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가볍게 넘을 수 없는 힘든 고비 몇 개쯤은 겪게 마련이지만 하나의 고비를 넘길 때마다 이번 위기만 무사히 넘기면 뭐든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곤 한다. 말하자면 지금 겪고 있는 이 위기가 인생 전체에서 가장 큰 위기일 것만 같은, 앞으로도 없고 이전에도 없었던 절체절명의 위기쯤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그러나 위기는 생각지도 않은 순간에 언제든 다시 찾아올 수 있고 그때마다 우리는 '이번 위기만 무사히 넘길 수 있다면' 하면서 그 순간을 이겨나가게 될 것이다. 습관처럼 말이다. 그리고 우리가 지나쳐 온 위기는 상대적으로 아주 작게 느껴지거나 그 시절이 몹시도 그립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코로나19 위기가 해외에서는 여전히 심각한 수준이지만 국내에서는 바야흐로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불안불안하다. 지금보다 더욱 심각한 코로나19의 확산이 재발한다고 하더라도 하등 이상할 게 없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코로나19 바이러스라는 폭탄을 각자의 손에 쥔 채 불안한 평화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먹고사는 문제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맥스 포터의 소설 <슬픔은 날개 달린 것>을 읽었다. 160여 페이지의 비교적 얇은 이 소설은 하나의 산문시와 같은 생소하면서도 난해한 형식의 작품이지만 책을 다 읽고 나면 하나의 느낌이 오롯이 남는 특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물론 읽는 이에 따라 각자 다른 경험을 하게 되겠지만 말이다.

 

"하나의 관념으로서의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는 건 멍청한 사람들이나 하는 생각이다. 지각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슬픔이 장기 프로젝트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나는 서두르길 거부한다. 우리가 떠안은 이 고통은 그 속도를 늦추거나 올리거나 바로잡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p.144)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세계적인 대유행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누군가의 엄마였거나, 아빠였거나, 아들이었거나, 딸이었고, 며느리 혹은 사위였을, 혹은 누군가의 할아버지나 할머니였을 그 많은 사람들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전염'이라는 강력한 위협에 몸을 웅크린 채 제대로 된 작별 의식도, 슬픔이라는 장기 프로젝트에 대한 제대로 된 애도의 계획도 없이 우리는 그 모든 걸 '다음'으로만 미루고 있다. 달력 한 장을 넘기면 달력 상단에 5월이나 6월이 아닌 '다음'이라는 달이 등장할 것만 같은 작금의 시간 앞에서 우리는 치밀어 오르는 '슬픔'마저 유보해야 한다. 4월이 가면 '다음'이라는 막연한 시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공동체의 불안을 우리는 그저 봄바람에 마음을 씻는 것처럼 요 며칠 거세게 불었던 봄바람에 기대고 있는 건 아닐까. 코로나19의 시간도 그렇게 훌쩍 지나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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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4-24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꼼쥐 님의 잘 정리된 글을 읽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꼼쥐 2020-04-27 17:39   좋아요 0 | URL
칭찬 댓글에 저 역시 기분이 좋아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