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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와 잘 지내지 맙시다 - '셀프헬프 유튜버' 오마르의 아주 다양한 문제들
오마르 지음 / 팩토리나인 / 2019년 9월
평점 :
품절
우리가 살면서 겪는 대부분의 문제 앞에서 타인의 조언을 절실히 구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렇게 조언을 구하는 근본 이유는 조언자의 제안을 그대로 실천하겠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단지 내가 처한 상황과 지금 내가 겪는 고통을 누군가 알아주고 공감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조언은 단지 조언일 뿐 우리들 각자는 저마다의 생각이 있고, 스스로 판단을 하며, 여러 방법 중에서 조금이라도 나아 보이는 것을 선택하게 마련이니까 말이다.
과거에는 삶에서 직면하는 문제에 대한 조언을 우리 주변에서 구하곤 했다. 부모님이나 선생님, 학교 선배나 친구, 자신이 믿는 종교의 성직자 등 대상이 되는 사람은 매우 다양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오프라인에서의 만남을 꺼려하는 추세를 반영하듯 삶에 필요한 조언도 유튜브가 대신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소위 '유 선생'으로부터 모든 걸 배우고 익히는 '유 선생'의 제자이자 동급생이 된 셈이다. 나 역시 유튜브 동영상을 자주 보는 건 아니지만 누군가를 기다리는 무료한 시간이나 대중교통을 타고 먼 거리를 이동하는 경우에 이따금 보게 된다. 유튜브 동영상을 검색하다 보면 유튜브에 콘텐츠를 올리는 많은 크리에이터 중에는 전문적인 지식을 알려주는 사람도 있지만, 삶에서 부딪치는 문제나 개인적인 고민을 상담하고 조언을 해주는 사람들도 의외로 많다는 걸 알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고 그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걸까?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은 어쩌면 유튜브 크리에이터 오마르의 책 <모두와 잘 지내지 맙시다>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의 책을 다 읽은 후에야 비로소 그가 올린 유튜브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중단발 머리에 거뭇거뭇한 콧수염, 그닥 단정하지 않은 외모에 사뭇 반항적인 듯한 그의 말투는 전형적인 문제아처럼 보이지만 그래서인지 구독자는 제법 많은 듯 보였다.
"아무도 원하지 않는 걸 알려주고 싶어 한다는 건 무슨 뜻이냐면, 아는 게 없다는 뜻이다. 아무 문제가 없는 젊은이들을 문제 삼고 싶어 한다는 것이 무슨 뜻이냐면, 지한테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꼰대가 되는 걸 예방하는 방법은 사실 간단하다. 잘 살아야 한다. 물론 쉽지는 않다. 한 인간으로 스스로 만족할 만큼 제 몫을 하는 제대로 된 인간이 돼야 한다. 아니면 정말로 고장 안 인간, 어처구니없는 인간이 될 수 있다." (p.26)
총 3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그가 올린 100여 개 이상의 콘텐츠 중 수십만 구독자들이 공감하고 열광했던 콘텐츠부터 선별해 담았고, 영상에선 못했던 '보태기' 이야기를 담았다고 한다. 제一장 '나를 '불편'하게 하는 속 '편한' 사람들', 제二장 '연애도 '체력'이 필요해', 제三장 '안 만만해지기 연습'에서 느껴지는 바와 같이 우리의 삶에서 누구나 겪게 될 문제들, 이를테면 인간관계에서 오는 문제들, 사회생활에서 부딪히는 예절과 관습에 대한 문제, 연애와 자존심 등에 관련된 문제 등 인생 전체를 망칠 만큼 중대한 문제는 아니지만 사소하다고 무작정 방치하기에도 뭔가 찜찜한 문제들에 대해 저자는 시원하게 처방을 내린다.
"착하다는 말, 듣기 좋다.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도 달콤하지. 근데 그 말 듣자고 굳이 잘 맞지도 않는 사람들과 잘 지내고 열심히 잘해줄 필요는 없잖나. 그건 결구 자신을 갉아먹는 일이다. 그래, 내 옛 친구 B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 남들 비위 맞추느라 자신의 의사를 외면하지 말자. 좋은 이미지를 위안 삼으며 스트레스를 모르는 척하는 건 한계가 있다." (p.234)
나는 우리가 사는 인생에서 많은 가르침이나 교훈이 필요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가 자신의 삶에서 건지는 건 시간에 켜켜이 쌓은 경험의 축적일 뿐 매 순간 누군가의 가르침이나 조언에 의해 정해진 삶을 살아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누군가의 가르침이나 조언을 끝없이 갈구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아마도 그것은 타인과의 교감이나 공감을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한 공포를 조금쯤 누그러뜨릴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우리 모두가 이번 생이 처음이다. 그리고 2회차라고 해도 지금보다 딱히 더 현명한 모습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수학엔 정석이 있지만 인생은 그런 게 없으니까. 이건 수학의 정석을 3년 내내 베개로 썼던 사람이 쓴 삶의 참고서다. 참고서니까 그냥 참고만 하기를." (p.7 '프롤로그' 중에서)
어제 서초동 검찰청사 앞을 가득 메웠던 시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절대 권력에 저항하는 시민의 연대와 지지가 우리 사회를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데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나와 생각이 비슷한 사람을 만난다는 건 유튜브 크리에이터의 콘텐츠에 '좋아요'나 '구독'을 누르는 것보다 훨씬 더 귀찮고 복잡한 일이지만 그 불편함을 딛고 우리 모두를 밖으로 이끌어냈던 원동력은 정의와 평등에 대한 우리 모두의 갈망이었는지도 모른다. 해방 이후 단 한 차례도 이루지 못했던 그 가치를 위해 우리는 공포를 딛고 서로의 등을 토닥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장엄한 물결을 두려워하는 어떤 이들은 '정신 나간 이들'이나 '좌좀' 등으로 폄하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어쩌면 변화를 두려워하는 그들의 공포를 고스란히 드러낸 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은 불의를 지지하는 소수의 몇몇 사람들의 의사를 무시한 채 다수가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조금씩 움직이게 되어 있다. 그것이 역사의 순리임을 유튜브 크리에이터 '오마르'의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