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안락사를 택했습니다 - 가장 먼저 법적으로 안락사를 허용한 나라 네덜란드에서 전하는 완성된 삶에 관하여
마르셀 랑어데이크 지음, 유동익 옮김 / 꾸리에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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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은 별거 아닌 문장에도 가슴이 녹아내리는 듯한 절절한 느낌이 들곤 한다. 글을 잘 쓰고 못 쓰고의 차이에서 오는 게 아니라 책을 통한 저자의 진심이 고스란히 전달되느냐 아니냐의 차이에서 오는 듯싶다. 그것은 어쩌면 자신의 생각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간절함이나 반드시 그럴 필요가 있다고 느끼는 절실함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삐뚤빼뚤한 글씨체로 한 자 한 자 정성을 담아 써 내려간 어느 시골 할머니의 시구가 읽는 이의 가슴을 적시는 것처럼 말이다.

 

최근에 읽었던 책 중에 그런 책이 한 권 있었다. 네덜란드의 저널리스트인 마르셀 랑어데이크가 쓴 <동생이 안락사를 택했습니다>가 그것이다. 사업가로 성공하여 사우나를 갖춘 고급 주택에 고급 차를 소유하였던 동생 마르크는 남들이 보기에 어쩌면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이었을지도 모른다. 책에서 저자는 남부럽지 않게 살았던 동생 마르크 랑어데이크가 결국 자신의 삶을 포기한 채 안락사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과정을 동생의 일기와 형인 저자의 서술을 통해 더듬어가고 있다.

 

"사람들은 죽기 하루 전날 밤에 무엇을 할까? 아마도 책을 읽거나 시시껄렁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시청하거나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빠르게 달리기를 하거나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갈 것이다. 운이 좋으면 벌거벗은 여자 셋-혹은 남자 셋-과 샴페인이 가득 채워진 욕조에 누워 있을 것이다. 어쩌면 다른 취미를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그것에 대하여 고심하거나 생각에 잠길 문제는 아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는 대부분 사람들에게 적용된다. 모르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p.125)

 

젊다면 젊은 나이인 41세에 죽음을 선택한 마르크. 어려서부터 소심하고 남들과 어울리는 걸 그닥 좋아하지 않았던 마르크가 불안장애와 우울증, 공감능력 결핍, 자기애성 성격장애와 같은 정신병을 해결하기 위해 술에 의존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그의 삶은 오직 술에 의해 조종되었거나 적어도 술로 인해 파괴되어 갔다. 혼자 육아를 도맡다시피 했던 아내가 그의 곁을 떠났고, 부모형제에게 거짓말을 일삼고 이따금 발작을 일으키는 등 주변의 어느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삶이 x 같다는 것, 그러다 결국엔 죽을 거라는 말이 옳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때 우리가 어깨에 짊어져야 할 짐에 관해서 그가 옳았다는 말이다. 내 동생이었지만 마지막 몇 년 동안 그는 짐이기도 했다. 짐이라고 쓰면서 짐처럼 바라보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느끼고, 그렇게 하면 부모님과 여동생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는 짐이었다." (p222~p.223)

 

마르크가 세상을 떠나던 날 부모님은 그의 목욕을 도왔고, 저자인 마르셀은 동생과 함께 담배를 피웠다. 그가 죽어 가는 중에는 함께 기도하고, 함께 울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는 건 알지만 그 죽음이 나나 사랑하는 가족에게 다가왔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자연사도 그럴진대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죽음은 또 어떠랴. 남겨진 사람들은 떠나보낸 가족에 대한 마음으로부터의 애도와 부채감으로 인해 남은 삶이 결코 평온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삶을 인내하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게 사실이다. 우리는 언제나 그 중간의 어정쩡한 위치에서 결론을 보류한 채 함구할 수밖에 없다.

 

"그가 죽고 나서 시가이 지날수록 그의 죽음이 더 비통하게 느껴진다. 나는 왜 더 많은 것을 해주지 못했을까? 동생을 알기 위해, 껍질을 깨고 나오게 하기 위해, 왜 좀 더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했더라도 그를 살려내지는 못했을 거라는 확신을 확실하게 갖고 잇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생각이 끊임없이 나를 괴롭힌다. 특히 이곳 스테인베이크에서 홀로 생각에 잠겨 우리의 어린 시절을 관통하여 달려갈 때면 더욱 괴롭다." (p.204)

 

법적으로 가장 먼저 안락사를 허용한 나라 네덜란드. 사실을 전하는 저널리스트로서 동생인 마르크가 선택한 안락사를 객관적으로 쫓아가고 있는 이 책은 죽음의 방식이나 안락사에 대한 찬반 논쟁보다는 오히려 과연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치료 불가능한 육체적인 질병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질병 역시 감당하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가 아닐까. 어쩌면 정신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더 심한 좌절감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신병을 앓고 있는 사람은 단지 육체적으로 죽어가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안락사를 선택한 당사자와 가족들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게 된다. 그러나 이미 자신의 삶이 완전히 파괴된 사람에게 남겨진 삶을 끝까지 살아내라고 강요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는 게 아닐까. 죽음을 권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동생의 안타까운 죽음을 하릴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마르셀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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