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에 닿았던 바람은 엉기지 않고 이내 흩어집니다. 푸슬푸슬 흩어지는 바람이 길었던 여름을 단죄하려는 듯 웃자란 풀들을 훑고 사라집니다. 한소끔 불어 드는 바람에도 속절없이 흔들리는 옥수수 대는 알 수 없는 언어로 수군대며 길었던 지난여름을 회상합니다. 삶이란 결국 여름의 땀방울처럼 엉기고 뒤섞이다가 어느 날 문득 가을바람처럼 푸슬푸슬 흩어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서먹하고 슴슴한 바람이 불어오면서 서가에 꽂힌 시집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성복의 시집 <그 여름의 끝>이라거나 한정원의 시집 <내가 네 번째로 사랑하는 계절>, 나태주의 시집 <꽃을 보듯 너를 본다> 등 며칠 전까지만 해도 눈길조차 가지 않던 책들이었습니다. 이성복 시인이 쓴 시 한 수를 옮겨봅니다.
숲속에서
숲 전체가 쓰르라미 울음밭이었습니다
날개 빼면 손톱보다 작은 덩치가 숲을 가득 메웠습니다
쓰르라미 우는 쪽으로 다가가자 울음이 뚝 그쳤습니다
몇 발짝 물러서면 나뭇잎 사이, 번쩍이는 햇빛 사이
빛나는 노래는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애써 마음먹으면 잡을 수도 있었겠지요
쓰르라미 잡히면 숲이 갇혀 숨죽이고
은밀한 나의 기쁨 끝날 테지요
내가 멀어지면 쓰르라미 울음소리 눈부십디다
여름날 해거름 쓰르라미 울음소리 귀를 찢었습니다
통상 우리는 시가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생활로부터, 우리의 삶으로부터 시가 멀어진 까닭은 현대인의 팍팍한 삶에 시의 낭만은 감히 끼어들 만한 여유가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시인의 언어보다 훨씬 더 어려운 언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정치인의 언어입니다. 다른 행성에서 온 외계인의 언어도 아닌데 그들이 하는 말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중 단 한 사람을 콕 찍어 말한다면 심하게 체머리를 흔드는 어느 정치인이라고만 하겠습니다. 씨불인다고 다 언어가 되는 것은 아닐 테지만 그의 언어는 어느 이방인에게 하는 토착 원주민의 그것처럼 그저 웅얼거릴 뿐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쉼 없이 지껄입니다.
가을입니다. 아니, 언뜻 가을인 듯 느껴졌습니다. 시인의 언어가 내게 말을 걸어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