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노력들을 통해 취향을 개발하면 더 만족스러운 인생을 살 수 있지 않을까?" (p.311)

 

집을 마련한다는 건 끝이 아니라 제2의 삶을 준비하는 첫 단계일 뿐이다. 부모의 품을 떠나 자신의 가정을 꾸리고 앞으로 어떠어떠하게 살겠다는 선언과도 같은 것이다. 인생의 밑그림을 그리듯 자신이 살 집을 스스로 설계한다는 건 다른 사람이 지은 집을 백화점 매대에 쌓인 여러 물건들 중 맘에 드는 하나를 골라 잡는 매매의 한 형태로서의 주거계획과는 근본부터 다르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집짓기는 자신의 경제력과 삶의 목표, 추구하는 가치와 방향성 등 전반적으로 고려할 게 많다는 점이다. 기분에 의해 무작정 시작했다가는 모든 걸 한순간에 날려버릴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책은 어쩌면 도시에서 집짓기를 꿈꾸는 모든 사람들에게 집짓기의 A to Z가 될지도 모르겠다. 시작점에서의 처지나 과정에서 부딪치는 제반 문제가 완전히 같을 수는 없겠지만 참고서나 길라잡이의 역할은 충분히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