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고백 - 김영민 단문집
김영민 지음 / 김영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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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그러진 일상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은 삶이 지속되는 한 계속된다. 예컨대 전에 비해 게을러졌다거나 씀씀이가 과해졌다거나 도전 정신이 약해지거나 무기력해졌다는 등 일종의 자기 검열을 거친 후 이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은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는 얘기다. 물론 하다 하다 지쳐서 이제는 숫제 손을 놓은 채 '될 대로 되라지'라는 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도 없지는 않을 테지만 그들이라고 자신의 삶을 마냥 방치하고 돌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아마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듯싶다. 적어도 정신이 올바른 사람이라면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매년 새해 계획을 세우기도 하고, 다이어리에 기록된 자신의 계획을 수시로 점검하기도 하는 게 아닌가. 그렇지만 기회가 될 때마다 군기반장처럼 자신의 일상을 점검하고, 반성하며, 심기일전하여 으쌰으쌰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자신의 젊음이 저만치 멀어져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게 보편적인 우리의 삶이라는 걸 깨닫는다면 왠지 어깨가 처지고 기가 죽는 일이 발생할지도 모르겠다.


"시시포스는 사실 퇴행을 즐긴 것은 아닐까. 퇴행하고 싶어서 열심히 돌을 굴려 올린 것이 아닐까. 능동적 도태, 자발적 퇴행이야말로 기쁨을 준다. 퇴행하기 위해 오늘도 전진한다. 퇴행만 꿈꿀 뿐 전진하지 않는다? 그때는 늙은 것이다."  (p.77)


김영민 교수의 단문집 <가벼운 고백>은 제목처럼 혹은 제목만큼 가벼운 책이다. 저자의 이전 저서, 이를테면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나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처럼 독자들이 느끼기에 다소 현학적이거나 깊이가 있는 책이라고 느껴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어느 가을날 머리에 문득 떠오른 단편적인 생각, 텔레비전에 출연한 어느 정치인의 연설을 들으면서 품었던 생각이나 느낌, 교수로서 학생들과의 어울림이나 그들로부터 받았던 질문에 대한 짧은 답변 등 일상에서 건져 올린 생각들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나 역시 큰 기대를 안고 책을 펼쳤던 바, 기대에 못 미치는(또는 기대와 다른) 책의 내용과 구성에 조금 당황했던 게 사실이다.


"남의 글을 비판할 때 자신의 편견과 무식을 광고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남들을 근거 없이 욕하는 경우를 보면 대개 근거 없는 자기 자랑인 경우가 많다. 합창하듯 자신의 무식을 뽐낸다. 내가 이래 봬도 얼마나 무식한데!"  (p.166)


전업 작가가 아닐지라도 자신의 책을 출간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대개 다음에 출간할 책에 대한 욕심이 있게 마련이고 그것에 대한 고민은 자신이 낸 첫 번째 책의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시작된다. 게다가 우연히 낸 책이 생각지도 않았던 성과를 거둔 경우라면 자신뿐만 아니라 출판사의 과한 칭찬과 부추김에 의해 두 번째 책에 대한 욕심이 더욱 커진다는 점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함량미달의 책이 세상에는 차고 넘친다는 걸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김영민 교수의 <가벼운 고백>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다. 이런 종류의 책도 가끔은 읽을 필요가 있고 책에서 건진 한두 문장의 글귀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피가 되고 살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평론은 비평하는 작품을 매개로 해서 성립하는 글이지만, 그 자체로 독립적 작품이기도 하다. 지시하고 비평하는 작품이 무엇이든, 평론은 그 자체로 읽을 만해야 한다. 그 자체에 내장된 동력과 리듬과 통찰과 지성과 정념과 아름다움과 감수성과 '미친 맛'으로, 읽을 만해야 한다. 그리하여 글쓴이 마음의 서랍에서 벗어나 결국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두루 읽히는 하나의 작품이 되어야 한다."  (p.215)


며칠 전 옥천에 있는 정지용 시인의 생가를 다녀왔다. 인적이 드문 마을 풍경은 쓸쓸했고, 한여름의 열기만 가득했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로 시작되는 '향수'의 감성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삶의 허무를 딛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밝게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셀 수 없이 많은 허무를 밟아본 이의 탈속한 경지에서나 가능한 일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었다. 글을 쓴다는 것이 혹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글이 항상 깊은 사유의 산물이 아니라 시간이 뱉어 놓는 일종의 토악질, 삶의 배설물일 때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걷는 길이 항상 카펫이 깔린 비단길이 아닌 것처럼 지난 시절에 읽었던 글이 모두 금과옥조가 아니었음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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