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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 세상에 첫발을 내디딘 어른아이에게
김난도 지음 / 오우아 / 2012년 8월
평점 :
기이한 일이다. 가뭇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나란 존재가 여전히 살아 움직인다는 게. 이따금 그런 생각이 든다. 어떤 철학적 사유는 아니더라도 '나'라는 존재가 신기하게 여겨질 때가 있다. 그러다가 문득 이렇게 나이만 먹는 건가 하는 우울한 생각에 이를라치면 나도 모르게 어깨가 축 쳐지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 이렇게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기차를 타고 마음의 어둠 속으로 긴 여행을 하다 보면 삶을 덧없어 하는 나의 한숨 소리와 그 속절없음에 쏟는 나의 넋두리가 들리는 듯하다. '언제 이렇게 나이가 들었을까?' 문득 생각하면 아득해지곤 한다.
김난도 교수의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를 읽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살아온 세월을 한번쯤 되돌아보지 않았을까 싶다. 나도 그랬다. 생각해 보면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일지 모르는 절박한 순간에도 언제나 '나중에'라는 유보 버튼을 누른 채 세월의 흐름을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누군가의 아들에서 누군가의 남편으로, 누군가의 아버지로, 또는 장성한 조카가 결혼을 하여 젊은(?) 나이에 본의 아닌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예전에는 없던 수많은 관계가 새로이 형성되는 동안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하였을까? 그리고 나는 언제쯤 어른이 되었던 걸까? 과연 나는 내 나이에 맞는 '다움'을 형성하고 있는 것일까? 나이만 먹는다고 저절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닐 텐데 말이다.
"이 책은 이제 흔들리며, 어른의 문턱에 선 당신을 생각하며 썼습니다. 조금 먼저 어른이 된, 가끔은 아직도 어른 행세에 서투른 내가 당신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쓴 책입니다. 책이란 '말하는' 매체인데, 이 책을 통해 '듣겠다'고요? 그렇습니다. 저는 어른의 비밀을 일방적으로 가르치고 싶지 않습니다. 그저 따뜻하고 열린 경청자가 되고 싶습니다. 읽기만 하면 결론에 다다를 뿐이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면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책을 통해 그간 꾹꾹 눌러온 당신의 이야기를 시작하세요." (p.14 '프롤로그' 중에서)
작가의 지시에 따라 나는 어렵게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아직도 어른 행세에 서투른 '나'이지만 말이다. 후회와 반성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던 삶이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후회스러운 것을 꼽으라면 아마도 '생활과 인생은 다른 것임을 진즉에 구분하지 못했던 불찰'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런 삶을 살아갈지도 모르지만. 가장으로서 생활에 필요한 돈만 벌어오면 내게 지워진 모든 책임은 끝났다는 식의 자세. 단지 생활인으로서의 의무만 다하겠다는 편협함은 인생 자체를 어렵게 한다.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돌보는 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마음을 쓰고 그들을 진심으로 대하는 일에 소홀하다면 인생 자체는 꼬이게 마련이다. 나는 이제껏 그리 하지 못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게 시작이지 싶다. 아기가 대소변을 가릴 줄 알게 되는 시기처럼 말이다.
"우리에게 지워진 운명적 삶의 굴레는 어느 순간 극복하는 것이 아니다. 견뎌내는 것이다. 꼭 하루씩만 살아내자. 그러기 위해 반드시 외워야 할 주문이 있다. 독실한 신도가 몸을 접듯 간절하게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되내어야 하는 주문이. 아모르파티. 네 운명을 사랑하라." (p. 77)
작가는 위로받지 못하는 '어른아이'들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을 전하고 있다. 일과 사랑, 가족, 인간관계, 자아실현 사이에서 외줄을 타듯 위태위태 흔들려야만 비로소 어른이 된다고 말한다. 취직, 월급, 결혼, 섹스, 가족, 결혼, 소비 등의 문제를 끼고 힘겹게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위로와 공감의 메시지를 건네는가 하면 그래도 괜찮다 다독인다.
"언제나 어디서나 프로가 될 수는 없다. 내가 매일 하는 딱 한 가지 일에서 프로가 되기도 어려운 것이 삶이다. 어른이 된다는 건, 잘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자신에게 조금만 너그러워지자. 그래야 더 잘할 수 있다." (p.286)
비록 나는 나이만 어른인 채 살고 있지만 비단 그것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란 걸 잘 안다. 겉으로는 완벽한 듯 보이는 사람도 그 이면에는 누구나 허당인 구석이 한 군데는 있는 법이다. 그것 때문에 때로는 잠 못 드는 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운명이고 인생이라면 받아들여야지 어쩌겠는가. 그것은 다만 누구나의 인생일 뿐이고, 죽는 순간까지 철들지 않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