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지 말고 진보하라
스테판 에셀 지음, 목수정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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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시기에 한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을 찾아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설사 발견한다 하더라도 구성원 전체를 설득하여 더 나은 쪽으로 혁신을 유도한다는 건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단지 사회 구성원 몇몇에 의한 너무나 미약한 목소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회 전체의 삐걱거림, 혹은 사회 시스템의 붕괴와 같은 위기 상황이 아니고서는 사회의 모순을 발견하고 이를 시정해야만 한다는 강한 신념이 구성원 각자에게 발현된다는 건 기대하기 어렵다. 이와 같은 까닭에 사회의 진보는 마냥 더딜 수밖에 없고, 성급한 사회 구성원에게 진보란 언제나 답답한 현실로만 비친다.

 

"국가의 경제적, 재정적 권력이 우리를 움직이긴 하지만, 국가의 지성은 그렇지 않다. 분노의 힘과 시민들의 운동 속에서 단순하고 명확한 메시지가 나타나야 한다. 이 세계는 우리에게 속해 있다. 우리는 결코 정부에 속하지 않았으며, 국가를 장난감처럼 갖고 노는 금융권력에는 더더욱 속하지 않는다." (p.274)

 

전 세계적인 코로나19의 충격은 각국 정부의 정체성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그것은 어쩌면 바이러스처럼 빠르게 전파되었던 자유주의 시장 경제 체제의 한계를 노정하는 시발점이었는지도 모른다.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금과옥조처럼 추구되던 신자유주의 경제에 대한 회의와 우리의 미래를 맡기기에는 그 제도가 얼마나 부실한가에 대한 실제적인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 사례가 작금의 코로나 위기였다. 그런 측면에서 스테판 에셀의 자서전 <멈추지 말고 진보하라>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앞으로 나아갈 분명한 방향을 제시하는 길라잡이 역할을 한다고 말할 수 있다. 2010년 그의 나이 92세에 발표한 32쪽 분량의 작은 책 <분노하라>가 세계인들에게 분노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던 것처럼 말이다.

 

국가의 구성원들이야 어찌 되든 오직 자신의 정치적 유불리만을 따져 상황을 판단하고, 자신의 정치적 입지에 유리하다면 비록 그것이 범죄에 가까운 행위일지라도 아무런 죄책감 없이 저지를 수 있는 정치인들. 자신 입장은 쏙 뺀 채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게 국가 구성원 전체에게 유리하며 그것이 마치 정치적 선을 추구하는 유일한 길인 양 선전하는 정치인들. 부를 향한 무한대의 욕망을 부추기고 '자유 경쟁'이라는 미명 하에 무한대의 축재를 용인하는 정치인들. 예컨대 북한의 김정은이 최근 99% 사망했다고 주장함으로써 국민들 전체를 불안에 떨게 하고 국가 전체를 혼란에 빠트렸던 탈북 정치인과 그가 속한 정당의 정치인들은 김정은이 건재하다는 뉴스에도 불구하고 일언반구의 사과조차 없었다. 그를 뽑아준 지역구의 국민들도 우매한 것은 사실이지만 우선적으로 그와 같은 자들을 공천한 정치인들의 잘못이 크다 하겠다. 결국 코로나19와 같은 전 세계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분노가, 깨어 있는 시민들의 용기가, 그리고 타인을 배려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걸 우리는 작금의 위기를 통해 배운다.

 

"내가 보기에 문제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방관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우리를 기다리고 잇는 어려움들은 극복할 수 없는 것들이 아니며 우리에겐 충분히 사용하지 않은 에너지가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아직은 너무 멀게만 보이는 가치들에 대한 열망이 우리 안에 들끓고 있음을 스스로에게 각인시켜야 한다. 만일 우리가 불가능을 가능이라고 여긴다면, 그곳에 다다를 수 있다고 믿고 충분한 힘이 있다고 느낀다면 우리는 조화를 이룰 수 있다." (p.167)

 

외교관으로서 세계 인권 선언문 초안 작성에 참여하는 등 현실 정치인이자 사상가였던 저자는 자본의 폭력에 맞서 더 나은 세상을 꿈꾸자고 호소했던 '낭만적인 레지스탕스'이기도 했다. 우리가 유럽의 방식으로 살아가려면 두 개의 지구가, 미국의 방식으로 살아가려면 다섯 개의 지구가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하나의 지구에서 70억 명의 인구가 공존하는 길을 모색하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시스템 구축에 헌신할 것을 강조했던 스테판 에셀.

 

"나를 바르게 지탱해주었던 첫 번째 힘은 우리 집안이 갖고 있는 일종의 전통 같은 것이었다. 내 부모님의 삶의 핵심이자 유익하며 필요한 것이라고 가르쳐주었던 것들의 영향이다. 내 부모님은 한 편으로는 그리스 신들을, 다른 한 편으로는 시를 내게 물려주었다.(중략) 내게 시는 하나의 '증거'였다. 내 경험에 의하면, 세상에는 우리를 활짝 피어나게 해주고, 우리가 맞서 싸우는 세력에 좌지우지되지 않고 그로부터 초월하게 해주는 영역이 있다. 시가 바로 그 증거다. 그때 우리는 다른 영역에 존재한다." (p.158)

 

'나에게 영혼이라는 것은 내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이다. 그것은 전 인류의 눈이며, 눈물 흘리지 않고는 암송할 수 없는 시들이기도 하다.'라고 했던 스테판 에셀의 명언은 코로나 시대의 전 지구인에게 전하는 위로이자 계명이다. 민주주의가 발전했다고 하는 미국과 서구 유럽의 국가에서 코로나19로 인한 많은 희생자가 나왔던 것은 아마도 그들의 지도자 대부분이 '눈물 흘리지 않고는 암송할 수 없는 시'를 가슴에 품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반면에 우리는 타인의 아픔을 나의 아픔처럼 여길 수 있는, 영혼이 있는 지도자를 둔 덕분에 위기 상황에서도 오늘과 같은 평화를 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국민을 혼란에 빠뜨리는 가짜 뉴스도 언제든 퍼뜨릴 수 있는 사이비 정치인을 배제하는 게 이 시대의 진보를 향한 첫걸음이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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