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스트의 책상
배수아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배수아의 소설 <에세이스트의 책상>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이것은 한 권의 소설입니다!'라고 큰소리로 선포해야 할지도 모른다. 소설이라는 단어에 굵게 밑줄을 긋거나 소리를 높여 강조할 필요도 있을 테고 말이다. 스토리도 목차도 없는 소설이 그 자체로서 소설의 절대성이나 정체성을 증명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을지도 모르겠고 말이다. 그것은 '배수아'라는 소설가에 대한 의구심인 동시에 의식의 흐름에 대한 자유분방한 기술 또는 가늠하기 힘든 생각의 방향에 대한 작가 스스로의 면밀한 탐구쯤으로 정의하기로 하자. 일단은.


"정신적 빈곤과 경박함은 곧 죽음과 다를 것이 없다. 이것은 M의 생각이었다. 진지한 시선이 결여된 정신은 부패하는 고기보다 더 나을 것이 없다는 것이다. 죽음이란 실제로 구체적인 형상으로 나타나기에 앞서서 추상적인 개념으로 우리 삶의 내용을 포괄적으로 점유한다는 것이다. 그 기준으로 말한다면, 이미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어 있는 사람들이 있다."  (p.69)


소설의 화자인 '나'는 독일에 체류하던 한때 M을 사랑했고, 그와 헤어진 후 다시 찾은 독일에서 요하임이라는 친구의 집을 방문해 책을 읽고 음악을 듣거나 산책을 한다. 성탄절 전날에 요하임의 어머니 집을 방문하거나 연말에 대학생들이 모이는 파티에 참석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일상은 소설의 어떤 사건이나 결말을 구성하기 위한 전제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목적도 없이 그저 스쳐갈 뿐이다. 다만 그와 같은 일상의 소일거리 속에서 문득문득 M에 대한 기억들이 개입한다. M에 대한 기억은 그렇게 조금씩 확장되다가 글의 중심으로 자리 잡는다. 그러나 작가는 M에 대한 기억을 이야기의 줄기로 삼아 음악이나 언어 또는 죽음과 같은 주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들을 풀어놓고야 만다. 결국 남녀 간의 사랑과 이별을 주제로 다루는 듯하던 이야기는 일상 속으로 용해되고 M과 '나' 혹은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예술적 주제들에 대한 견해나 관점이 글의 핵심으로 부상한다.


"나는 M에게서 언어를 배우는 대신에 음악을 배워야만 했었다. 혹은 M을 위해서 오랜 시간 무대 위에서 현악기 연주를 했어야만 했었다. 만일 우리가 언어가 아니라 단지 음악으로만 대화를 나누었다면, 나는 M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거나 혹은 그 반대로 모든 것을 알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M에게서 완전히 놓여나든지 아니면 M을 완전히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서로를 알기 위해서 사용한 언어는 단지 방언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것은 표현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M과 나를 모방하고 있었다. 우리가 언어에 의존했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우리의 관계에서 나는 점점 내가 아니었고 M은 점점 M에게서 멀어져갔다."  (p.144)


배수아의 소설에 빠져드는 이유는 단 하나, 의식과 의식 저편의 경계에서 소설이 펼쳐지고 책을 읽는 독자들 역시 현실과 꿈의 경계에서 한바탕 춤을 추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냉랭한 현실의 감각을 쉽게 잊을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책을 읽는 아주 잠깐의 시간만큼은 말이다. 밀란 쿤데라의 어느 작품에서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서도 우리는 그런 느낌을 공유할 수 있지만 배수아는 이보다 한 발 더 깊이 들여놓아도 괜찮다고 독자들을 유혹한다. 그것은 때로 마약과 같은 중독성을 동반한다. 배수아의 소설을 접했던 독자라면 그녀의 작품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으며 결별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책상 앞에서 나는 계속해서 쓴다. 페터 한트케의 말처럼, '단지 글을 쓰고 있을 때만이, 나는 비로소 내가 되며 진실로 집에 있는 듯이 느낀다.' 그러므로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 그것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을 것이다."  (p.174)


사랑을 표현하는 언어는 달콤하다. 그러나 단맛은 언제나 순간적인 감각일 뿐 영원성을 담보하지 못한다. 소설에서도 언급되었던 것처럼 '우리가 언어가 아니라 단지 음악으로만 대화를 나누었다면, 나는 M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거나 혹은 그 반대로 모든 것을 알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음악은 언어가 탐구하지 못한 인간 신체의 다름 감각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당신의 서툰 연주가 가을의 햇살 속에서 영원한 사랑으로 남게 될지도 모른다. 사랑은 언어로만 표현할 수 없는 그 이상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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