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과 지성 - 뉴욕에서 그린 나와 타인과 세상 사이의 지도
김해완 지음 / 북드라망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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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적인 인간은 만성적으로 불안정한 존재이다.'라고 했던 에릭 호퍼의 전제는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도시에서 그것을 사실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다. 어떤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일정한 방향으로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까닭에 세상은 마치 신이 만든 각본에 따라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각자의 역할을 구성원 모두가 충실히 수행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서 도시의 구성원으로부터 받는 우리의 느낌은 불안이나 불만족이 아니라 자신감과 열정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그로 인해 자신감이 넘치는 구성원 각자의 표정으로부터 인생을 낙관적으로 바라보게도 되고, 삶이 지극히 평범하게 흐를 것 같다는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개인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되는 뉴욕과 같은 거대 도시에서 구성원들은 계급, 인종, 젠더, 국적, 언어 등과 같은 다양한 카테고리를 통해 바라볼 때 인간은 한없이 불안정하며 한 개인에 깃들어 있던 불균형한 기질은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뉴욕의 미덕 중 하나는 열정적으로, 온 힘을 다해 사는 것이다. 온 힘을 다해 교육받고, 일자리를 찾고, 쇼핑하고, 술을 마신다. 뭘 하든 간에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해야 한다. 이렇게 열정적으로 사는 사람은 생산적으로 산다며 찬사를 받는다. 하지만 호퍼의 '영혼의 연금술'에 의하면 극단적인 열정은 자기 자신에 대한 불만을 해소하는 지름길이다. 오늘의 자기를 부정함으로써 내일은 더 나은 자신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이 괴로워도 참아볼 만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종교가 힘을 잃은 상황에서 열정은 구원의 느낌을 대체한다. 뉴욕 사람들의 열정적인 라이프스타일은, 이 도시에 사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진실과 마주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계속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p.331)

 

젊은 작가 김해완이 쓴 <뉴욕과 지성>은 '길'을 잃은 대한민국의 모든 젊은이들을 위한 길 안내서로서의 자격을 갖추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부족한 면이 많고 채워져야 할 것들이 곳곳에 존재하겠지만 젊다는 건 여전히 그 가능성을 전제로 부족함을 대신하기 때문이다. 열일곱 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인문학 지식공동체인 '남산강학원'에서 5년간 읽고, 쓰고, 질문하는 법을 배웠다는 작가의 이력도 특이하지만, 남산강학원과 인문의역학 연구소인 감이당이 함께하는 MVQ(Moving Vision Quest)의 일환으로 2014년 뉴욕에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42개월 동안 살면서 그간의 경험과 배운 바를 바탕으로 이 책을 쓰게 되었다는 점도 눈에 띄었다.

 

"뉴욕의 돈 없는 외국인 학생이라는 변두리 위치에 서서, 같은 공간에 살고 있는 나와 타인(이 타인은 지금 옆집에 사는 이웃일 수도 있고, 몇 십 년 전에 머리를 싸매며 뉴욕과 세계를 고민했던 지성인일 수도 있다)의 삶 사이에 접점을 찾아서 그 사이 공간을 스케치해 보려고 했다."  (p.5 머리말' 중에서)

 

머리말과 부록의 뉴욕 열전을 제외하면 책은 10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1. '가장 보통의 존재의 환상 : 스콧 피츠제럴드와 5번가', 2. '휴머니티의 집 : 하워드 진과 990 아파트', 3.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문화 : 에드워드 사이드와 MTA 지하철', 4. '가장 낮은 곳부터 마비시키는 은총 : 이반 일리치와 워싱턴하이츠', 5. '뉴요커, 우주의 그로테스크한 농담 : 스티븐 제이 굴드와 자연사 박물관', 6. '콘크리트 정글의 신화 : 허먼 멜빌과 월가', 7. '구멍난 몸, '웃픈 도시' : 올리버 색스와 23번가 공원', 8. '연애, 만인의 무정부주의 : 엠마 골드만과 로어이스트사이드', 9. '가족을 위한 블루스 : 제임스 볼드윈과 할렘', 10. '마음-지옥의 방랑기 : 뉴욕과 에릭 호퍼'가 그것이다.

 

이채로운 것은 한없이 감성적일 것 같은 작가가 스티븐 제이 굴드나 올리버 색스를 책의 중간에 끼워넣었다는 사실이다. 알다시피 그들은 문학과는 다소 동떨어진 과학자이거나 의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지엽적인 문제에 앞서 나의 시선에 깊게 각인되었던 것은 책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스콧 피츠제럴드와 마지막을 장식하는 에릭 호퍼였다. '위대한 개츠비'를 쓴 스콧 피츠제럴드에게 있어 뉴욕은 그야말로 자본주의의 환상일 뿐이고 '길 위의 철학자'로 불리는 에릭 호퍼에게 있어 뉴욕은 스콧 피츠제럴드와는 대척점의 위치에 있는, 지극히 현실적인 도시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작가는 어떤 환상을 품은 채 뉴욕에 도착하여 누구보다도 현실적인 사람으로 뉴욕을 떠나게 되었다는 사실을 목차에서 암묵적으로 말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여행객은 누구나 여행지에 대한 얼마간의 환상을 품게 마련이지만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모든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자신의 몸과 영혼을 자신의 품 안으로 끌어들이는 과정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고려할 때, 비교적 젊은 나이의 작가는 몸도 마음도 가능한 한 멀리까지 행동반경을 넓힐 시기이지 안으로 안으로 축소할 시기는 아니라는 점이다. 젊은 시절의 인간은 인간관계를 넓히고, 더 먼 곳까지 여행하기를 원하고, 영혼이 머무는 자신의 내적 공간을 벗어난 그의 영혼이 환상에 부풀대로 부풀어 아주 멀리까지 뻗어가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년의 시기를 지나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반경을 줄이고, 단출한 인간관계를 지향하며, 밖으로만 나돌던 자신의 영혼을 시간이 날 때마다 내적 공간으로 끌어들이게 된다. 결국 우리는 죽음이라는 마지막 종착점에 이르기 전에 자신의 영혼을 각자의 몸 안에 갈무리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만의 인생 서사를 써내려가기에 앞서 우리들 각자는 자신의 현재 위치를 시공간에서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러자면 나는 누구이며, 어떠한 관계 속에 위치하고 있으며, 어떠한 공간, 어떠한 시간을 스쳐가고 있는지 냉정하게 되짚어보아야 한다. 말하자면 자신의 좌표를 시공간의 어느 한 점에 위치하기 위해서는 인간관계의 파악이 선행되어야 하고, 그러한 관계 속에서 자신의 소속과 가능성을 객관적으로 살펴봄으로써 지향점과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젊은 시절의 그것은 일종의 환상처럼 허무맹랑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러면 또 어떠랴.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있는 자신의 위치를 파악할 수만 있다면 언제든 자신의 인생행로를 다시 찾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작가도 이제야 비로소 스스로의 좌표를 찍을 수 있겠구나, 하고 안심하게 되었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누군가에게, 혹은 자신보다 어린 사람들에게 당신의 좌표는 어디냐고 묻고 있는 듯했다. 자신이 처한 위치도 모른 채 막막한 인생길을 떠난다는 건 너무나 무모한 도전이 아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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