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만난 물고기
이찬혁 지음 / 수카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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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리는 '죽음'이라는 가장 완벽한 방식으로 세상과 결별하게 되겠지만 그 이전에 겪는 크고 작은 이별을 통해 '죽음'에 대한 공포와 완전한 이별에 대한 상실감을 누그러뜨릴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들곤 한다. 그렇다면 삶에서 겪는 의도하지 않았거나 의도된 이별은 과연 무슨 소용일까. 우리에게 어떤 의미, 어떤 철학적 깨우침을 주는 것일까.

 

불교 경전 법화경에는 만남과 헤어짐에 대한 명징한 대답이 기록되어 있다. '만난 사람은 헤어짐이 정해져 있고, 가버린 사람은 반드시 돌아온다.(會者定離去者必返)'는 이 말은 잔인할 정도로 냉정하게 들리지만 결국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음을 절감하게 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끝없이 새로운 만남을 꿈꾸고 새로운 이별에 번번이 절망하며 상처 받는다. 만남과 헤어짐의 무의미한 반복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혜택은 어쩌면 영혼의 성숙과 이를 통한 예술로의 승화가 아닐까 싶다. 그런 까닭에 예술은 개인의 고통을 자양분 삼아 탄생하는 고통의 산물이다.

 

"가수가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라면 예술가는 노래로 표현하는 사람이었다.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면 예술가는 그림으로 시위를 하는 사람이었다. 그들은 어쩌면 몽상가 혹은 혁명가. 자신이 선택한 종목보다 한 움큼 더 느끼고 한 발치 더 앞서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내가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찾고 그 길을 선택한다고 해도 그것은 특별하고 굉장한 일이 아닌, 이미 포화 직전의 공간을 비집고 들어가는 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p.63)

 

악동뮤지션 이찬혁의 첫 번째 소설 <물 만난 물고기> 역시 주인공 '선'이 '진짜 예술가가 되기 위해 떠난 여행길에서 매력적인 여인 '해야'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선아는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사람을 싫어한다는 해야의 자유에 대한 갈망과 틀에 얽매이지 않는 소원들에 공감하며 순간순간 떠오르는 노랫말을 기록하고, 선아 역시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음악가가 되기를, 진정한 예술가 되는 꿈을 꾼다. 얼룩말을 타고 횡단보도를 건너보고 싶다는 해야, 현실과 환상의 절묘한 조화를 통해 삶에서의 자유를 동경하는 해야와 어울리면서 선아 역시 세상의 틀에서 자유로워진 자신을 느낀다.

 

"나는 이야기를 듣다 잠이 든 해야를 조심스럽게 들어 올려 침실에 눕혀주었다. 곤히 잠겨 있던 그녀의 눈꺼풀이 눈에 띄었다. 그녀를 만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지 못했으면 난 이 마지막 여행 이후로 음악을 하지 않을 것이었다. 음악가보다 환경미화원이 더 멋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해야는 나의 음악에서 결핍된 자리를 정확히 채워주고 있었다. 그녀의 말과 생각은 나를 번뜩이게 만들었다." (p.114~p.115)

 

사실 이 소설은 전문 소설가의 작품에 비하면 독자의 기대에 한참이나 뒤진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이름을 들으면 알 만한 유명인들이 수필의 형식을 빌려 자신의 예술관을, 자신의 가치관을, 그리고 삶의 목표나 지난 삶에 대한 회상을 두서도 없이 써내려갔던 것과는 다르게 소설이라는, 일반인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분야에 도전함으로써 음악인으로서의 일탈과 자유를 향한 의지를 피력했다는 점에서 나는 이찬혁의 도전을 칭찬해주고 싶다.

 

"해야는 한 권의 책이에요. 그녀의 시작과 결말은 정해져 있는 거죠. 하지만 그녀가 그걸 의식하면서 따라가는 건 아니에요. 그녀가 순간순간 만들어나가는 게 곧 그녀의 이야기인 한편, 자신이 결정적인 순간에 어떠한 역할을 할지는 이미 결정이 끝났다는 거예요." (p.150)

 

어떤 소설이든 만남과 헤어짐을 통해 이야기는 만들어지고, 사랑과 이별, 욕망과 성취, 절제와 일탈 등 인간의 다양한 모습들을 그리며, 결국 한 편의 소설은 작가 내면에 존재하는 삶의 의미를 이끌어내곤 한다. 아무리 좋은 소설이라도 독자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아무리 하찮은 소설이라도 독자 모두가 싫어하지는 않는다. 결국 우리는 다양한 소설을 통해 자신의 전체적인 삶을 계획하고, 따라해 보고, 수정하며,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간다. 다만 우리에게 정답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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