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2일 아침.  전날 모질게도 비가 내리던 하늘은 이상하리만치 쾌청했다.  벽제로 가는 운구버스에서 누나는 목놓아 울었다.  한이 깊어서였는지, 아버지의 인생이 불쌍해서였는지 나는 묻지 않았다.  나는 목울대 바깥으로 터져나오려던 울음을 끝내 토하지 않았다.  이른 새벽의 안개를 뚫고 속속 도착한 많은 운구버스와 리무진 차량이 접수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검은 상복을 입은 유족들은 쓴 커피 한모금을 마시며 담배를 피웠다.

 

사는 것은 기다림이고, 기다리는 빈 시간을 묵묵히 견뎌내는 일이다.  그러나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이 이제는 죽어서도 제 순번을 기다려야 한다.  6시 40분!  직원이 유리문을 열고 접수를 받는다.  배정받은 번호에 따라 영정을 앞세운 시신이 화로로 운반되는 동안 가족들의 흐느낌이 이어진다.  화장로로 향하는그 짧은 시간에 어찌나 많은 생각들이 스쳐가던지...

 

엘리베인터처럼 단단한 문이 닫히고 화장이 진행되는 동안 주황색 램프만이 서럽게 밝혀져 있었다.  하릴없는 유족들이 좁디 좁은 2층의 가족 대기실에 빼곡히 모여 앉아 화장의 진행상황을 알려주는 모니터만 주시했다.  꽉 막힌 대기실이 답답했던지 사람들은 이따금 조용히 일어나 방을 나갔고, 한동안 밖을 서성이다 들어오곤 했다.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아메리카노와 에스프레소를 파는 2층 카페는 옹색한 대기실과는 딴판이었다.  마치 죽음과 삶의 경계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모니터에 '냉각중'이라는 자막이 뜨면 화장이 끝났다는 뜻이었다.

 

화장을 마친 시신은 한 줌 뼛조각이 되어 나왔고 마스크를 쓴 직원이 쓰레받기에 쓸어 담았다.  알 수 없는 무력감에 디딘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  영정 사진을 앞세우고 흰 보자기에 싸인 분골함을 들고 벽제 화장장을 떠났다.  납골당에 유골함을 안치할 때까지 누구도 말이 없었다.  뉴욕에 사는 여동생은 늦게 도착한 것에 대한 죄스러움 때문인지 벽제 화장장에서부터 소리를 죽여 울었다.

 

아버지의 발길이 거쳐간 이 세상의 모든 곳에는 몇 웅큼의 증기로 변해버린 아버지의 정령들이 가족들 시선을 한참이나 앞장서서 날아와 안개처럼 퍼져 있을 듯싶었다.  나는 그 정령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이제는 더 멀고먼 하늘 저쪽으로 날아가 편히 사시라고 달래주고 싶었다.  자기 주장이 강하셨던 당신은 내 말을 순순히 따르실까?  몸뚱이가 불에 탄 다음에는 치매도 다 치유되었을 것이고 원래의 영혼으로 되돌아갔을 터였다.

 

아버지를 보내드린 지 오 일만에 다시 돌아온 직장은 낯설었다.  하루 종일 비가 내렸고, 알 수 없는 설움이 안개처럼 몰려왔다.  혈육의 정이라곤 눈곱만치도 느끼지 못했던 나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회한을 당신이 불 타던 화장로에 함께 태웠다.  인간의 그 보편적인 죽음 앞에서 나는 절반쯤 무너졌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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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4-08-25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 아버님께서 이 세상을 뒤로 하고 가셨군요.
대학생때이니 삼십년도 더 전에 벽제에 간 적이 있는데, 전 제 또래 되는 사람을 보내면서 어찌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절차 하나하나가 그렇게 허망할 수가 없더군요.
꼼쥐님, 절반쯤 무너진 다리를 다시 추스리고 일어나셔야지요.

꼼쥐 2014-08-26 13:54   좋아요 0 | URL
저는 벽제 화장장을 서너 번쯤 다녀온 듯싶어요.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사는 게 참 허망하다는 것이었어요. 일말의 감상이겠지요. 그러나 이번에는 그런 느낌에 더하여 많은 생각들이 오가더군요. 누구나 겪는 일이지만요. 이제는 다시 일어나야죠.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까. 위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