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의 시끌벅적한 분위기는 이제 옛말이 되고 말았다. 회사는 물론 친한 친구들도 몇몇이 만나 식사나 한 끼 하는 정도이지 예전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여 부어라 마셔라 하는 분위기는 아주 오래전에 사라진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사회적 분위기 중 많은 것들이 변하였고, 변하고 있는 중임을 실감하게 된다. 사람들도 이제는 대면 모임보다는 비대면 모임이 오히려 자연스럽다고 말하는 추세이니 이렇게 몇 년만 지나면 송년 모임은 숫제 우리의 기억에서 영영 사라지게 될는지도 모르겠다.

 

어제는 고등학교 동창들 모임이 있어 잠깐 얼굴을 비쳤었다. 오미크론의 공포 탓인지 많은 친구들이 모였던 건 아니지만 위드 코로나 이전에는 모임 자체를 금했던 터라 열 명 안팎의 인원도 꽤나 많은 듯 느껴졌던 것이다. 오프라인 모임에서나 느낄 수 있는 반가움과 살아 있다는 느낌은 온라인에서의 난무하는 하트나 과한 사진들 속에서는 결코 찾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친구들 얼굴을 못 본 지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닌데 친구들 각자의 독특한 표정이나 말투, 특유의 제스쳐 등이 보면 볼수록 새록새록 되살아나는 느낌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지금껏 아주 많은 사람들을 만나왔고, 지금도 여전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있지만 그들 각자는 자신만의 행동 양식에 길들여져 있다는 걸 매번 느끼게 된다. 외부로 드러나는 행동 양식으로 인해 그들 내부의 지적 수준이나 교양, 인격 등이 평가되고 우리 역시 다른 사람을 알게 모르게 평가하곤 하는 것이다. 최근에 언론 보도가 많아진 야당 후보의 화법이나 부지불식간에 드러나는 태도를 보면서 이 사람의 지적 수준이 아주 낮거나 무엇인가 숨기고 싶은 게 많아서 자신의 속내를 잘 드러내지 못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그게 아니라면 타인의 질문을 귀 담아 듣지 않는 버릇이 있어서 질문의 요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어찌 됐든 그의 대답은 항상 횡설수설 명확한 논지도 없이 산으로 향하고 만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만약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면 다른 나라의 정상을 만나 우리나라의 상황을 설명하고 국익에 합당한 상대방의 동의를 얻어낸다는 건 처음부터 물 건너간 일이 되고 말 것이다.

 

어떤 사람이 말끝을 흐리거나 논점을 회피한 채 횡설수설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질문에 대한 답을 모르거나 알고는 있지만 자신을 숨겨야 할 필요가 있을 때이다. 사람이 솔직하고 자신감이 있다면 알면 안다, 모르면 모른다고 명확히 말할 일이지 질문과는 동떨어진 엉뚱한 대답을 한다는 건 질문자를 무시하는 처사이기도 하다. 예컨대 "삼국지연의에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인물이 있나? 특별히 없다면 좋아하는 문학작품이 있느냐?"는 질문에 뜬금없이 닥터지바고가 생각난다는 대답 같은 것이다. 미치지 않고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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