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셋 파크
폴 오스터 지음, 송은주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3월
평점 :
품절


한 사람의 인생은 실상 그 자신이 스스로 '사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등 떠밀려 '살아지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운명이라는 굴레, 또는 그때그때 주어지는 우연에 의해 자신도 통제할 수 없는 길을 따라 그저 떠내려가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삶 전체에 나의 의도는 실오라기 하나 개입할 수 없는 것이구나 쓸쓸해지곤 한다.

 

폴 오스터의 <선셋 파크>는 그런 쓸쓸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책을 읽으면서 어느 순간 나는 잠깐 신경숙의 소설 <외딴방>을 떠올리기도 했지만 <외딴방>에서 받는 우리의 정서와는 사뭇 다르다. 그것은 아마도 폴 오스터가 남성 작가이기도 하고, 다분히 독립적이면서 개인주의적인 미국적 정서가 배어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 까닭에 암울한 현실을 겪는 네 명의 청춘들의 이야기는 처절하다거나 절망적인 느낌보다는 오히려 담담하게 읽힌다.

 

사실 청춘의 상처와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노년의 회상을 떠올리게 하는 '선셋 파크'라는 제목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작품 속에서 펼쳐지는 희망이 없는 현실과 마치 될 대로 되라는 식의 노년과 같은 삶으로 하루하루를 이어가는 청춘의 모습은 공동묘지가 넓게 펼쳐진 '선셋 파크'의 배경과 함께 지금 미국의 젊은이들이 겪는 고민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그리고 그 청춘들을 바라보는 부모 세대의 걱정이 작품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미래가 없을 때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는 것이 가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지금부터 어떤 것에도 희망을 갖지 말고 지금 이 순간, 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 지금 여기 있지만 곧 사라지는 순간,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지금만을 위해 살자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p.328)

 

소설은 마일스가 폐가 처리 작업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경제적 이유로 황급히 도망간 사람들이 버리고 간 집의 쓰레기를 치우는 일이다. 이복 형 보비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우연히 듣게 된 새엄마와 아빠의 대화 내용에 충격을 받은 마일스는 다니던 대학을 중퇴하고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미국 전역을 떠돌게 된다. 미래에 대한 어떤 희망도 없이, 언제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계획도 없이 지내던 중 그는 공원에서 한 소녀를 만나게 된다. 같은 책(위대한 개츠비)을 읽고 있던 한 소녀, 필라 산체스. 마일스는 똑똑하고 야무진 그 소녀에게 한눈에 반한다. 미성년자인 필라와 동거를 하며 늘 조심스러웠던 마일스. 그러나 필라 언니로부터의 협박에 굴복하여 결국 그는 그곳을 떠나게 되고 고향 뉴욕으로 돌아온다.

 

그렇게 뉴욕으로 돌아간 마일스 헬러가 지내게 되는 곳이 바로 선셋파크인데 그곳에서 그는 옛친구 빙과 엘런, 앨리스를 만나게 된다. 뉴욕의 변두리에 위치한 낡은 건물인 선셋 파크는 현재 시의 소유로 되어 있었다. 말하자면 그들은 시 소유의 건물인 선셋 파크를 불법 점유한 셈이었다. 다들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았던 그들에게 선셋 파크는 임대료나 관리비의 부담 없이, 집주인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는 천국과 같은 곳이었다.

 

그곳에 모인 네 명의 청춘들에게는 경제적 어려움뿐 아니라 그들 나름의 아픔과 상처가 있다. 형과의 말다툼 끝에 형을 도로로 밀쳐 달려오던 차에 치여 죽게 한 것에 대한 자책에 시달리는 마일스와 반사회적 투사를 꿈꾸며 선셋 파크 무리의 리더가 됐지만 의외의 감정으로 고민하는 빙, 고통스러운 과거를 극복하기 위해 그림에 몰두하는 엘런, 체중에 대한 콤플렉스와 남자 친구와의 삐걱거리는 관계 때문에 힘들어하는 앨리스.

 

마일스는 그들과 함께 선셋 파크에 모여 살면서 서서히 미래를 꿈꾸게 된다. 부모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연인 필라가 뉴욕에 있는 대학에 합격함으로써 곧 재회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과 대학에 복학함으로써 미래를 계획하고자 했다. 박사학위 논문을 거의 끝내고 새로운 삶을 계획하던 앨리스. 과외 교사로 일했던 시절 가르치던 학생과의 교제와 우연찮은 임신 때문에 달아났던 엘런은 그때의 학생이 어엿한 청년이 되어 그녀 앞에 나타남으로써 희망에 부풀게 되고, 마일스의 고교 동창인 빙은 마일스에게 자신의 사업체를 맡기고 밴드와 함께 순회 공연을 떠날 생각을 한다. 그렇게 해피 엔딩으로 끝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서로의 꿈을 찾아 각자의 길로 헤어지려던 그때 선셋 파크에 경찰이 들이닥친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그게 다예요. 더 나은 사람, 더 강한 사람이 되는 거요. 아주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 좀 공허하기도 하지요. 더 나은 사람이되었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4년동안 대학에 가서 전 과정을 이수했다고 증명해 주는 학위증을 받는 식이 아니잖아요. 얼마나 발전했는지 알 길이 없어요. 그래서 더 나아졌는지 아닌지도 모른 채, 더 강해졌는지 아닌지도 모르는 채로 그냥 계속 밀고 나갔어요. 한참 지나니까 목표에 대해서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노력 자체에만 집중하게 되었어요. 제 말 이해하시겠어요? 저는 투쟁에 중독되어 버렸어요. 저 자신을 놓쳐 버리고 만 거죠. 계속 죽 해나갔지만 왜 그렇게 하고 있는지도 더는 모르게 되었어요.˝ (p.281)

 

삶은 자신의 의도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우연과 같은 사건들에 의해 등 떠밀려 '살아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말이다. 그러한 삶을 유지하고 끝까지 살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작가 폴 오스터는 독자들에게 그것을 묻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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