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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 건축가 승효상의 수도원 순례
승효상 지음 / 돌베개 / 2019년 6월
평점 :
때로는 종교라는 굴레로 인해 거추장스러울 때가 있고, 또 때로는 종교라는 형식으로 인해 더욱 깊어지기도 한다. 책을 읽을 때도 다르지 않다. 내가 어떤 특정한 종교를 믿어서가 아니라 종교라는 엄숙성, 종교라는 절대적 삶의 기준이 때로는 짐처럼 여겨지기도 하고, 때로는 진리와 깨우침으로 가는 첩경인 양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그러므로 종교는 한 개인의 기분과 마음먹기에 따라서 가슴 답답한 굴레가 되기도 하고, 목표 지점과 방향을 일러주는 삶의 이정표가 되기도 한다. 그것은 단순히 가위바위보에서 뭘 낼지 결정하는 것처럼 개인의 가벼운 선택에 달려 있을 뿐 특정 종교를 믿고 안 믿고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불교를 믿는 사람이 성경을 읽으면 어떻고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 반야심경을 읽으면 또 어떻단 말인가. 삶의 깨우침에 도움이 된다면 형식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건축가 승효상의 수도원 순례기 <묵상> 역시 그와 같은 책이다. 종교를 떠나 자신이 평생 몸담고 정진했던 건축을 통해 진리에 이르고자 하는 그의 여정은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을 향하는 구도의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 보인다. 여행을 통해 그 장소가 가진 진실을 목도하고 현실로 돌아와 다시 일상을 살아갈 힘을 얻기 위해 작가는 혼자서, 때론 여럿이 길을 떠난다. 이번에 작가는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과 14일 동안 로마·아시시·제노바·파리 등을 돌아보았다. 불면에 시달리면서 유럽 곳곳에 산재한 수도원과 건축을 따라가는 여정은 차라리 어둠을 지새우는 '묵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경당에서 참배하고 올라오는 일행의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풀밭에서 하늘의 별을 보며 와인을 마실 계획인 모양이었다. 나는 오늘 내내 피곤을 느낀 까닭에 좋은 잠을 잘 수 있을 듯하여 슬그머니 일행을 비켜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차게 들어왔다. 창문을 닫고 침대에 꿇어앉아 오늘의 여정이 무사히 끝난 것에 감사하며 담요를 끌어당겨 잠을 청했다." (p.215)
책은 작가와 일행이 방문한 여러 수도원의 흑백 사진과 함께 건축가인 작가의 상세한 설명이 곁들여진다. 그러나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한 이 책의 가치는 다른 데 있다. 수도원의 역사와 작가의 사유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것은 물론 동행한 사람들에 대한 생생한 기록과 그날그날의 일정을 담백하게 담아냄으로써 여행기로서의 면모도 잃지 않는다. 다른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것은 일반인이 잘 알 수 없는 건축에 대한 지식을 충분히 습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이 건축을 수도 없이 베끼고 외웠으므로 누구보다 이 건축에 대해 자신이 있었고 모든 것을 다 안다고 말하고 다녔는데, 라 투레트 수도원을 처음 본 1991년 여름, 이 검은 공간으로 발을 디딘 순간 심장이 멎는 듯한 충격에 빠졌다. 내 상상은 관습이었고, 지식은 헛된 것이었다. 다른 세계였다. 이 말밖에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폭 12미터, 길이 42미터, 높이 12미터? 아니었다. 공간은 무한이었다. 암흑. 그 속을 뚫고 비수처럼 들어온 빛은 시간에 따라 천차만별의 조화를 부리며 암흑을 농락했다." (p.360)
한때 존재의 물음에 대한 답을 찾고자 신학을 공부하려 했었다는 작가는 건축을 통해 '빈자의 미학'을 세상에 소개한다. 그러므로 작가는 이 책에서 영성을 지닌 건축의 의미와 가치를 전하는 데 주력한다. 종교적 의미의 영성뿐만 아니라 상업적인 건축과 물질문명의 천박함에 대한 반발로 고요와 묵상, 영성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목적에서 쓰인 이 책의 유용성은 종교적 목적으로 수도원 기행을 꿈꾸는 이들에게 훌륭한 가이드북이 될 뿐만 아니라 물질문명의 번잡함에서 한발 비껴서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이들에겐 훌륭한 명상록이 될 수 있겠다.
"몸을 돌리면 흰 벽 사이 좁은 틈새가 있는데 순교자들이 죽어 거주하는 공간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그 안에는 그들의 아픈 이름이 적힌 벽면이 끝 모르게 뻗어 있고, 작은 방에는 절규가 벽을 후벼 파고 굳어버렸다. 이곳에 들어온 누구 하나 어떤 소리도 내지 않는다. 마음이 편할 리 없다. 이내 밖으로 나오면 백색 공간에 홀로 서게 되는데, 세상의 모든 사물이 멈춘 듯 고요하다. 기댈 곳 하나 없는 텅 빈 마당에 홀로 서서 어쩔 수 없이 받은 침묵의 세계. 침묵을 모르는 도시는 몰락을 통해 침묵을 찾는다고 했던가…. 세상과 격리된 이곳, 바로 파눔이다." (p.500)
세상은 이미 천민자본주의에 찌든 목회자들이 대부분의 교회를 장악하고 있다. 교회는 영성과 구원을 파는 가게로 변한 지 오래, 자신의 언변으로 미욱한 신도들을 유혹하고, 자신에게 속한 신도의 숫자가 교계의 영향력이자 권위가 되는 세상. 사랑침례교회 정 모 목사는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였으니 2차 대전의 전범국'이라며 '조선은 멸망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고, 국가권력에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헛소리를 아무 거리낌 없이 하지 않던가. 그들의 목적은 오직 자신의 권위와 돈. 그것을 쟁취할 수만 있다면 하느님의 진리도 언제든 내다 팔 수 있다는 자세가 아닌가. 해방 이후 성직자입네 폼을 잡고 온갖 분탕질을 일삼았던 목회자들이 어디 한둘일까마는 시절이 하 수상하니 바퀴벌레처럼 기어 나오는 것 같다. 더위에 인적이 끊긴 보도는 말매미 소리만 가득하다. 호젓한 곳을 찾아 묵상에 들고픈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