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좋았던 하루였다. 금방이라도 단풍이 들 것만 같은 투명한 바람이 햇살과 어울려 어울렁더울렁 춤을 추는, 혹은 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은 햇살이 시간 가득 풀린... 지칠 줄 모르는 아이들이 학교 운동장에서 공을 차고 있었다. 미끄러질 듯 맑은 하늘에 이따금 구름이 떠가고 어디선가 들리는 아이의 웃음소리가 구름을 쫓아 사라졌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휴일을 반납한 채 대통령 탄핵 집회에 나갔던 하루이기도 했다. 화려한 가을볕이 이울고 마침내 저녁 어스름이 안개처럼 깔리는 시간. 사람들이 세상을 뜨는 까닭은 남겨진 사람들의 가슴에 침묵을 남겨주기 위해서임을 나는 최근에 말 대신 차라리 한줄기 눈물을 택한 10.29 참사 유족들을 통해서 배웠다. 가까웠던 사람들은 그렇게 쉼 없이 내 곁을 떠나가는데 가슴 한켠 침묵의 공간은 왜 이다지도 넓어지지 않고 속절없이 지워지는가. 침묵은 인간 슬픔의 정점. 언어를 잃고, 울음을 잃은 사람들이 마침내 다다르는 슬픔의 설원. 그리하여 침묵은 어떤 울음보다 더 힘이 세다.
어둠을 향해 건네는 침묵의 시선은 무심하다. 무심하다 못해 때론 허허롭다. 현명함이란 그렇게 모든 것을 내려놓았을 때의 길지 않은 순간에 찾아온다. 삶의 영역에서 한 계단 더 내디뎠을 때나 발견할 수 있는, 찰나의 기쁨이 아닌가. 사이토 다카시의 저서 <내가 공부하는 이유>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현대인은 유난히 고독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휴대 전화나 인터넷을 통해 다른 사람과 쉴 새 없이 대화를 주고받으며 고독을 느끼지 않으려 몸부림친다. 반면 공부는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마치는 순간까지 혼자서 몰입하는 고독한 작업이다. 사람 때문에 느끼는 것이 아닌, '충실한 고독'이라고 할까. 함께 공부를 할 동료를 만날 수도 있지만 결국은 혼자의 힘으로 가는 것이 공부다. 공부에 몰입하는 동안은 외로움을 느낄 새도 없이 배움이 주는 즐거움에 빠지게 된다. 공부하는 삶을 살게 되면 나만의 공부에 빠져들 수 있는 조용한 시간이 반갑게 느껴진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대통령을 불신임하고 있다.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만 모르고 있는 듯하다. 이 가을, 하야하기에 얼마나 좋은 시기인가. 본인을 위해서, 그리고 국민 모두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