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대학 시절 나와 친하게 지내던 선배 한 분이 전화를 했다.
무심한 성격인 나는 알고 지내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도 언제나 마음 뿐이지 금세 잊어버리곤 한다.  그러다 보면 가까운 사람들과도 한달에 한번 이상 통화하기가 어렵다.  그래서일까 나이나 성별을 무시하고 내 전화를 기다리기 보다는 상대방이 먼저 전화를 하는 경우가 더 많다.  잘못된 습관인 줄 뻔히 알면서도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선배는 참 재주가 많은 사람이었다.
당시 여의도의 작은 사무실에서 무역업을 하던 선배는 바쁜 와중에도 짬을 내어 자신의 취미 생활에 열심이었다.  그런 날이면 언제나 내게 전화를 했다.  시골에서 문화생활이라곤 누려 본 적이 없는 나를 가엾게 여긴 탓인지, 아니면 연애에는 통 관심이 없었던 사람인지라 마땅히 같이 갈 사람을 찾기 어려웠던 까닭인지, 그도 저도 아니면 공짜 티켓을 그냥 버리기가 아까워서 그랬는지 알 수 없지만 반 강제적으로 나를 공연장으로 끌고 다녔다.

언젠가 서초동 예술의 전당에서 아시안 유스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이 있었다.
그날도 선배는 내게 전화를 걸어 강의 이후 시간을 비워두라는 명령(?)을 하고는 다짜고짜 내가 다니는 대학으로 데리러 오겠다며 기다리라고 했다.  작은 일에도 잘 삐치는 성격의 선배인지라 나는 감히 선배의 청을 거절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게다가 선배의 사무실에서 우리 학교까지는 자가용으로도 족히 한 시간 이상이 걸리는 먼 거리였고, 학교에서 예술의 전당까지는 더 멀었다.  정체가 심한 퇴근 시간에 그런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데리러 오겠다는 선배의 성의(?)가 가상하기도 했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공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었다.
당시 클래식에 문외한이었던 나는 격식을 갖춘 그런 자리가 영 마뜩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갖춰 입을 옷도 없었고, 길고 지루한 공연 시간 내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도 걱정이었으니 결코 편안한 자리는 아니었다.  그런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선배는 마냥 들뜬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평소 구스타프 말러의 열렬한 팬이었던 선배는 말러의 곡이 연주되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리지 않고 찾아가곤 했었다.

그날의 공연은 미국의 유명한 작곡가겸 지휘자인 루카스 포스가 지휘봉을 잡고 소프라노 엘리 아멜링이 협연했으며 연주 프로그램은 다케미스의 `오각정원으로 흘러내리는 한줌의 선율', 말러의 `교향곡 제 4번'이었다.  선배는 잔잔한 클래식 선율에 한껏 도취되어 내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렇게 한여름 밤의 낭만에 흠뻑 취한 선배와는 달리 나는 공연이 빨리 끝나기만을 눈이 빠지게 기다렸다.

선배는 악기를 잘 다루지는 못했지만 음악 공연을 갈 때는 그날 연주될 곡목의 악보를 구해 거의 외다시피 한 후에 공연장을 찾는 사람이었다.  청중의 입장에서 선배는 애호가의 수준을 넘어 준 프로급의 음악인이었다.  그러니 그 당시 선배의 눈에 나는 얼마나 한심해 보였겠는가.  예술의 전당 건너편의 감자탕집에서 늦은 저녁을 먹으면서도 선배의 공연 이야기는 그치지 않았다.  학창시절 공부와는 담을 쌓고 살았다는 선배의 고백이 믿기 어려웠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는 열정을 잃지 않았던 선배를 통하여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나는 요즘도 가끔 시집(詩集)을 펼칠 때면 선배 생각을 하며 마음에 드는 시 몇 편쯤은 외우려고 노력한다.  우리는 가끔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목숨을 걸어야 할 때가 있다.  그것이 대중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마다하지 않는 예술가의 노력에 대한 작은 보답이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그들의 노력을 너무 쉽게 잊고, 너무 쉽게 흘려버리며 사는지도 모른다.

열정적인 음악 애호가로, 사업가로, 아마추어 골퍼로 살면서도 여전히 연애에는 무관심한 선배는 이 여름의 더위에도 시원한 미소를 짓게 하는 사람이다.
"형, 그거 아시우?  올해 형 나이가 도대체 몇이우?  제발 장가 좀 드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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