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인칭 단수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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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잘 알지도 못하는 다른 사람의 경험을 끌어들이지 않아도 이렇게 다채로운 삶의 풍경을 그려낼 수 있는 건 어쩌면 그가 무라카미 하루키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소설가라면 누구나 일정 부분 본인이나 가족의 이야기가 소설 속에 흘러들게 마련이지만 그렇다고 초기 작품이 아닌 이상 전적으로 자신의 경험에 의지하여 소설을 꾸려나가지는 않을 터, 세계적인 명성과 더불어 노벨 문학상 후보에도 매년 단골처럼 이름을 올리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와 같은 위험성을 모르는 채 자신의 지난 경험을 토대로 쓴 소설들을 한 권의 소설집으로 엮어 출간하지는 않았으리라. '일부러'라고 밖에는 달리 그의 의도를 설명할 수 없는(그래서 더욱 놀랍기도 하지만) <일인칭 단수>는 애독자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그의 경험담을 소설로 개작한, 익숙한 듯하면서도 새로운 하루키 월드로의 여행 안내서 역할을 한다.

 

책에는 표제작인 '일인칭 단수'를 포함하여 여덟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대학교 2학년 시절 같은 일터에서 같은 시기에 아르바이트를 했던 이십대 중반쯤의 여인과 어느 날 우연히 단발성의 밀애를 즐겼던 기억을 되살려 그녀가 보내준 가집에 실린 몇 편의 단카 역시 마음 깊이 남아 있음을 말하고 싶었던 '돌베개에', 재수생 시절 열여섯 살까지 같은 피아노 학원을 다녔던 한 학년 아래의 여자애로부터 연주회 초대장을 받았던 '나'는 못내 미심쩍어하면서도 초대장에 적힌 콘서트홀을 어렵게 찾아갔지만 그곳은 아무도 없고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돌려 되돌아오다가 우연히 들른 마을의 작은 공원과 그곳의 정자 벤치에서 한 노인을 만났던 고베의 어느 흐린 일요일 오후를 그린 '크림',  열혈 재즈 팬이었던 '나'는 알토색소폰의 대부인 찰리 파커가 요절하지 않고 음악 활동을 계속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만으로 대학 시절 있지도 않은 음반 <찰리 파커 플레이즈 보사노바>에 대한 가상의 비평을 쓴 글이 대학교 문예지에 실린 적이 있었고, 몇십 년 후 그 음반을 실제로 마주했던 경험의 이야기가 실린 '찰리 파커 플레[이즈 보사노바', 전 세계가 비틀스 열풍에 휩싸였던 시절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위드 더 비틀스>라는 음반의 LP판을 가슴에 안고 복도를 빠르게 스쳐 지나갔던 아름다운 소녀에 대한 기억과 그 시절의 풍경을 담은 '위드 더 비틀스'.

 

"그래도 만약 행운이 따라준다면 말이지만, 때로는 약간의 말語이 우리 곁에 남는다. 그것들은 밤이 이슥할 때 언덕 위로 올라가서, 몸에 꼭 들어맞게 판 작은 구덩이에 숨어들어, 기척을 죽이고, 세차게 휘몰아치는 시간의 바람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이윽고 동이 트고 거센 바람이 잦아들면, 살아남은 말들은 땅 위로 남몰래 얼굴을 내민다." (p.24 '돌베개에' 중에서)

 

야구를 좋아하고 야구장을 찾아 경기를 직관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야쿠르트 스왈로스가 산케이 아톰스이던 시절부터 경기장을 찾았고 외야석에 앉아 경기를 관전하면서 심심풀이로 썼던 시를 모아 자비출판의 형태로 시집을 낸 경험을 토대로 쓴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집', 수많은 피아노 클래식곡 중에서도 슈만의 <사육제>를 특히 좋아한다는 공통의 관심사로 인해 자주 교제를 하고 왕래했던 한 여인에 얽힌 묘한 경험을 소설로 쓴 '사육제', 여행 중 쇠락한 온천 마을 료칸에서 인간의 말을 할 줄 알 뿐만 아니라 나름의 교양도 지녔던 원숭이에 대한 이야기를 쓴 '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 평소 슈트를 입을 기회가 거의 없는 '나'는 일상에서 벗어난 신선한 감각을 즐기기 위해 이따금 슈트를 입고 '나'만의 비밀스러운 의식을 치르곤 하였는데, 어느 날 슈트를 입고 바에서 혼자 술을 마시던 중 처음 보는 여자로부터 삼 년 전 내가 저질렀다는 '고약한 짓'에 대하여 호된 꾸지람을 듣게 되는데 차마 확인도 할 수 없었던 '나'는 불쾌한 감정만 안고 돌아왔다는 내용의 '일인칭 단수'가 그것이다.

 

"계단을 다 올라 건물 밖으로 나왔을 때, 계절은 더이상 봄이 아니었다. 하늘의 달도 사라졌다. 그곳은 더이상 내가 알던 원래의 거리가 아니었다. 가로수도 낯설었다. 그리고 가로수 가지마다 미끈미끈하고 굵은 뱀들이 살아 있는 장식처럼 단단히 몸을 휘감은 채 꿈틀대고 있었다. 스륵스륵 비늘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p.232 '일인칭 단수' 중에서)

 

한 인간의 정체성을 그가 겪은 경험과 기억의 총체로 규정한다면 하루키 내부에 있는 다채로움 역시 하루키 본인의 정체성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하루키 자신이 풀어놓은 색색깔의 경험들은 어찌나 선명하고 개성이 독특한지 그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독자라면 이것이 모두 한 사람의 경험에서 비롯된 글이라고는 감히 상상하지 못할 듯하다. 생각해 보면 같은 지역에서 비슷한 일상을 보낸 사람들마저 그들이 겪고 느낀 바는 저마다 다를 텐데 시간의 갈피에 새겨진 한 사람의 인생은 얼마나 다채로울 것인가. 다만 우리는 시간의 무게에 짓눌린 저 아래쪽의 풍경을 눈에 그리듯 자세히 떠올리지 못할 뿐이다.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그리고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그 아름다웠던 풍경을 다만 잊고 지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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