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한 은둔자
캐럴라인 냅 지음, 김명남 옮김 / 바다출판사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제는 혼자 늦은 점심을 먹었다. 일부러 의도한 것은 아닌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코로나 확산으로 가뜩이나 손님이 없는 식당은 점심시간도 지난 까닭에 휑뎅그렁했다. '코로나에 감염될 염려는 없겠네.'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혼자 늦은 점심을 먹는다는 건 여전히 힘들고 어색했다. 음식 주문을 하면서도 뭔가 죄를 지은 기분이 들었던 건 나만의 자격지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끝으로 갈수록 나의 목소리는 점점 힘을 잃고 입 안으로 말려들어갔다. '이럴 거면 차라리 점심을 굶을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왔다.

 

점심을 먹으면서 문득 들었던 생각은 캐럴라인 냅의 산문집 <명랑한 은둔자>에 대한 리뷰를 써야겠다는 것이었다. 정신분석가 아버지와 화가 어머니 사이에서 쌍둥이로 태어났던 작가는 브라운 대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하고 20년 가까이 저널리스트로 살았다고 한다. 남 부럽지 않은 화려한 삶을 살았을 것 같은 작가의 삶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알코올 중독과 다이어트 강박증, 섭식장애 등 불행의 연속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그녀의 삶은 힘겨웠다. 그럼에도 그녀는  2002년 마흔둘이라는 이른 나이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신의 내면을 직시하면서 삶의 밝은 쪽으로 나아가려 애썼다. 냅의 자전적 에세이집인 이 책은 그녀가 죽은 후에 출간된, 말하자면 유고집인 셈이다. 늦은 점심을 먹는 내게 아릿한 슬픔을 안겨주었던 책, 그럼에도 삶의 아름다움을 끝끝내 증명하고 싶어 했던 캐럴라인 냅의 분투의 기록들이 오롯이 담긴 책, <명랑한 은둔자>라는 책의 제목이 추락하는 석양처럼 가슴 한 켠을 무겁게 짓눌렀던...

 

"마취제 없는 삶은 격렬한 운동과도 좀 비슷하다. 각자 선택했던 중독의 대상이 없는 채로 고통스러운 순간을 반복하여 겪다 보면, 결국에는 감정의 근육이 길러진다. 우리가 술을 마셔서-혹은 굶어서, 먹어서, 도박을 해서, 살을 찌워서-감정을 몰아낼 때, 우리는 그 감정을 이해할 기회를 스스로 박탈하는 셈이다. 자신의 두려움과 자기 의심과 분노를 이해해볼 기회를, 마음속에 묻혀 있는 감정의 지뢰들과 제대로 한 번 싸워볼 기회를. 중독은 우리를 보호해줄지 몰라도 성장을 저지한다. 사람을 한층 더 성숙시키는 인생의 여러 두려운 경험들을 우리가 온전히 겪지 못하도록 막는다." (P.224)

 

'사랑하는 아빠, 아빠가 돌아가신 날 밤 저는 술에 취했습니다.'로 시작되는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는 읽는 이로 하여금 가슴 먹먹한 느낌을 전해주지만 어쩌면 이것은 작가가 누구보다 가족과 친구와 개에 대한 사랑이 넘쳤지만, 마음 한구석에 자리한 공허와 불안과 사투를 벌였던 사람임을 말해주는 슬픈 문장일지도 모른다. 정신분석가인 아버지의 딸이 알코올 중독자라는 사실이 얼마나 꼴불견이냐며 자책하는 모습은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자 독자를 대신한 작가의 솔직한 자기 고백임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보통 사람이 되는 수업을 듣고 싶다. 이런 나를 도와줄 사람이 있을까? 나는 평범한 노동자, 전형적인 미국 중산층 시민, 바글거리는 군중 속의 이름 없고 얼굴 없는 한 구성원이고 싶다. 당신은 이게 무슨 뜻인지 아는가? 당신도 혹시 그러고 싶은가? 그렇다면, 당신은 이것이 얼마나 손에 넣기 어려운 목표인지 알 것이다." (p.285)

 

나는 상실, 결핍이라는 단어가 고립과 고독의 한 원인이 될 수는 있지만 필연적인 인과관계에 놓여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그보다는 나를 둘러싼 내, 외부적인 환경과 유전적 특질 - 말하자면 개인의 성격, 체력, 인생관, 가족이나 친척의 사회적 위치, 기대심리 등-로 인해 같은 물리적 환경 하에서도 천차만별의 결과가 도출된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보통의 환경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파악하고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작가가 말했듯이 평생을 '보통 사람'으로 살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행운인가.

 

캐럴라인 냅의 글이 독자들의 공감을 사는 이유는 명백한 듯 보인다. 자신이 실수와 결함 투성이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하거나 숨기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신의 모습을 정확하게 관찰하고 파악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남들이 기대하는 더 나은 모습으로 변화하기 위해 끝없이 노력했다는 점일 것이다. 자신의 결함을 숨기기에 급급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향해 '결핍이나 결함을 숨기면서 스스로 우울의 터널 속으로 걸어 들어갈 것이냐, 아니면 세상의 모든 비난이나 조롱을 감수할지라도 나를 드러내고 그들과 어울려 '명랑' 속으로 진입할 것이냐' 묻고 있는 것이다. 늦은 점심을 혼자 먹는다는 것에 대해 타인의 시선을 무척이나 의식했던 나의 위선이 말할 수 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던 어제, 그리고 늦은 점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