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4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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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비나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무 일도 없었다.  그녀는 한 남자로부터 떠나고 싶었기 때문에 떠났다.  그후 그 남자가 그녀를 따라왔던가?  그가 복수를 꾀했던가?  아니다.  그녀의 드라마는 무거움의 드라마가 아니라 가벼움의 드라마였다.  그녀를 짓눌렀던 것은 짐이 아니라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다."    (p.144)

 

우리가 밀란 쿤데라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는 어른으로서 마땅히 지녀야 할 근엄한 표정을 유지한 채, 어린 시절의 유희를 한동안 즐길 수 있도록 한다는 데 있다.  아무런 다른 도구도 없이, 또는 같이 놀아줄 친구도 한 명 없이 이런 일이 어찌 가능할까, 싶지만은 밀란 쿤데라는 독자의 이런 의심을 미리 알아채기라도 했었다는 듯 그의 책을 집어드는 순간 그런 의심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게 만든다.  예컨대 그의 책은 어린 아이들이 지칠 줄 모르고 빠져들던 장난감 블록이나 이제 막 이성에 눈 뜬 사춘기 소년의 눈에 비친 아릿한 소녀의 잔상과 같은 구실을 하는 것이다.

 

밀란 쿤데라의 작품이 갖는 이런 힘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가 기록한 문장들은 비존재에 대한 세심한 관찰(우리가 사유 혹은 사색이라 일컫는)을 통하여 얻어진 최종 결과물처럼 보여지는데, 이러한 비존재(예컨대 영혼, 사랑, 동정심, 우정, 우연 등)에 대한 작가의 탐구는 우리가 소설이 소설로서 유지되기 위해 필수불가결하다고 믿어왔던 몇몇 요소들(이를테면 주인공의 성격이나 외양, 주인공 상호간의 관계맺기에 있어서의 인과관계 등)을 그는 자신의 작품 속에서 교묘히 숨겨놓음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마치 그것들이 하찮은 것, 또는 부수적인 것으로 여기도록 한다.  이를 통하여 작가는 비존재에 대한 독자의 생각을 환기시키고, 독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작가의 의도에 동참하게 된다.

 

"토마스는 <한 번은 없었던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문장에서 태어났다.  테레사는 뱃속이 편치 않을 때 나는 꾸르륵 소리에서 태어났다."    (p.9)

 

"우연만이 우리에게 어떤 계시로 보여졌다.  필연에 의해 발생하는 것, 기다려왔던 것, 매일 반복되는 것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오로지 우연만이 웅변적이다.  집시들이 커피잔 바닥에서 커피 가루가 그린 형상을 통해 의미를 읽듯이, 우리는 우연의 의미를 해독하려고 애쓴다."    (p.59)

 

"인간의 삶은 마치 악보처럼 구성된다.  미적 감각에 의해 인도된 인간은 우연한 사건(베토벤의 음악, 역에서의 죽음)을 인생의 악보에 각인될 하나의 테마로 변형시킨다."    (p.63)

 

"극단적인 것은 그것을 넘어서면 생명이 끝나는 경게선의 표시이며, 정치와 마찬가지로 에술에 있어서 극단주의에 대한 열정은 죽음에 대한 위장된 욕망이다."    (p.111)

 

"애교란 무엇인가?  그것은 딱히 그 가능성의 실현을 보장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성적 접촉이 가능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행동이라 할 수 있다."    (p.165)

 

이러한 문장들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에 씌었더라면 그의 작품은 감히 소설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그야말로 생뚱맞은 그 무엇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은 어쩌면 하루키의 성향과 대척점의 위치에 놓여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철학적이기는 하지만 세상을 비꼬는 듯한 미셸 푸코나 미셸 트루니에의 작품과도 사뭇 다르다.  밀란 쿤데라는 비존재에 대하여 심각할 정도로 진지하다.

 

"이미 말했듯 소설의 인물들은 살아 있는 사람들처럼 어머니의 육체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하나의 상황, 문장, 그리고 작가가 생각하기에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거나, 본질적인 것은 언급되지 않았던, 근본적 인간 가능성의 씨앗을 품고 있는 메타포에서 태어난다. (---중략) 내 소설의 인물들은 실현되지 않은 내 자신의 가능성들이다.  그런 까닭에 나는 그들 모두를 사랑하며 동시에 그 모두가 한결같이 나를 두렵게 한다.  (---중략) 소설은 작가의 고백이 아니라 함정으로 변한 이 세계 속에서 인간적 삶을 찾아 탐사하는 것이다."    (p.254~p.255)

 

이런 까닭에 밀란 쿤데라의 소설은 소설 이외의 또 다른 기능, 이를테면 끝없는 상상과 추론을 요구하는 놀이로서의 기능, 장난감으로부터 한참이나 멀어진 어른들에게 사색의 도구로써 기능하는 셈이다.  하여, 밀란 쿤데라의 소설은 스토리의 전개에 집중할 필요 없이 하시라도 소설의 어떤 쪽을 펴고 사색의 유희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때로는 한 문장만으로도 하루 온종일 깊은 생각에 잠길 수 있게 한다. 

 

"여자는 분노에 찬 영혼을 부르는 목소리에 저항하지 않는다.  남자는 자기 목소리에 관심을 기울이는 영혼의 여자에게 저항하지 않는다."    (p.185)

 

"<자아>의 유일성은 다름아닌 인간 존재가 상상하지 못하는 부분에 숨겨져 있다.  인간은 모든 존재에 있어서 동일한 것, 자신에게 공통적인 것만 상상할 수 있을 따름이다.  개별적 <자아>란 보편적인 것으로부터 구별되는 것이고 따라서 미리 짐작도 계산도 할 수 없는 것이며 그래서 무엇보다도 먼저 베일을 벗기고 발견하고 타인으로부터 쟁취해야만 하는 것이다."    (p.228~p.229)

 

"뇌 속에는 시적 기억이라 일컬을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지대가 존재하여 우리를 매료시키고, 감동시키고, 우리의 삶에 아름다움을 주는 것을 기록하는 모양이다.  토마스가 테레사를 알고 난 뒤부터 어떤 여자도 그의 뇌 속에 있는 이 지대에 아주 사소한 흔적조차도 남길 권리가 없었다."    (p.239)     

 

우리가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어떤 현상이나 실체를 아주 세밀하게 묘사함으로써 전혀 딴 생각을 할 수 없도록 하는 소설이 있는가 하면, 문장이 추구하는 바가 우리의 외부 현실과는 동떨어진, 실재하지 않는 비존재를 끝없이 서술함으로써 독자의 상상력과 추론을 요구하는 소설이 있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은 어쩌면 독자의 상상력과 추론이 덧붙여짐으로써 한 권의 완전한 소설로 재탄생되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밀란 쿤데라는 소설이 갖추어야 할 기본 골격만 제시할 뿐 더 이상의 언급은 하지 않는다.  그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오로지 독자의 몫으로 남겨진 셈이다.

 

"안개 속을 헤치고 두 사람을 싣고 갔던 비행기 속에서처럼 그녀는 지금 이상한 행복, 이상한 슬픔을 느꼈다.  이 슬픔이란 우리는 마지막 역에 있다라는 것을 의미했다.  이 행복은 우리는 함께 있다라는 것을 의미했다.  슬픔은 형식이었고, 행복이 내용이었다.  행복은 슬픔의 공간을 채웠다."    (p.358)

 

설을 하루 앞둔 오늘 침묵처럼 겨울비가 내렸다.  나는 정말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시도 때도 없이 읽었고, 하도 여러 번 펼쳐 봐서 책의 모서리가 다 닳아버렸지만 리뷰를 쓰는 일만큼은 여전히 미루고 싶다.  내가 처음으로 이 책을 읽었을 때의 순수가 세월의 갈피에 닳고 또 닳아 퇴색되다가 끝내 이 리뷰와 함께 사라질 것만 같아서 두렵다.  침묵처럼, 슬픔처럼 겨울비가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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