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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여자친구의 장례식
이응준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저항하거나 방어할 잠시의 겨를도 없이 사방에서 휘감기는 것들은 모두 싫어한다. 그렇게 싫을 수가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은 '싫음'보다는 '두려움'에 가까울 것이다. 내 몸을 향해 전방위적으로 몰아치는 것들. 그것이 설령 열락이나 더할 수 없는 행복일지라도 말이다. 이응준의 소설 속에는 그런 두려움이 내재되어 있다. 우리가 한동안 외면했거나 일부러 애써 피하려 했던 그런 것들. 형체도 없이 내 오감의 비상구로 슬며시 들어와서는 일순 전신에 소름이 확 돋게 하는 그런 것들 말이다.
우리가 바람의 방향을 알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는 것은 이론적인 귀결일 뿐이지 결코 실제적인 체감은 아니다. 머리카락이 날리는 방향을 보거나 나뭇잎이 쏠리는 방향을 보고 바람은 그 반대편에서 불어오겠거니 편하게 유추하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그 바람 속에 있었을 뿐, 단 한 번도 내 몸의 일부만(또는 한쪽편만) 휩쓸고 지나가는 바람은 본 적이 없다. 이응준의 소설은 8월말의 습한 바람처럼 그렇게 읽힌다. 지면에서 튀어나온 낱글자는 어색하게 주변을 맴돌다가 어느 순간 물에 젖은 거즈처럼 모공 속으로 형체도 없이 스민다. 마치 높은 산을 오를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우룩한 는개에 젖듯이.
이 소설집에는 표제작 「내 여자친구의 장례식」을 비롯,일곱 편의 중,단편이 실려 있다. 각각의 소설은 주제와 소재는 저마다 다르지만 그 색깔은 서로 같다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의 본원적인 고독과 죽음. 작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두 개의 키워드는 밀란 쿤데라식 철학적 사색과 신경숙의 슬픔이 교묘히 뒤섞이며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마치 우물 내벽에 매달린 두레박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우물을 지향하면서도 팽팽한 동아줄에 의해 허공에서 위태롭게 대롱거리는 두레박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딱히 바쁜 일도 없으면서 습관적으로 울려대는 경적음처럼 삶은 시간이 멎기 전까지 헛된 몸짓일망정 쉼 없이 바동거려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 덧없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향해 비틀거리며 걷는 인간 군상들은 애처롭기 그지없다. 그들에게 '멈춤'은 '죽음'과 동일어가 된 지 오래이니까.
작가 이응준의 소설이 신경숙의 멜로나 축축함으로 빠지지 않는 까닭은 대화와 대화 사이, 장면과 장면 사이에 교묘히 파고드는 철학적 사색 덕분이 아닐까 한다. 예컨대 위태롭게 매달린 두레박은 우물 바닥으로 힘없이 떨어지지 않는다. 작가의 냉철함은 딱 그쯤에서 멈춘다.
"나는 가만히 턱을 괴고 창 밖으로 시선을 옮긴다. 비 오는 지구는 그렇지 않은 날과는 너무도 다르다. 그렇게 지겹던 방구석도 장마철만 되면, 꼭 내가 있어야만 할 자리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눈을 감는다. 함박눈은 눈(目)으로 봐야 하지만, 비는 먼저 소리로 다가온다. 아침에 커튼을 걷어봐야만 비로소 폭설이 내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과는 달리, 우리는 빗소리에 잠이 깨어 새벽녘을 알 수 없는 감회로 서성인다. 만일 누군가 내게 어쩔 수 없이 눈 오는 세상과 비 오는 세상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한다면, 난 잠결에도 계속 지붕이 젖고 강이 불어남을 짐작할 수 있는, 그런 비만 내리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P.142)
그럴 것이다. 작가는 자신이 멈추어도, 삶의 자각을 바동거리는 몸짓으로 표현하지 않아도, 자신을 둘러싼 외부의 서사와 추이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인지되는 그 무엇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작가에게 각각의 소설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깨달음의 저편에 존재하지 않는, 오히려 자학과 같은 몸부림을 쳐서라도 자신이 '살아있음'을 확인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그런 사람들이다. 그래서 슬프다.
최면시술사의 얘기를 다룬「Lemon Tree」에 이어 등장하는「이교도의 풍경」은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동성애자로서 살다가 끝내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지 못한 채 삶을 마감하는 문화비평가 구문모의 삶을 다루고 있다. 어쩌면 뻔한 멜로 드라마가 될 법한 이 소재가 이응준의 작품에서는 새롭게 해석되고 있다고 느꼈다. 작가는 구문모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죽음의 귀결을 '낙타를 사랑한 고래의 무모함'에 비유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 어쩔 수 없는 유전자를 담담히 지켜보고 있다.
"서른다섯 해를 자라고 늙어가는 도시에 도착하기 전, 거대하고 위태위태한 밤이 다시금 도래하겠지. 앞으로는 누구를 만나든, 그가 인간이라는 사실 외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으리라. 내가 아까 그녀에게 했던 대답은 틀린 것이었다. 세상의 모든 사랑엔, 틀림없는 당사자들이 있다. 설혹, 그것이 고래와 낙타의 사랑일지라도 그러하다. 하얗게 빠른 속도로 풍경들이 지나간다. 그리고 나는, 사랑마저도 사각형의 쇠자물통을 하고 있는 거기로 되돌아가고 있다." (P.61)
작가는 이 소설집에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지금부터 딱 십 년쯤 지나면 고승의 염주알처럼 매끈하고 단아해진 자신의 인생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기대? 혹은 지금과 별반 다를 것도 없이 고요하게 흐르는 허송세월? 밤마다 잘근잘근 씹다 버려진 쓸쓸함이 거리를 가득 메우는 비참한 아침풍경?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이 실체를 보이지 않는 삶의 진실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오늘도 그렇게 살고, 내일도 또 그렇게 집을 나설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