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프리먼의 소설가를 읽는 방법
존 프리먼 지음, 최민우.김사과 옮김 / 자음과모음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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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시점에 맞춰 그저 아는 양, 적어도 한 번쯤은 들어본 것인 양 짐짓 자신을 속이고 감추면서 상대방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거나 몇 마디 동조의 말을 한 적이 있는지요? 부끄럽게도 저는 있었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제가 초등학교나 중학교에 다닐 때 읽었음직한 책의 경우에는 대체로 그랬던 것 같습니다.워낙 오래 전의 일이라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 책도 있고, 요약본을 읽었거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대강의 줄거리를 귀동냥으로 들었던 책도 있을 터인데 그마저도 구분을 할 수 없으니 그냥 고개나 끄덕일 밖에요. 물론 그래서는 안 되는 일이지요. 제 처지를 솔직하게 고백하고 한 수 배움을 청하는 게 백 번 천 번 옳을 터인데 항상 그놈의 자존심이 문제입니다. 책 한두 권 더 읽었다고 으스댈 일도 아니면서 늘 그렇게 하고 싶어 하는 이유를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본성이 깨끗하지 못한 탓이겠지요.그런 날이면 괜히 우울하고 기분도 좋지 않습니다.

 

『존 프리먼의 소설가를 읽는 방법』을 읽으면서 제 얄팍한 지식이 얼마나 부끄럽던지요. 이 책은 영국의 권위 있는 문학 계간지「그랜타(granta)」의 편집장인 저자가 전 세계의 이름 있는 작가 중 자신이 인터뷰한 70명의 소설가를 선별하여 작가의 인터뷰 내용과 함께 소개한 책입니다. 이들 가운데 7명이 노벨문학상, 8명이 퓰리처상(미국), 9명이 내셔널북어워드(미국), 7명이 부커상(영국), 12명이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미국)을 수상했다고 하는데 저는 그들 작가 중 삼분의 일도 채 알지 못하는 듯했습니다. 그마저도 작품은 읽어보지도 못하였고 어쩌다 한번쯤 작가의 이름만 간신히 들어본 듯한 작가들까지 모두 포함시켰는데도 그러했습니다. 이렇게 솔직하게 쓰고 나니 한편으로는 부끄럽고, 다른 한편으로는 속 시원한 느낌도 드는군요.

 

"나는 진짜 이야기꾼이란 쓸 수 있어서가 아니라 써야만 하기 때문에 쓴다고 믿는다. 그들은 세계에 대해 말하고자 하고, 이때 오직 이야기로만 말해질 수밖에 없는 것들이 있다. 이 책에 수록할 인터뷰들을 선택해야 했을 때, 나는 절박한 필요라는 감각을 느꼈던 작가들을, 그와 동시에 중요하고 아름다우며 즐길 수 있는 작품을 썼던 작가들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p.30)

 

이 책에 등장하는 소설가 중 제가 알던 작가를 나열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토니 모리슨, 조너선 사프란 포어, 무라카미 하루키, 귄터 그라스, 할레드 호세이니, 도리스 레싱, 폴 오스터, 가즈오 이시구로, 올리버 색스, 모옌, 존 업다이크, 이언 매큐언, 살만 루시디, 오르한 파묵 등입니다. 이들 작가의 작품은 제가 적어도 한 권 이상을 읽어보았다고 확신할 수 있고 지금도 기억하는 이름들입니다. 정말 형편없지요? 그나마 어디선가 들은 듯하고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자신할 수 없는 작가까지 포함하면 조금 더 되겠지만, 그렇게 한들 제 보잘 것 없는 지식이 크게 달라질 것 같지도 않습니다. 낯선 이름의 작가와 그들이 했던 인터뷰를 읽는다는 건 꽤나 따분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다 간간이 제가 좋아하는 작가의 인터뷰를 읽을라치면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슴에 그대로 전달되는 느낌이 들더군요. <속죄>를 쓴 이언 매큐언의 인터뷰처럼 말이지요.

 

"제 생각에 다른 사람이 되어본다는 게 어떤 기분일지를 확실히 인식한다면 타인에게 잔인하게 굴 수 없을 겁니다. 다시 말해 잔인성이라는 건 상상력의 실패로, 공감의 실패로 볼 수 있다는 거죠. 다시 소설이라는 형식의 문제로 돌아와보면, 저는 소설이 우리에게 타인의 마음을 느끼는 감각을 부여하는 데는 최고의 형식이라고 봅니다." (p.421)

 

작품에 대한 비평으로서가 아닌, 작품의 탄생 배경이나 작품을 통하여 전달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를 작가로부터 직접 듣거나 읽는 것은 기분 좋은 경험일 것입니다. 물론 이 책의 저자처럼 세계 문학계에 큰 족적을 남긴 위대한 소설가를 직접 만나 인터뷰할 수 있다면 얼마나 감격스러울까, 부럽고 샘이 나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600쪽에 가까운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한다는 건 쉽지 않을 듯합니다. 비교적 관심이 덜하거나 잘 알지 못하는 작가는 건성건성 넘어간다고 한들 뭐 어떻습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이 책을 통하여 맘에 드는 새로운 작가를 한 명 더 알게 되고 그의 작품을 읽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힘들게 읽은 보람이 있지 않을까요? 벌써 한 주를 마감하는 토요일에 와 있군요. 이 책에 등장하는 소설가 중 한국 소설가는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아 섭섭하기는 하지만 결국 한 나라의 독서 수준이 그 나라의 작가 수준을 대변한다는 걸 생각하면 우리나라 국민들 각자는 분발하여 더 많은 책을 읽어야 할 줄 압니다. 혹시 압니까? 누군가 핑곗김에 권하는 책을 읽고 크게 감동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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