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마흔이라면 군주론 - 시대를 뛰어넘는 '세상과 인간'에 대한 통찰 Wisdom Classic 7
김경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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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돌이켜 보면 30대 이전에는 꿈과 이상, 욕심과 가능성이 지배하던 시기였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다들 그렇지 않았을까?  그때의 나는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고 외쳤던 나폴레옹 황제의 패기로 넘쳐났었다.  그런 인식으로 세상을 보았으니 냉철한 현실인식으로 무장한 40대 이후의 중장년은 패기도 없고 용기도 없는 '퇴물'처럼 느껴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못 가진 자의 허세는 지나친 용기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속담처럼.

 

<지금 마흔이라면 군주론>을 읽었다.

학창시절에 뜻도 모른 채 읽었던 <군주론>.  마키아벨리는 내게 속물의 전형으로 각인되었다.  작은 것 보다는 큰 것이 먼저 눈에 띄었고, 세밀한 계획 보다는 커다란 꿈이 먼저였던 돈키호테의 시기에 마키아벨리의 냉철한 사고가 눈에 들어올 리 만무했다.  세상살이가 다 그런 것인지 모르지만 젊은이의 이상과 현실의 격차가 크면 클수록 그 결과는 참담한 법이다.  내게는 절대 일어날 수도 없고, 일어나서도 안 되는 참담한 결과를 몇 번 겪으면 그제사 어른이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국가 피렌체 공화국의 외교관이자 정치이론가이며 저술가였던 니콜로 마키아벨리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그럼에도 500여 년이라는 시차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꾸준히 읽혀지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마키아벨리에 대한 나의 생각은 어떤 정치가나 평론가 혹은 리더십 이론가의 견해와는 사뭇 다르다.   <군주론>은 나약한 소국의 힘없는 외교관으로서, 또는 선량하고 고결한 시민이자 좋은 아버지로서 그가 살았던 삶에 대한 자기성찰이자, 자신의 영혼보다 사랑했던 모국 피렌체의 부국강병에 대한 염원을 담은 기도서였기 때문일 것이다.

 

인생을 오래 산 것은 아니지만 젊은 시절의 나는 나와 타인의 구별에만 집착했었다.  나는 누구보다도 선량한 양심의 소유자이고, 법과 규칙을 준수하는 신의와 성실의 표본이며 조국을 사랑하는 애국자라고 생각했다.  젊은 시절에 누구나가 선망하는 이상적인 인간형.  그것이 '나'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살고자 노력했는지도 모른다.  이런 환상에 사로잡힌 삶에서 타인은 오직 나와 구별되는(탐욕과 이기심 그리고 비열함과 권모술수로 무장한) 악의 화신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었다.  내 양심의 이면에 존재하는(일상을 지배하는) 보편적 인간의 공통분모를 생각하지 못할 때, 공동체에 속한 개개인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 때, 공동체의 통합이나 조직의 목표를 향한 자기 희생은 기대하기 어렵다.  오직 갈등과 분열 속에서 각자의 주장만 난무할 뿐이다.

 

아마 젊은 시절의 마키아벨리도 그러했으리라.  기본적으로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공통분모(일상적인 탐욕과 이기심, 권력에 대한 집착과 공포)를 스스로 밝히고 반성하는 것은 나이가 든 이후에나 가능한 일이다.  타인에 대한 사랑이나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대한 헌신은 나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부끄러운 면모를 고백하고 인정하는 것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남과 다르지 않다는 인식,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비열한 속성을 이해하고 인정하지 않으면 이스라엘 민족에서 보듯 '선민의식'에 가득찬 호전적 인간군상으로 남게 마련이다.

 

국가든 기업이든 조직원의 통합이 전제되지 않는 한, 조직의 목표를 위해 조직원이 헌신하지 않는 한 그 공동체의 미래는 없다.  마키아벨리가 쓴 <군주론>은 다양한 인간 군상의 공통된 인성을 솔직하고 세밀하게 노정함으로써 리더의 통치를 돕고자 했을 뿐이다.  인간의 속성이 악의 형태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선의 모습은 너무나 다양하여 그 공통점을 추출하기 어려운데 반해 조직에 긍정적인 힘으로 작용하지만 악의 모습은 그 양태가 비슷하여 분류하기 쉽고 이것이 성하였을 때 공동체의 생존을 위협하게 되므로 리더는 오직 인간의 악한 면을 어떻게 다스릴까?하는 문제에만 집중하면 되는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인간에게는 오직 '악'의 근원만 존재한다가 아니라 공동체의 단합과 발전을 위해 '악'의 속성을 다루는 리더의 역할을 강조한 것이다.  더불어 리더 자신 또한 한 명의 인간 개체로서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와 다를 바 없는 같은 속성을 갖고 있음을 인정할 때에야 비로소 자신이 이끄는 공동체의 구성원을 내 몸처럼 사랑할 수 있는 법이다.

 

"현명한 군주란 단순히 눈앞에 보이는 일만이 아니고 먼 장래에 있을 분쟁까지도 배려해야 하며, 모든 노력을 기울여 이에 대처해야 한다.  위험이란 미리 알면 쉽게 대책을 세울 수 있지만 코앞에 닥쳐올 때까지 그냥 보고만 있으면 그 병은 악화되어 불치병이 된다. "   (P.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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