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탐구생활
김현진 지음 / 박하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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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약점이나 치부를 가리는 것 하나 없이 솔직하게 드러내는 사람을 보면 이유도 없이 괜히 화가 난다.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 숨김 없이 내보이는 작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데 정작 그것을 읽는 내가 마치 내 일인 양 화가 나는 것이다. 이건 또 무슨 시츄에이션? 하고 묻겠지만 사실 왜 그런지 정확한 이유를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자신의 약점을 적당히 가리고 살짝 내비치거나 조금만 힌트를 준다 한들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아닌데 굳이 시시콜콜 다 까발려서 자신의 이미지만 깎아먹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내가 작가와 친밀하다거나 특별한 관계가 있어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독자로서 안타까운 마음에 하는 말이다.

 

최근에 알게 된 김현진 작가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육체 탐구 생활>은 그녀가 쓴 책 중 내가 읽은 두 번째 작품에 불과하지만 지나친 솔직함으로 인해 작가의 문학적 재능이 덜 부각된다거나 작가의 인생관이나 세계관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독자가 있을까 우려하는 마음이 드는 걸 어찌할 수 없었다. 우리 사회에서 솔직함이라는 게 때로는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하거니와 젊은 사람의 치기 어린 반항, 또는 세상을 향한 삐딱한 시선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상처는 어느 누구에게도 하소연하지 못한 채 고스란히 작가 자신이 떠안아야 하는 몫으로 남기 때문이다.

 

"화내야 할 때 화낼 줄 모르고 참아야 할 때 참을 줄 모르는 불균형한 어른이 되면서 내 영혼은 몸에서 달아나는 법에 너무 익숙해져버렸다. 모멸과 슬픔에 맞서 싸우지 않고 천장 어디쯤에서 남처럼 자기 몸을 쳐다보면서, 저기 가서 좋은 일이 없었다면서, 잊고 싶은 기억이 불로 지지듯 들고 일어나 어제 일처럼 쿠킹호일 구기듯 마음을 구겨버리면 술을 찾아 사고를 저지르고 후회한 게 지난 10년이었다." (p.83)

 

이 책에는 그닥 길다고 말할 수도 없는 작가의 지난 삶이 빼곡히 자리잡고 있다. 책은 50대의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한 아버지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녹즙 배달을 하던 시기에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를 서둘러 화장하고 유골함이 엄마와 함께 대구로 향할 때 자신은 집에 남았다고 한다. 그때 그녀의 엄마는 유골 일부를 청국장통에 남겨두고 가셨는데 작가는 자신이 마련한 예쁜 통에 유골을 옮겨 담고 빈 통을 헹구는데 물 위에 뜨는 유골을 차마 하수구에 버릴 수 없어서 물과 함께 마셨다고 한다. 역시 도발적이다. 작가는 그렇게 자신의 육체를 제공한 아빠의 죽음으로부터 자신의 육체가 걸어온 길을 더듬는다.

 

생활에 지쳐 자학하듯 살았던 이야기며, 사랑으로부터 늘 피하고 도망치기만 했던 지난 날이며, 그 과정에서 만났던 이웃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길지 않았던 그녀의 삶에 비해 그녀가 들려 주는 이야기는 50년대 피란민의 아주 오래된 이야기처럼 파란만장하기만 하다. 어찌 살았나 싶을 정도로 피폐하다. 30대 아가씨의 삶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러나 냉정한 말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그 중의 일부는 작가 스스로 자초한 일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자신의 나약함을 숨기기 위해 없는 발톱을 일부러 드러낸 채 악다구니를 썼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총 4부로 이루어진 이 책에서 작가는 자신의 연애 경험담(2.사랑이라는 '불완전'명사)과 새벽에 녹즙을 돌리며 낮에는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의 이야기(3.파란만장 미스김)와 그녀가 참가했던 농성장과 가슴 아픈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내가 안타깝게 생각했던 것도 바로 그런 점이었다. 우리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누드 모델을 보고 성욕을 느끼거나 섹시하다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아무리 파란만장한 개인의 삶이라 할지라도 솔직하게 쓴 작가의 글이 그것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 끔찍하다고 느껴진다면 인정을 받지 못하는 건 자명한 일. 그것은 작가의 재능과는 하등 무관한 일일 터였다.

 

"까마득한 옛날, 고등학교 그만두면 모두 장선우 감독의 <나쁜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가출하고 담배 피고 신나 불고 그런 애들이 된다고 다들 생각할 무렵 교장과 싸우고 싸우다 고등학교를 때려치운 것부터 시작해서 왜 그렇게 사느냐 하고 잔소리 들을 일이 서른 먹을 때까지 참 많고도 많았다. 삐딱한 글도 많이 썼고, 팔리지도 않는 삐딱한 책들도 많이 썼고, 부르는 데가 있으면 가서 삐뚤어진 이야기를 잔뜩 해댔다. 물론 이건 피곤한 짓이다. 나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관심병이라 한다면 그 또한 맞는 이야기다." (p.277~p.278)

 

어린 시절의 고통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과도하면 과도할수록 가난이나 삶의 고통으로부터 탈출할 방법을 궁리하기보다 고통에 견디는 법을 먼저 익힌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왜 그렇게 사느냐고 하지만 고통이 더 이상 고통으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익숙해졌다는 걸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른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너무나 뻔한 생각을 했더랬다. 작가의 지난 삶이 순탄하지만은 않았구나, 하는 그런 시답잖은 생각 말이다. 작가가 리영희 선생님의 병문안을 갔던 이야기를 이 책의 끝에 실었던 것도 다 이유가 있을 터였다. 어쩌면 작가는 자신의 육체 탐구를 마치고 영혼의 탐구를 새로이 시작했는지도... 아무튼 그녀의 앞날에 건투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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