낀대세이 - 7090 사이에 껴 버린 80세대 젊은 꼰대, 낀대를 위한 에세이
김정훈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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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사람들은 비슷한 감성과 비슷한 추억을 공유하게 마련이다. 좋든 싫든 말이다. 60년대생은 60년대생만의 감성이, 70년대생은 70년대생만의 감성이, 그리고 80년대생은 80년대생만의 감성과 추억을 간직한 채 평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추세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10년 단위에서 5년 단위로, 5년 단위에서 3년 단위로, 혹은 1년 단위로 빠르게 재편되고는 있지만 우리는 비슷한 시기에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왠지 친밀한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이다.

 

"80년대생 낀대. 위로는 70년대 기성세대가 있고 아래로는 90년대 신세대가 있다는데, 요즘엔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기성세대가 든든한 발판이 되어, 신세대를 우러러봐야 한다. 신세대라는 말을 듣고 자랐지만, 신세대는 아닌 세대. 신세대라는 단어를 쓰는 것 자체에서 스멀스멀 풍겨 오는 왠지 모를 꼰대 스멜을 감지하는 센스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세대라는 단어를 대체할 다른 단어가 딱히 떠오르지 않는 세대. 그렇게 구린 걸 알면서도 구린 걸 행할 수밖에 없는 세대. 그게 낀대다."  (p.20~p.21)

 

연공서열에 민감한 우리나라의 직장 내 풍속도에서 세대 구분과 자신이 속하게 될 세대를 인지한다는 건 어쩌면 생존을 위한 작은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윗사람으로부터 나댄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 아랫사람으로부터 '꼰대'라는 비아냥을 듣지 않기 위해서 10년 단위의 동년배들 틈에 두루뭉술 몸을 숨긴다는 건 왠지 비겁한 느낌이 들면서도 어쩔 수 없는 생존전략이라고 자위할 수밖에 없는 현실. 김정훈이 쓴 <낀대세이>는 80년대생 젊은 꼰대, 7090 사이에 껴 버린 80세대의 이야기를 질펀하게 풀어놓는다. 말하자면 이 책은 다른 어떤 세대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80세대만의 비밀인 동시에 그들만의 애잔한 푸념이다.

 

"회사 생활을 하기 위해선 동기부여가 가장 중요하다고들 한다. 그것이 월급일지, 승진일지, 혹은 칼퇴일지는 개인마다 다르다. 하지만 이직의 이유 중 가장 큰 퍼센티지를 차지하는 게 회사 생활로 인한 스트레스다. 그 스트레스를 줄여보겠다고 힘든 일을 힘들지 않은 일처럼 포장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자 낀대들이여."  (p.234)

 

책을 읽다 보면 감칠맛 나는 작가의 입담에 정신없이 웃다가도 어느 순간 가슴 저 밑바닥으로부터 애잔한 슬픔이 밀려온다. 세대가 다를지라도, 성별이 다를지라도, 21세기를 힘겹게 살아가는 동시대의 지구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작가의 이야기에 백 번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시대에 인간은 한낱 로봇을 보조하는 부속품으로 전락하여 필요도 없이 밥만 축내는 '잉여인간'의 삶을 살아가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자신만의 고유한 정체성과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유지하는 인격체임을 잊지 말라고 작가는 누누이 주장하고 있는 듯했다.

 

"삶도 결국 연기 아닌가. 괜찮다는 연기. 잘 될 거라는 연기. 그러니 그 연기를 제대로 해내기 위해선 How보단 Why를 생각해야 한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중요하지만, 왜 그런 일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진정성이 생긴다."  (p.166)

 

낙엽이 쌓인 거리를 젊은 부부와 그들의 자식인 듯 보이는 어린아이가 걷고 있다. 아이는 엄마 아빠의 손을 잡은 채 공중으로 붕 떠올라 해맑게 웃고 있다. 땅에 착지하자마자 "또"를 외치는 아이. 부모는 힘들다는 말도 숨긴 채 아이의 몸을 힘껏 끌어올려 서너 발자국을 내딛는다. 아이는 연거푸 "또"를 외치고, 부모의 힘듦은 아이의 웃음으로 대체된다. 나는 그렇게 그들의 모습을 멀찌기서 바라보았다. 아주 한참 동안. 부모의 손에 매달려 하늘을 날던 아이는 훗날 자라서 어떤 세대와 공감하며 살까? 그도 역시 낀 세대의 고단함을 푸념처럼 늘어놓으며 소주잔을 기울이던 순간을 추억처럼 회상하게 될까? 10월의 마지막 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잊혀진 계절'을 부른 가수가 이용이 아닌, 아이유나 임영웅, 혹은 다른 어떤 가수로 기억하지나 않을까? <낀대세이>를 쓴 어느 작가의 푸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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