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애의 도시 이야기 - 12가지 '도시적' 콘셉트 김진애의 도시 3부작 1
김진애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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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김진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그녀의 괄괄한 목소리와 화통하고 시원시원한 성격이 아닐까 싶다. 물론 직접으로 대면한 적도 없고 그저 방송으로만 접하는 제한된 조건 속에서 주관적으로 유추하는 바이지만 나는 그렇게 느꼈고, 그녀를 방송에서 보았던 주변 사람들의 반응도 나와 비슷한 듯 보였다. 숨기는 게 없이 뭐든 다 드러낼 것 같은 그녀의 털털한 성격 탓에 공부에 있어서도, 일에 있어서도 허당기가 가득할 것처럼 보이지만 그녀의 말을 자세히 들어보면 웬걸 꼼꼼하기 이를 데 없고 철두철미한 성격이라는 걸 짐작케 한다. 30대에 미국 MIT 도시계획 박사 학위를 받은 것만 보아도 얼마나 치열하게 공부했을지 가늠케 되지만 말이다. 아무튼 겉으로만 보이는 그녀의 모습과 일과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드러나는 그녀의 성격이 이토록 천양지차로 다르다는 건 한 인간으로서 그녀가 갖는 매력이 차고 넘쳐난다는 걸 의미하며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람들과도 격의 없이 지낼 수 있는 친화력을 지닌 인물임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책을 쓰는 나의 태도 역시, '어떻게 도시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서 관심을 끌어내느냐? 어떻게 많은 사람들이 도시 이야기에 흥미를 가지게 만드느냐?'. 사실은 전문가로서 내 평생 일관한 태도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흥미를 가질수록 좋은 도시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도시 이야기에 담긴 사람 이야기가 얼마나 흥미로운지, 인간의 오욕칠정이 버무려진 도시 공간이 얼마나 즐거울 수 있는지, 때로는 얼마나 큰 재앙으로 치달을 수 있는지, 이야기 그 자체의 흥미만으로도 독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p.9 '프롤로그' 중에서)

 

이과 계통의 전문가가 쓴 책 치고 그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책을 다 읽어내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설사 다 읽었다 하더라도 읽은 후의 느낌이 재미있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거의 없다고 보아도 틀린 말은 아닐 듯싶다. 그러므로 학교 교재나 도서관에 비치하기 위한 특정 분야의 참고용 도서가 아니라면 이과 계통의 전문가가 일반인을 상대로 자신이 전공한 분야의 책을 내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오히려 열악한 환경을 딛고 자신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는가를 말하는 자기계발서를 쓰는 게 유리하다고 느끼고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그런 류의 책을 출간하곤 한다.

 

중언부언 서론이 길어지기는 했지만 결론적으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 책이 도시계획 전문가인 김진애 박사가 자신의 전공 분야를 다루면서도 일반인들이 읽어도 전혀 거부감이 들지 않을 정도의 가독력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스토리텔링으로서의 도시 이야기가 어떻게 설득력을 획득하는가? 하는 문제는 도시계획 전문가로서 저자 자신이 갖는 지식과 도시에 사는 일반 시민으로서의 다양한 경험과 다방면에 걸친 관심이 책의 곳곳에 녹아 있음으로 인해 책을 손에 든 독자들 역시 책을 쉽게 내려놓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다.

 

우리는 사실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해 그닥 관심이 없다.  관심이 없다 보니 물론 아는 바도  없고, 자세히 알아보고자 하는 의욕도 없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있듯이 저자는 일반인이 도시를 체계적으로 알기 위한 방안으로 '도시적 콘셉트'12가지로 분류하고 각각의 콘셉트에 대해 자신의 직접적인 경험과  책에서 읽었던 간접적인 경험을 추가함으로써 독자들의 흥미를 더하고 있다. 저자는 다만 책에 등장하는 도시 공간들에 관해서 상세하게 설명하지 못한 점을 한계로 지적하기도 하고, 독자들이  '도시적 콘셉트'에 익숙해짐으로써 도시를 보는 눈에 좀 더 구조적 시각이 갖춰지리라는 기대를 드러내기도 했다.

 

"우리는 어디에 있든 폴리스를 만들며 살 것이다. 폴리스는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더욱 도시적 삶의 지속을 가능케 하는 '도시적 콘셉트'를 익혀야 할 것이다. 익명성, 권력, 기억과 기록, 예찬, 대비, 스토리텔링, 코딩과 디코딩, 욕망과 탐욕, 부패에의 유혹, 현상과 구조, 돈과 표, 진화와 돌연변이, 이 콘셉트들을 우리의 도시에서 어떻게 해석하고 녹여내느냐에 따라 우리의 도시 이야기는 풍요로워지고 우리의 도시적 삶은 풍성해질 것이다." (p.309 '에필로그중에서)

 

최근에 나는 시골 여러 곳을 다니면서 그곳에 정착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곳의 토착민과 외지인들과의 갈등, 화합에 대해 듣고 인간관계의 다양한 면을 분석하고 있다. 어찌 보면 이는 장기간 우리가 도시에 체류하면서 시나브로 체득한 도시적 사고방식과  삶의 태도, 문화적 습성 등이 원래부터 그곳에서 나고 자랐던 시골 사람들의 그것들과 충돌함으로써 발생하는 문화 충돌의 성격이 짙음을 실감한다. 예컨대 자신의 사생활을 반드시 지키고자 하는 외지인과 너나들이를 하면서 가족처럼 지내는 시골 토착민들과의 사고방식은 꽤나 큰 것이어서 마을 구성원 중 외지인이 많은 동네는 도시인들처럼 서로 반목하면서 지내기도 하고, 반면 토착민이 많은 마을에서는 외지인이 제대로 정착을 하지 못해 채 3년을 넘기지 못하고 떠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게다가 시골에 이사를 온 외지인이 집을 대궐 같이 지어 놓고 원주민들을 무시하는 듯한 고압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경우 눈꼴이 시어서 못 봐주겠다고 말하는 어르신들도 여럿 만났었다.

 

우리는 이따금 도시 생활에 싫증이 나거나 도시인들과의 관계에서 지나친 스트레스를 받을라치면 입버릇처럼 '시골에나 가서 살까?' 하는 말을 내뱉곤 한다. 그러나 정작 시골살이가 얼마나 힘들다는 걸 몸소 체험한 사람들은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도시인들이 자신의 태도나 사고방식을 바꾸지 않는 한 시골살이는 결국 실패로 끝날 확률이 높다는 사실이다. <김진애의 도시 이야기> 역시 그와 같은 맥락이 담겨 있다. 자신이 사는 도시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주거 기간이 아무리 길어진들 영원한 이방인으로 지낼 수밖에 없다는 사실. 그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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