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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의 블랙홀을 건너는 크리에이터를 위한 안내서
라이언 홀리데이 지음, 유정식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건 언제나 창작의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걸 의미한다. 기존에는 없던 것, 있었지만 좀 더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창작의 본능을 지닌 가능성의 존재인 동시에 창조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창작을 밥벌이나 생계의 수단으로 삼지 않는 한 창작은 그 자체로서 삶의 즐거움을 제공하는 유희의 일종이거나 기쁨의 원천이 될 수도 있다. 잠을 자거나 숨을 쉬는 게 지겹지 않은 것처럼 생각 자체가 지겨울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창작을 업으로 삼는 순간 그것은 결코 기쁨의 원천이 될 수는 없다. 창작자 개인의 욕심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재미있는 소설도 그것이 교과서에 수록되는 순간 학생들로부터 소설의 재미를 몽땅 빼앗아가는 것처럼 창작이 업으로 전환되는 순간 기쁨보다는 고단함이 더 깊게 파고드는 것이다. '책을 쓰는 일은 마치 오랜 지병을 앓듯이 지긋지긋하고 진을 빼는 고통스러운 작업'이라고 했던 조지 오웰의 심정이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만약 당신이 경계를 느슨히 한다면, 훌륭한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갈망과 욕구는 그 일을 해낼 수 있다는 믿음과 짝을 이루며 당신을 착각과 자만심에 쉽게 빠뜨릴 수 있다. 불안하고 두려워할수록,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작품을 다시 개선하고 수정하고자 하는 열망이 높아질수록 프로젝트는 훌륭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든 당신의 창작물로 인해 조금이라도 전율을 느끼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당신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p.93)
<창작의 블랙홀을 건너는 크리에이터를 위한 안내서>를 쓴 라이언 홀리데이는 창작이 단순히 개인의 선천적 재능이나 우연의 산물이 아닌, 시간과 노력의 산물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개인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창작이 놀이나 취미의 수준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비즈니스적인 관점에서 '불멸의' 또는 '불후의'와 같은 수식어를 달기 위해서는 창작자의 시간과 노력이 투자되어야 함은 물론 그와 더불어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대학을 자퇴하고 다양한 분야의 '창작 산업'을 두루 경험했던 저자는 현실에서 좋은 작품은 어떻게 잘 만들어내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잘 홍보하고 잘 판매할 수 있는지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작가 중의 작가라 말할 수 있는 블라디미르 나보코프Vladimir Nabokov는 이렇게 말했다. "문학은 재미일 뿐만 아니라 비즈니스이기도 하다." 비즈니스에서 생존하려면 다른 사람들과 당신 자신이 돈을 가져다주도록 해야 한다. 즉 고객을 만족시켜야 한다. 그 반대를 믿는다면 비즈니스는 망하고 만다." (p.151~p.152)
저자는 모든 창작에 있어 작품의 목적을 명확히 하고 목표 대상(고객)이 누구인지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목표 대상에 맞게 미세한 조정과 개선 작업을 반복하는 건 좋은 결과물을 얻기 위한 지난한 작업의 과정이다. 장난거리이자 오락의 수준에서 그치는 많은 아마추어 창작자들이 있는 반면 '불멸의' 작품을 창조하는 위대한 크리에이터가 드문 까닭은 대부분의 창작자들이 그와 같은 복잡하고 힘든 과정을 견뎌내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세상이 작품의 진가를 즉각 알아보느냐 그렇지 않으냐 하는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크리에이터로서 마땅히 들여야 할 시간과 노력은 그 자체로서 가치가 높은 일이다.
책은 총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의 두 장은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창작물을 '만드는' 태도와 방법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좋은 창작물을 만들었다고 하여 그 결과물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지는 않는다. 말하자면 어떻게 해야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에게 창작자의 결과물을 도달시킬 수 있을지 하는 문제는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인 셈이다. 저자는 뒤의 두 장에서 '시장에서 창작물이 오래 팔리도록 하는 방법'과 '타깃이 되는 소비자군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에 대하여 알려준다.
'타이탄의 도구들'의 저자 팀 해리스와 '과감한 선택'을 쓴 제임스 알투처가 어떻게 자신의 책들을 성공시켰는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파울로 코엘료가 감행했던 마케팅 전략, 도요타가 오랫동안 사랑받는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원칙, 록 밴드 '아이언 메이든'이 세계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 등 풍부한 사례들이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흥미를 끈다.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광고 캠페인이 되려면 두 개의 핵심요소를 기억해야 한다. 고객의 '생애 가치Lifetime Value, LTV'를 알아야 하고 '행동당 비용Cost per Acquisition, CPA'을 파악해야 한다. 고객 생애 가치란 결국 고객이 당신의 고객으로 남아 있는 동안 발생하는 수익이 얼마나 되는가이고, 행동당 비용은 클릭시 비용, 반응제 광고 등으로도 불리는데 간단히 말하면 광고를 통해 고객을 확보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의미한다. 이 두 가지 요소가 포함된 방정식에서 크리에이터로서의 자의식(예를 들어 "매일 아침 신문 광고에 내 작품이 나오는 걸 보는 것이 너무 좋아!"라는 생각)을 없애면 남는 것은 그런 방정식의 작동 여부가 전부다." (p.234)
우리는 종종 제품의 생산이나 특정 창작물의 제작에 있어 잘만 만들면 알아서 잘 팔리겠거니 생각하곤 한다. 말하자면 좋은 작품이 좋은 판매로 직결된다는 강한 믿음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좋은 창작물을 세상에 내놓았지만 지독한 판매 부진으로 인하여 망하는 경우는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저자는 책에서 '영원불멸의 걸작은 불멸의 마케팅을 필요로 한다.'고 썼다. 최상의 전략을 찾고 효과가 이어지는 한 그 전략에 투자해야 하는 이유이다.
저자는 책에서 크리에이터 자신의 능력과 노력, 마케팅 전략 등을 말하면서 마지막으로 '행운'에 대해 짧게 말하고 있다. 우리가 통제 가능하지 않은 분야로서의 '행운'은 일회성이 아닌 '영원불멸의 작품'을 만드는 데 있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요소라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것은 크리에이터로서의 창작과 판매에 전력을 다한 후에 기대할 수 있는 부차적인 문제라고 볼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은 그럴 때 쓰는 말일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