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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의 배신 - 습관처럼 야근하는 당신이 꼭 알아야 할 것
니시다 마사키 지음, 김세원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3년 9월
평점 :
절판
명절이면 나 자신도 기억하지 못하는 유년시절의 추억을 끄집어내는 바람에 당혹해 했던 적이 몇 번 있다. 그럴 때마다 '어쩌면 저렇게 세세한 것들까지 기억하고 있을까? 혹시 다른 사람과 착각한 것은 아닐까?'하는 의문이 문득문득 들곤 했다. 그렇게 내 입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터져나오는 이야기들을 마땅히 제지할 방법은 없어 보였다. 기분좋게 만난 자리이니 화를 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설 수도 없지 않은가.
그 중에서도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이야기가 있다. 형과 함께 자취생활을 했던 내 중,고등학교 시절의 얘기인데 얼마나 자주 들었으면 나의 성장과정을 알 길 없는 조카들도 모두 기억할 정도가 되었다. 그럼에도 그 시절의 내 얘기는 횟수를 더할수록 사그라들기는커녕 때로는 더 부풀려지고 지금도 새로운 얘기가 샘솟듯 만들어지고 있는 듯하다.
학창시절의 나는 지독한 완벽주의자요, 중증의 활자 중독증 환자였다. 그렇게 된 데에는 기질적 성향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나를 둘러싼 환경이 주원인인 듯하다. 부끄럽게도 나의 아버지는 하루도 술을 거르는 날이 없었고, 그렇게 술에 취해 귀가하면 많지도 않은 가제도구를 부수기도 하고 가족들에게도 폭언과 손찌검을 서슴지 않았다. 나는 이런 아버지를 피해, 친구네 집을 일없이 전전하며 밤늦도록 그들의 집에서 책을 읽곤 했다.
인사불성이 된 아버지에게 맞지 않으려면 아버지의 눈에 띄지 않는 게 상책이었고, 악에 받쳐 바락바락 대드는 엄마의 애처로운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고역이었다. 그 덕분에 친구들의 집에 있는 책이란 책은 모조리 다 읽게 되었다. 시골에서 자란 터라 친구들이 갖고 있는 책도 그 나이에 읽을 만한 책은 많지 않았고, 그런 연유로 나는 어른들이 읽는 어려운 책도 가리지 않고 읽어야 했다.
내가 자취를 하며 공부를 하던 형을 좇아 도시로 전학을 하게 된 것은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무자비한 폭력에서 벗어난 것이 무엇보다 기뻤고, 다른 어려움쯤이야 기꺼운 마음으로 참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렇게 도시로 나와 처음 계획했던 일은 잠을 세 시간으로 줄이는 것이었다. 그동안 읽었던 책에서 얻은 지식을 기반으로 수면시간을 11시에서 새벽 2시까지로 한정하였다. 돌이켜보면 치기에 가까운 행동이었지만, 나는 그렇게 정해놓은 규칙을 지키기 위해 지독하게 버텼다.
새벽에 일어나 책상 앞에 앉으면 웃풍이 심한 자취방은 냉기가 감돌았다. 어깨에 담요를 두르지 않으면 책을 읽기 어려웠고, 졸음을 쫓기 위하여 마당 한켠에 있던 수도를 틀어 차가운 수돗물에 한참씩이나 머리를 담그곤 했다. 지금도 큰형은 그랬던 나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때는 동생인 내가 무서웠었다고 말하곤 한다. 새벽의 고요 속에서 한동안 책을 읽다가 정각 다섯 시만 되면 전기밥솥에 쌀을 앉히고 집을 나섰다. 한 시간 동안 운동을 하고 돌아오면 할 일이 많았다. 간단한 반찬을 준비하여 도시락을 싸고, 형을 깨워 아침을 먹었다. 가방을 챙기고 자전거로 등교를 하면 길었던 아침시간이 마무리되곤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런 생활은 계속되었다. 늘 상위권을 유지했던 성적과 부러움으로 가득 찬 친구들의 시선이 보답이라면 보답이었다. '노력과 그에 대한 보상'이라는 긍정적인 피드백은 '어떤 불가능한 일도 내가 하면 가능한 일로 바꿀 수 있다.'는 오만함으로 이어졌고, 신이 있다면 신은 항상 내 편이라는 생각도 들었었다.
4년 장학생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잠깐의 회사 생활을 거친 후 창업을 했다. 단 한 번의 실패도 경험하지 않았던 나에게 사업의 실패는 뼈저린 것이었다. 실패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없었다. '조금 더 노력하면 되지 않을까?'하는 미련이 발목을 잡았다. 몸도 마음도 피폐해져만 가던 그때 나는 아내에게 심한 독설을 퍼붓기 일쑤였고, 산후 우울증을 앓고 있던 아내는 나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 책 <노력의 배신>은 '해로운 완벽주의자'의 전형이었던 나를 되돌아 보게 한 책이었다. 어떤 책이든 자신의 얘기를 가감없이 기록한 것이라면 읽는 내내 마음이 거북해지기 마련이다. 내가 그랬다.
"완벽주의자는 자신의 실력보다 높은 목표를 설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목표를 달성하기까지 엄청난 인내가 필요하다. 그러나 지나친 인내는 화를 불러올 우려가 있다. 게다가 타인에게도 자신과 똑같은 인내와 참을성을 요구하게 되면 인간관계에 금이 갈 수도 있다." (p.238)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느라 잠시의 여유도 찾을 수 없었던 나로서는 대학교 앞의 커피숍에서 노닥거리는 학생들이나 당구장에서 시간을 죽이는 학생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마음속으로는 항상 '밥벌레'라고 그들을 비웃었다. 나의 아집과 독선은 결국 사업의 실패와 함께 누그러졌다.
삶은 누구에게나 변화의 가능성을 제공한다. 그 변화가 좋은 방향이든 그렇지 않든 우리는 멈출 수 없는 변화의 시간을 지나고 있다. 현장에서 수많은 환자들을 상담해왔다는 저자는 그간의 임상 경험과 최신 학술지식을 통해 ‘노력을 멈추는 기술’을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그리고 '해로운 완벽주의자'가 '건전한 완벽주의자'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베스트 셀러 작가이자 영적 스승인 안젤름 그륀 신부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신뢰하고 숨은 가능성을 발견하고, 당신의 삶에 다른 사람들을 초대하라. 그러면 당신의 샘물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을 줄 것이다."라고. 내가 사업에 실패하기 전까지 나에게 했던 일련의 행동들은 어쩌면 나 자신에 대한 폭력이었을지도 모른다. 예전의 나와 같은 성향의 사람이 있다면 그들이 반드시 깨달아야 하는 것은 '나를 가혹하게 대하는 사람은 언제든 다른 사람에게도 가혹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 사실을 늦은 나이에 실패와 시련을 통해 배웠다. 항상 되물어야 하는 것은 "누구를 위한 인내인가? 수단과 목적이 전도된 것은 아닌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