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아침. 그렇지만 이렇듯 조용한 시간에 우리는 저마다의 삶이 우리를 사박스럽게 몰아붙이고 있음을 처연히 깨닫는다. 바쁘고 정신없었을 때는 모른 척 지나쳤을 것들도 조용한 오전의 균질한 침묵 속에서만큼은 예외가 된다. 햇살 속에서 확연히 드러나는 먼지처럼 나의 실존은 침묵 속에서 가려지는 그 무엇인지도 모른다. 거울을 보듯 추레한 나의 삶을 바라보는 일은 결코 즐겁지 않다. 즐겁기는커녕 꽤나 불쾌한 일이다. 그러므로 삶에 있어서 침묵의 시간을 가급적 줄이는 게 불행을 막는 제 일의 법칙이라고 나는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다. 더구나 자신의 삶을 소재로 글을 쓴다는 건 섶을 지고 불행의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같아서 행복한 삶을 원한다면 부지불식간에 하는 낙서조차 금할 일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두 가지 일을 병행하며 자발적 불행을 향해 전속력으로 치닫고 있다.


텔레비전 뉴스에서는 대선 후보들의 행보가 매 시간 속속들이 보도되고 있다. 제1야당의 대선 후보에 대한 소식은 언제나 술과 뒤섞이는 경우가 많다. 체질상 술을 한 잔도 마시지 못하는 나로서는 매일 폭탄주를 마셔대는 그의 일상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몸이 견딜 수 있는 정도의 알코올을 매일 쏟아 부음으로써 불행을 감지하는 뇌세포를 철저히 박멸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공산당을 없앤다는 '멸콩' 놀이를 할 게 아니라 뇌세포를 없애는 '멸뇌' 놀이를 하는 게 격에 맞지 않을까 싶기는 한데, 아무튼. 언젠가 그의 뇌는 행복을 감지하는 뇌세포마저 모두 사라질 테지만 적어도 그전까지 그는 어린아이처럼 마냥 행복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그가 자연인 윤 모 씨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는 현재 제1야당의 대통령 후보라는 사실이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정말 대한민국의 국운이 다하여 그가 정말 대통령이라도 된다면 우리의 불행은 그때부터 시작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과하게 우려도 하고 걱정도 하는 것이다. 뇌세포가 부족하여 정상인보다 판단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그래서 사사건건 누군가에게(주로 무속인일 테지만) 그 판단을 미루는 일이 반복된다면 우리는 그 후보에게 투표했던 자신의 손가락을 두 눈 질끈 감고 부러뜨려야 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우려를 반영한 듯 일본을 제외한 대부분의 해외 언론(물론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대부분이지만) 중 우리나라의 정치에 관심이 있는 언론은 제1야당의 대선 후보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도하고 있는 듯하다. 일본의 언론은 크게 다르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대다수 언론이 제1야당의 대선 후보에 대해 무척이나 긍정적인 보도를 연일 쏟아내는 건 다소 의외라는 반응이다. 그러나 언론, 특히 주류 언론이 그럴 수밖에 없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언론사가 누렸던 과도한 혜택과 기자라는 특수한 신분의 명예와 특권이 점차 사라지고 있기 때문에 일말의 위기의식이 발동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현상은 종교계에서도 나타난다. 성직자로서 갖는 각종 혜택과 지위가 땅으로 떨어진 요즘, 과거에 대한 향수는 그들로 하여금 복권 내지 과거로의 회귀를 도와줄 인물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이다. 개신교뿐만 아니라 불교계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심심찮게 나타난다. 얼마 전에 있었던 승려대회 역시 그러한 맥락의 연장선이 아닌가 싶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개신교에서 더 노골적이고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만 말이다. 이러한 속셈은 진보를 주창하던 군소 언론사도 다르지 않다. 변절자 소리를 듣더라도 자신들부터 살고 봐야겠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결국 그들은 '백 투 더 퓨쳐(Back to the future)'가 아니라 '백 투 더 패스트(Back to the past)'를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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