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테라스에 펭귄이 산다 - 마젤란펭귄과 철부지 교사의 우연한 동거
톰 미첼 지음, 박여진 옮김 / 21세기북스 / 201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매일 아침 산에 오르는 나로서는 자연에 대한 애정이 각별할 수밖에 없다. 촌에서 태어나 자연 속에서 성장했던 것도 무작정 자연에 끌리는 한 이유가 될 것이다. 겨울이건 여름이건 일단 산에 오르면 나는 그렇게 마음이 푸근할 수 없다. 나무 위를 무리지어 오르는 청설모와 이따금 만나는 고라니의 가벼운 도약을 보는 것만으로도 더없이 즐겁다.

 

<우리집 테라스에 펭귄이 산다>를 단숨에 읽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자연을 좋아하는 나의 성향 탓이 아닐까 싶다. 호기심 많고 모험심 강한 영국 시골 마을 출신의 청년 톰 미첼은 오직 낯선 곳을 탐험하고, 야생을 보고 싶다는 욕망에 이끌려 남아메리카의 아르헨티나로 향했다. 그가 갔던 1970년대초의 아르헨티나는 정국이 불안하고 인플레이션이 극심했던 시기였지만 그는 돈을 벌겠다는 욕심보다는 먹고 자고 생활하면서 새로운 문화와 자연을 체험하는 게 더 좋다고 그는 말했다. 아르헨티나의 유일한 기숙 학교인 세인트 조지의 선생님으로 자원하였고 그는 그렇게 아르헨티나에서의 삶을 시작했다.

 

"혼자 여행을 하다 보니 이전에 보고 들엇던 모든 것을 다시 생각해보고, 남아메리카에 대해 막연하게 품었던 기대와 현실을 비교해보면, 진정으로 중요한 것과 소중한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었다. 이 세상에는 경이롭게 아름다운 것들과 이루 말할 수 없이 귀중한 것들이 이토록 많은데 인간은 다른 모든 종에게 그토록 이기적이고 잔인할 수 있을까?" (p.281)

 

작가는 어느 날 우루과이 해안의 휴양도시 푼타델에스테 Punta del ESte의 전망 좋은 아파트에서 휴가를 보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친구 벨라미스가 한겨울에는 사용하지 않는다며 휴가용 아파트를 그에게 기꺼이 내준 것이다. 그렇게 느긋하고 여유로운 휴가를 보낸 작가는 떠나기 전날 서둘러 짐을 꾸리고 청소를 하고 마지막으로 바닷가 산책을 나섰다. 그런데 그곳에서 그는 기름과 타르에 덮여 죽어가는 수많은 펭귄의 사체를 목격한다. 기름유출 사고는 아니었고 환경 관련 규제들이 허술했던 당시의 유조선들은 화물을 내린 후 바닷물에 탱크를 씻기 일쑤였고, 유조선에서 흘려보낸 기름에 의해 많은 펭귄들이 죽어갔던 것이다.

 

그 끔찍한 장면을 보면서 해안을 따라 걷던 작가는 어느 순간 미약한 움직임을 목격하고 걸음을 멈춘다. 죽기 직전의 마지막 고통의 몸부림을 그는 차마 외면할 수 없어서 기름에 덮인 펭귄을 들고 아파트로 향한다. 아파트 욕실에서 펭귄을 씻기던 중 부리에 손가락을 물려 깊은 상처를 입기도 했지만 작가는 기름을 제거한 후 바다로 되돌려 보낼 생각으로 열심히 씻겨주었다. 그러나 다 씻긴 펭귄을 데리고 바닷가에 나갔지만 그 새는 펭귄 무리를 향해 나아가지 않고 다시 작가를 따라왔다고 한다. 휴가를 마친 작가는 어쩔 수 없이 그 펭귄과 함께 우루과이로부터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로의 험난한 여정을 시작했고 우여곡절 끝에 세인트 조지의 기숙사로 복귀했다. 스물세 살의 영국인 청년과 마젤란 펭귄 후안 살바도르(작가가 붙여준 펭귄의 이름)의 동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후안을 현명한 새라고 생각했다. 후안의 외모도 한몫했다. 성직자들이 입는 빳빳이 세운 흰색 칼라 모양의 털에 길고 검은 망토를 입은 그의 모습은 마치 빅토리아 시대의 어느 너그러운 노신사처럼 보였다. 통풍으로 다리가 불편한 그런 노인 말이다. 아니면 목에 십자가 목걸이만 두르면 주교님처럼 보일 수도 있다. 언뜻 보면 말이다." (p.175)

 

후안의 소문은 학교 전체로 삽시간에 퍼져나갔고 300명이 넘는 학생들과 교직원들, 심지어 경비원이나 청소를 담당하는 아줌마들에게도 후안은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작가의 테라스에 거처를 정한 후안은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눈을 마주치고 격렬하게 반겨준다. 인간과 동물이라는 관계를 떠나 사람들은 차츰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후안을 대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후안이 좋아하는 청어를 사다 날르고 테라스 청소를 하고 같이 산책을 하는 등 후안은 세인트 조지의 명실상부한 마스코트가 되었다. 그렇게 사람들과 격이 없이 소통하면서 우정을 키워나갔다.

 

"후안은 펭귄이 아닌 사람을 대상으로 사회생활을 했다. 불현듯 후안이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들은 후안이 보내는 신호를 일일이 받아주고 대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연 나는 사람 한 명도 없이 오직 펭귄들하고만 얼마나 살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지금 세인트 조지에 있는 후안 살바도가 그렇게 살고 있을 테니까" (p.247)

 

작가는 후안을 펭귄 무리에 되돌려 보내기 위해 발데스 반도를 둘러보는 둥 노력을 하지만 그것이 결국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후안의 입장에서도 행복한 것만은 아니라고 판단하기에 이른다. 좋든 싫든 그는 후안을 끝까지 돌보겠다고 결심한다. 방학이면 그는 후안을 세탁실의 사라 아줌마에게 맡기거나 교사 루크에게 맡기고 한동안 여행을 하기도 하면서 잘 지낸다. 그러나 루크에게 맡겼던 어느 여름날 갑자기 후안이 죽었고 루크에 의해 안장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작가는 아르헨티나에서의 특별했던 추억을 안은 채 영국으로 귀국했고, 후안과의 잊지 못할 경험을 책으로 냈다. 이 책에서 작가는 후안이 마치 자신의 친구인 양 코믹하게 쓰고 있다. 노인이 된 작가는 다시 아르헨티나에 돌아와 후안과 지냈던 추억의 장소를 더듬기도 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몇 년 전에 읽었던 <아름다운 지구인 플래닛 워커>를 떠올렸다. 샌프란시스코 만의 기름 유출 사고를 목격하한 후 화석 연료를 사용하는 자동차 시승을 거부하였고, 미국 전역을 걸으면서 17년 동안 말을 하지 않았던 존 프란시스. 이런 책들을 읽으면 인간의 편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우리는 자연에 대해 너무나 잔인하지 않은가 반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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