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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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자신의 삶을 자신이 쓰는 글의 문체에 스미게 하는 직업이다. 그러므로 나는 자연인 신경숙을 사랑했던 게 아니라 신경숙이라는 문체를 사랑해왔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신경숙이라는 문체는 등단 이전부터, 내가 비로소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접하기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던, 존재했지만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던 또 다른 문체였는지도 모른다. 하여 나는 <겨울 우화>로부터 비롯된 신경숙 읽기에 빠져들었고, <외딴방>이나 <리진>,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아름다운 그늘>, <자거라 네 슬픔아>, <모르는 여인들> 등 시간의 순서를 도외시한 채 신경숙이라는 문체에 탐닉했었다. 그리고 <엄마를 부탁해>로 이어지던 신경숙 읽기는 그해 불거진 표절 의혹으로 인해 어쩔 수 없는 긴 휴지기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세상에 없는 단 하나의 문체인 신경숙은 재생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삶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신경숙 읽기를 멈추었던 수많은 독자 중 한 명인 나로서는 작가의 삶이 지속되는 한 이른 복귀를 고대할 수밖에 없었고, 2015년 세상으로부터 불현듯 사라졌던 작가는 6년이라는 긴 침묵을 깨고 2021년 <아버지에게 갔었어>를 통해 세상에 복귀했다. 신경숙 읽기에 목말랐던 나는 작가의 복귀가 무척이나 반가웠고 <아버지에게 갔었어> 역시 단숨에 읽어버렸다. 기꺼운 마음으로.

 

"어떤 사실들은 때로 믿기지 않을 만큼 비현실적이라 시간이 흘러도 실감이 나질 않는다. 끝내 사실일까? 싶은 의문과 회의가 든다. 어떻게 그런 일이? 싶어서 사실이 우연이나 조작에 의한 것처럼 보이고 어떤 형식에 맞추기 위해 도식을 끌어온 것처럼 여겨지며 상상에 의한 허구가 오히려 사실처럼 느껴진다."  (p.103)

 

'엄마가 병원에 입원하기 위해 여동생을 따라나서자 J시의 오래된 집에는 아버지 홀로 남게 되었다.'로 시작되는 길고 긴 서사는 신경숙이라는 문체로 인해 진한 슬픔을 동반한 채 아프게 이어진다. 몇 년 전 딸을 잃은 '나'는 엄마가 없는 고향집에 돌아온 후 비로소 질곡의 세월을 살아온 한 인간으로서의 아버지를 대면한다. 전염병으로 두 명의 형을 잃고 얼떨결에 종손이자 장남이 된 아버지, 혹시나 마지막으로 남은 아들마저 전염병으로 잃게 될까 노심초사했던 조부모의 걱정으로 인해 학교마저 다닐 수 없었던 아버지, 이른 나이에 부모를 잃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아버지, 그리고 온몸으로 겪어냈던 70년의 한국현대사가 주름살처럼 깊게 파여 수면장애로 드러나고 있는 안타까운 삶.

 

"아버지를 전혀 모르겠다는 기분이 들자 등을 기대고 있는 현관문이 차갑게 느껴지고 생각지도 못한 외로움이 밀려왔다. 나는 날이 밝자마자 어젯밤 아버지가 편지를 태우던 헛간으로 가보았다. 검은 재가 수북했다. 무슨 편지를 태운 것인지. 나는 발로 잿더미를 헤집어보다가 주저앉았다."  (p.238)

 

시조창처럼 유장한 가락의 신경숙이라는 문체는 소설 읽기가 못내 힘에 겨웠던 내게 와서 매 문장 마침표를 지나칠 때마다 툭툭 끊겨 뒤뚱거렸다. 한국전쟁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작품 속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나의 아버지에게 오버랩되어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희미해진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소설에서 아버지는 국군과 인민군의 혼재 속에 한국전쟁을 겪었고, 돈을 벌기 위해 갔던 서울에서 4·19 혁명의 현장을 목격했으며, 여섯 명이나 되는 자식들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키웠던 소의 값이 폭락하자 소를 타고 소몰이 시위에 참여하기도 했다. 아버지로부터 풀려나온 한 올 한 올의 한국 근현대사는 자식들과 주변 인물들의 증언 혹은 편지를 통해 리얼리티를 더한다. 이에 더하여 중동 건설 노동자로 이주했던 '큰오빠'의 삶과 이를 기억하는 조카 등 아버지를 둘러싼 다른 가족들의 삶을 통해 아버지의 다양한 모습이 입체적으로 드러난다.

 

"나는 아버지 말을 받아적다가 움찔했다. 내가 어떤 일에 마음이 옹졸해져서 쓰기를 주저했던 말들이 메마른 아버지 입에서 풍부하게 느릿느릿 흘러나왔다. 아버지가 내게는 황송한 내 자식들, 이라고도 했으나 나는 차마 그말은 적지 못했다. 무릎 위의 노트북이 자꾸 미끄러지려고 해 나는 노트북을 아버지 침대에 올려놓고 무릎을 꿇은 채 자판에 손가락을 갖다댔다. 아버지는 무슨 말인가 더 하고 싶은지 방바닥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p.415)

 

소설 속에서 '나'는 한동안 잊고 지냈던 글쓰기를 아버지를 통해 이어간다. 그것은 아버지를 통해 깨닫게 된 시간의 흐름과 나이 듦에 대한 통찰이며, 약하디 약한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순리이며, 뻗대고 저항한다고 해도 끝내 순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시간들이다. 아버지는 단지 자식들을 키우고 보듬어주던, 언제까지고 '나'의 보호자로만 살아가는 관계 속의 존재만은 아니고, 그 모든 관계 속에서도 고통과 슬픔을 감내하는 개별적인 한 인간이었음을 소설 속의 '나'는 말하고 있다. 아버지에게도 누군가의 따뜻한 체온이, 삶을 지탱하는 절절한 위로가 순간순간 필요했음을 소설 속의 '나'를 통해 문득 깨닫게 된다. 끊김 없이 유장하게 이어지는 신경숙이라는 문체가 내게 와서 돌부리에 걸린 듯 휘청거리며 툭툭 끊겼던 까닭은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가 가슴 한켠에 옹색한 모습으로 남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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