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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마지막 오랑캐
이영산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평점 :
금년 6월에 몽골을 향해 떠난 친구가 있다. 여행사를 하면서 한국과 몽골을 수시로 오가던 친구는 KOICA가 진행하는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지난달에 몽골을 향해 떠났다. 3년을 기한으로 낯설고 물선 이국땅에서 타국 생활을 시작한 친구는 이따금 sns를 통해 몽골의 사진이나 소식을 전하고는 있지만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왠지 쓸쓸함이 묻어나는 느낌이다. 몽골 생활을 시작한 친구를 생각하며 읽었던 책이 이영산이 쓴 <지상의 마지막 오랑캐>이다.
"오랑캐로 태어나 오랑캐의 삶을 살아온 비지아는 만난 지 이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틈만 나면 몽골 초원과 알타이산을 노래한다. 어느 때는 학자 같고 어느 때는 악동 같지만, 언제나 초원을 가까이 느끼고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는 삶을 꿈꾸는 사내. 이 책은 내가 만나본 최고의 사내, 알타이산의 마지막 오랑캐와 지낸 행복했던 초원 이야기이다." (p.27)
이 책은 지상의 마지막 오랑캐로 살아온 '비지아'의 눈을 통해 몽골의 문화 전반을 말하고 있다. 물론 몽골의 자연환경이나 문화에 대해 소개하는 글이나 영상 등 몽골을 발견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는 이전에도 많았고 앞으로도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제삼자의 눈으로 그 나라의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모든 것은커녕 반의 반도 알기 어렵다는 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제삼자의 시각은 늘 신기함과 호기심의 충족일 뿐 깊고 장구한 문화의 흐름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는 것이다.
<지상의 마지막 오랑캐>는 제목에서 오는 낯선 느낌만 아니라면 꽤나 좋은 책이다. 작가의 유려한 문장도 문장이려니와 오리앙카이족 출신의 비지아로부터 전해들은 그와 그의 친지들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몽골 유목민의 출생에서부터 성장, 사회생활, 결혼과 장례풍습에 이르기까지 총 아홉 개의 장에서 유목민의 일대기를 보여준다. 게다가 저자와 비지아가 함께 여행하며 찍은 몽골의 풍경 사진 역시 이국적인 느낌을 더한다.
사실 한 민족의 문화적 성숙도는 그 민족이 가진 물질적 부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삶과 죽음에 대한 민족 전체의 통일된 견해가 존재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그 등급이 나뉘는 게 아닌가.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운 사람일수록 바람에 새기는 거'라는 유목민의 풍장(風葬) 풍습은 '바람 속에 살던 삶 그대로 바람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라는 그들의 수준 높은 의식 수준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유목민들은 조상의 묘를 찾아, 부모의 고향을 찾아 천릿길을 떠나지 않는다. 그들에게 과거는 지나간 시간에 불과하다. 과거는 흘러갔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초지를 찾고, 새로운 방목을 시작해야 한다. 삶도 죽음도 전쟁의 승리도 실패도 모두 그렇다. 과거를 버리지 못하면 분노와 복수심에 발목이 잡혀 한 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알타이산이 이동한다는 것, 마음속에 성산을 두고 산다는 것은 고향을 몸으로 찾지 않고 마음으로 찾는다는 뜻이다. 유목민의 고향은 바람 속이다." (p.325)
'시간관념이 철저하면서도 시간을 붙잡지 않는 것이 유목민의 자세'라고 저자는 쓰고 있다. 그러므로 유목민은 생일도 없고, 그것을 기념하는 잔치도 없으며, 시간은 그렇게 쌓이지 않고 흘러가는 것이라고 믿는다. 노인이 이삿길에 함께하지 못할 정도의 나이가 되면, 죽음을 앞둔 노인 앞에 잘 차려진 음식상을 내어놓고 잔치를 벌인다. 술자리가 무르익을 무렵, 잔치상의 머리맡에 정좌를 하고 앉은 노인에게 양의 엉덩이 비계를 입에 넣는다. 그리고 걸음마를 막 뗀 어린 손자가 입에 문 양의 넓적다리뼈를 툭 쳐서 비곗덩어리를 목구멍 안으로 밀어 넣으면 비계가 숨길을 막아 노인은 순식간에 죽음을 맞는다고 한다. 유목민으로 살았던 한 사람의 삶은 시간이 지배하지 않는 다른 세상으로 그렇게 이동하는 것이다.
저자는 비지아와의 이별에서 자신의 소망을 적고 있다. '신에게서 자유를 찾아오고, 가난에서 돈을 얻었으며, 질병에서 건강을 가져온 인간이, 그리하여 스스로 신이 돼버린 인간이 배타적인 시선으로 그를 보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고. 우리는 대개 우리와 다를 수밖에 없는 타민족의 문화를 그 민족의 절대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문화에 견주어 얼마나 다른지, 얼마나 미개한지, 얼마나 무지몽매한지를 따지고 그 문화를 배척하거나 우리 문화의 아래에 두려는 경향이 있다. 그런 까닭에 타민족의 문화를 소개할 때는 으레 우리 문화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것, 과학에 근거하지 않은 주술적인 것 등을 우선적으로 말한다. 그 저변에는 독자들의 일시적인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그럼으로써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지속적인 관심을 유도하기 위한 상업적 의도가 깔려 있다. <지상의 마지막 오랑캐>에서는 저자의 그런 의도가 엿보이지 않아 좋았다. 얼마 전에 보내온 친구의 소식은 나담 축제로 도시가 조용하다고 했다. 다들 짐을 싸서 축제가 열리는 시골의 초원으로 떠난 까닭에 혼자서 사무실을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귓가에도 초원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소리가 들려오겠지. '살면서 듣게 될까/언젠가는 바람의 소리를'로 시작되는 가수 조용필의 노래 '바람의 노래'가 생각나는 저녁. 몽골로 떠난 친구도 그곳에서 한 3년쯤 살다 보면 바람 속에 살다간 많은 사람들의 음성을 듣게 될까. 한 점 바람도 없었던 어느 여름날 몽골로 떠난 친구를 생각하며 <지상의 마지막 오랑캐>를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