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애애애앵~"
"국민여러분, 국민여러분!
여기는 중앙민방위경보통제소입니다. 지금부터 훈련공습경보를 발령합니다.
현재 시각 우리나라 전역에 훈련공습경보를 발령합니다.
주민과 차량의 이동이 통제되오니 당황하지 마시고
민방위 대원의 안내에 따라 신속하게 대피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학창시절 매월 15일이면 들을 수 있었던 멘트이다.
사이렌과 함께 이 멘트가 울리면 지나던 차들은 그 자리에 멈추어 서야만 했고, 행인들은 골목이나 건물안에 들어가 '대피'해야만 했다. 학생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점심을 먹고 오후 수업이 진행되는 중간에 사이렌 소리가 울리면 복도로 뛰쳐나온 아이들은 지정된 장소로 뛰어가곤 했다.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열을 지어 쪼그리고 앉은 채 자신의 머리를 앞에 있는 친구의 등에 기대는 것으로 훈련 준비를 마치면 해제 경보가 울릴 때까지 옆에 앉은 친구와 달콤한 수다를 늘어놓는 것이 훈련의 전부였다. 나른한 오후의 지루한 수업보다는 선생님의 눈을 피해 소곤소곤 속삭이던 그 시간이 학생들에게는 더 좋았는지 모른다.
마을의 장난꾸러기 꼬마놈들은 가끔 도로변에서 까불대다가 민방위 아저씨에게 혼쭐이 나기도 했다.
귀한 시간 뺏긴다며 투덜대던 어른들도 자신들의 불만을 터놓고 토로하지는 못하던 시대였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이 요란한 사이렌 소리의 의미를 정확히 믿지는 않았다.
그래서 실제로 북에서 누군가 미그 19 전투기를 몰고 귀순했을 때 당시 방송은 "이것은 실제 상황입니다. 공습경계경보를 발령합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이것은 실제상황입니다!"라고 목이 터져라 외쳤건만 아무도 믿지 않았던 우스운 일도 있었다.
그날은 일요일 오전이었고, 한미 합동 군사훈련이 진행되던 기간이었음에도 사람들은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인 양 태연히 자신들의 생업에 열중했던 것이다. 오후가 되어서야 사건이 한바탕 호들갑에 불과했던 것으로 판명되었지만 설령 그것이 실제 상황이었다 하더라도 별반 달라지지는 않았으리라.
오늘은 제 377차 민방위의 날.
오래 전에 들었던 사이렌 경보음을 들으며 지금은 잊혀져 가는 그 시절의 혼란과 먹거리가 궁했던 국민들을 그날 만큼은 엄하게 통제하던 노란 완장이 생각나는 하루였다.
지금은 아이들도 그 사이렌 소리에 아랑곳 하지 않고 수업을 계속 한다는데 그때의 이야기는 <대한 늬우스>에나 등장하는 코믹 영화가 되어버렸다.
내가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듯 시계바늘은 거꾸로 돌릴 수 있어도 시간이 만든 사람들의 의식은 지울 수 없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