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로 쓰기 - 김훈 산문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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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는 모 제약회사의 연구원으로 근무하는 지인 한 분을 만났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말하자면 범생이 스타일의 인물인지라 여유 시간을 내기도 어렵고 더러 시간이 난다 할지라도 부족한 잠을 자거나 공부에 빠져드는 통에 친한 사람도 그의 얼굴 한 번 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닌데 어쩐 일인지 먼저 전화까지 주면서 만나자고 하니 만사 제쳐두고 나갔던 것이다. 혹시나 본인의 신변에 이상이 있거나 가족 중 누군가의 건강이 안 좋아졌다거나 하는 불길한 소식이 있는 건 아닌지 내 나이 또래에 으레 있음 직한 걱정이 앞섰던 것도 사실이지만 얼굴 한 번 보는 게 나라님 만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사람이 만나자고 전화까지 준 마당에 버선발로 나가지는 못할망정 다음에 보자 거절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반가운 인사와 함께 그간의 소식을 캐묻다 보니 인사만으로도 시간이 훌쩍 지났었다. 혹시나 있을지도 모르는 불길한 소식을 듣는 게 무서워서 일부러 말을 빙빙 돌렸는지도 모른다. 무슨 안 좋은 소식이라도 있는 건 아니냐고 어렵게 물었더니 그런 거 없다면서 실없이 웃었다. 나는 그제야 졸였던 가슴을 쓸어내리고 여유로운 담소를 나눌 수 있었다. 나이가 젊었을 적에는 몰랐는데 해가 갈수록 예전에 가깝게 지내던 사람이 보고 싶어 지더라는 그 사람의 변명 아닌 변명을 듣고 있노라니 그의 눈가에 잡힌 주름이 도드라져 보였다. 카페의 유리창을 통해 비스듬히 스며드는 오후의 여린 햇살에 비친 그의 표정은 한결 여유롭고 편안해 보였다. 그는 나에게 자신이 연구하는 분야에 대해 꽤나 자세히 들려주었다. 호르몬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는 그는 현대인의 질병 중 상당 부분이 호르몬 불균형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개개인의 적정 호르몬 수치가 다 다르고 각각의 적정 호르몬 비율도 다 다른 까닭에 표준화를 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결국 과학이 극도로 발달한 현대에 있어서도 호르몬 분야는 밝혀진 게 그닥 많지 않을뿐더러 원인을 알아도 치료 방법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그는 농담처럼 "결국 우리가 건강하게 제 수명대로 살 수 있는 건 단지 우연일 뿐이야."라고 말했다. 과학자의 말로는 적절치 않을 수도 있는...

 

"사회 공공성의 문제로 불행을 당한 사람들을 재수없는 소수 the unlucky few로 몰아서 고립시키는 공작은 '안보와 경제'가 문제를 회피하는 오래된 방식인데, 세월호 참사에도 예외 없이 적용되었다. 그래서 살아 있는 사람들의 삶도 어쩌다가 재수 좋아서 안 죽고 남아 있는 꼴이 되었고, 삶은 견딜 수 없이 무의미한 우연의 장난으로 느껴졌다." (p.96 '동거차도의 냉잇국' 중에서)

 

여전히 원고지에 육필로 원고를 쓰고 있다는 김훈은 자신의 산문집 <연필로 쓰기>에서 위와 같이 말했다. 삶이 우연처럼 느껴진다는 노작가와 우리가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 수 있었던 것도 단지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는 어느 과학자의 말은 한 귀로 듣고 다른 한 귀로 흘릴 수 있는 허술한 말로 들리지 않았다.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불현듯 깨닫게 되는 것이 나이라면, 우연처럼 쉽게 맞을 수 있는 것 또한 죽음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나는 삶을 구성하는 여러 파편들, 스쳐지나가는 것들, 하찮고 사소한 것들, 날마다 부딪치는 것들에 대하여 말하려 한다. 생활의 질감과 사물의 구체성을 확보하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았다." ('알림' 중에서)

 

같은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은 대개가 비슷하다. 생각이 모아지는 지점도, 나이가 들어 주름이 지는 모습도 종국에는 한 지점에서 수렴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각기 다른 직업으로 살았던 사람들이 비슷한 모습으로 늙어간다는 건 인생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묘미가 아닐 수 없다. 어느 정도의 나이대가 되면 자신과 비슷한 생각이나 비슷한 모습의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건 곧 닥칠 죽음에 대한 공포를 적당히 덜어주는 역할을 하는 게 아닌가. 그 과정에서 자신이 겪었던 삶의 기억들은 저마다 다를지언정 많은 이들이 죽음이라는 소실점을 향해 한없이 수렴되는 게 인생의 경이가 아니던가.

 

"내 고향의 한양도성 둘레에는 거대한 판자촌이 들어서 있었다. 내가 살던 동네는 이 마을보다 지대가 낮은 평지였다. 초기에 이 마을에 들어온 사람들은 땅을 파서 움막을 지었고, 판잣집, 천막들은 그후에 들어섰다. 판잣집들은 사람들의 출신지를 따라서 고향별로 구획을 이루었다." (p.209 '귀향' 중에서)

 

새삼 달라질 것도 없는 일상사를 작가는 자신의 오래전 경험과 기억을 밑천 삼아 부드럽게 써내려가고 있다. 그것들은 때로는 사회 일반에 맞닿아 있기도 하고, 때로는 한국 정치의 대척점에 서기도 하고, 또 때로는 순전히 작가 자신의 경험 속에서 머물기도 한다. 작가의 저서 <칼의 노래>에 미처 담을 수 없었던 '인간 이순신'의 내면에 대한 이야기와 박정희와 함께 들어온 비틀스의 음악 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작가의 신작이 나올 때마다 다투어 읽어왔던 나로서는 작가의 연필심이 점차 뭉툭해지고 있구나, 하는 소회를 지울 수가 없다. 정신이나 글이 무뎌졌다는 게 아니라 정곡을 찌르는 듯한 날카로움, 핵심을 파고들기 위한 치열한 노력, 언어의 적확성과 완벽한 문장의 추구 등 빈틈이 엿보이지 않았던 지난날의 글쓰기 행태로 인해 독자들로 하여금 숨이 턱턱 막히게 했던 모습은 그의 책에서 더는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나이가 들어도 빈틈을 보이지 않는다는 건 스스로의 부족함을 고백하는 일이다. '여유'와 '비어 있음'이 노인의 특권이다. 작가도 이제 그 특권을 누릴 만한 자격이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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