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걸작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 문학동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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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작품을 꾸준히 읽어온 독자라면 누구나 쉽게 감지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의 소설에서는 언제나 치열함이 엿보이지만 에세이에서는 비교적 자유롭게 풀어져 있는 작가의 면모를 보게 된다는 사실이다. 소설 쓰기에 집중하느라 바짝 열이 올랐던 몸을 설렁설렁 에세이나 쓰면서 쉬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작가가 에세이를 쓸 때는 성의 없이 '설렁설렁' 쓰는 건 아니겠지만 말이다. 하루키의 작품을 좋아하는 팬의 입장에 있는 나로서는 작가가 때로는 '설렁설렁' 글을 쓰는 것도 괜찮겠다 싶기는 하지만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비판적인 시각에서 하루키의 작품을 대하는 독자라면 그와 같은 사실이 결코 용납이 되지 않는다거나 다시는 그의 작품을 읽지 않겠다고 선언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하루키의 에세이를 팬의 입장에서 읽는 까닭에 책을 읽을 때마다 자유롭고 편안한 느낌을 받곤 한다. 그러므로 하루키의 작품에 대한 나의 리뷰는 어쩌면 편파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항상 하게 된다. 어쩔 수 없이 말이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다시는 하루키의 팬이 되지 않겠다고 공공연히 밝힐 수도 없는 노릇이니 여간 난감한 게 아니다.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이라는 다소 특이한 제목의 에세이는 작가가 1983년부터 약 오 년에 걸쳐 쓴 것으로 '하이패션'이라는 잡지에 게재했던 내용을 담고 있다. 작가의 나이로는 서른넷에서 서른아홉까지의 시기인데 작가가 막 유명세를 타던 시기와 겹치는 까닭에 이사도 잦고 매우 바빴던 시기이기도 했다.

 

 

"내 의견을 덧붙이자면, 별 볼일 없는 인간은 별 볼일 없는 일로 기뻐하는 동시에 별 볼일 없는 일로 화를 내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원칙적으로 묘한 일에 기뻐하고 감격하는 사람을 그리 신용하지 않는다. 가령 '아무래도 이건 아니잖아, 잘못짚은 거 같은데' 싶을 정도로 누군가가 나를 열심히 칭찬해준다고 치자.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바로 이런 타입이다. 칭찬하는 거니 뭐 어떠랴 하다보면, 또 반드시 영문을 알 수 없는 일로 화를 내기 시작한다. 나로서는 완전한 소모다. 그 사람이 'little mind'든 아니든 'little things'에 기뻐하는 사람은 굳이 상대하지 않는다-이게 인생의 철칙이다. 이렇게 말하고서 내가 'little things'에 기뻐하면 우스운 꼴이겠지만." (p.117)

 

 

이 책에서도 작가는 자신의 이런저런 경험담과 더불어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 레이먼드 챈들러, 트루먼 커포티에 대해 언급한다. 글쓰기 방식에 대해서는 챈들러를, 재테크에는 젬병인 자신과 스콧 피츠제럴드의 공통점을, 그럼에도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글을 쓰고 있는 자신이 조금 더 낫지 않은가 하는 생각까지. 물론 이 책 역시 가벼운 신변잡기를 다룬 에세이인 까닭에 지금은 사라진 광고나 오래전에 읽었던 신문기사, 좋아하는 음악이나 영화 등 다양한 주제의 글이 실려 있다.

 

 

"가난은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나는 때로 생각한다. 이런 말을 하면 노인네 같다며 싫어할 테지만, 옛날(이십 년 전의) 여자들은 "가난한 건 절대 싫다"는 말을 당당하게 하지 못했다. 적어도 내 주위에 있는 여자들은 그랬다. 그녀들에게는 돈보다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욕구가 앞섰던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 여자들이 있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여자도 꽤 많았다. 외제차가 있는 남자랑만 데이트하는 여자애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런 여자는 어디까지나 극소수였고, 적어도 나와는 별 인연이 없었다. 내 주위의 보통 여자들은 차가 없거나 돈이 없어도 별로 개의치 않았다. 데이트 때도 내게 돈이 없으면 상대가 냈다. 그런 일은 수치도 뭣도 아니었다." (p.195)

 

 

책에 수록된 여러 꼭지의 글을 소개하면서도 정작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의 소개는 무척이나 조심스럽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 글이 하루키를 향한 비난의 빌미가 되거나 '내 그럴 줄 알았다'는 식의 하루키 작품 전체에 대한 매도나 폄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 실린 그의 글에 의하면 하루키가 십 년 동안 품어온 꿈이 쌍둥이 여자친구를 갖는 것이란다. 설명에 따르자면 그가 본 영화 <하이스쿨Almost Summer>은 캘리포니아 고등학생들의 생활을 그린 청춘영화인데, 영화의 마지막 졸업 기념 파티 장면에서 남자 주인공이 재킷을 멋지게 차려입고 양옆에 쌍둥이 여학생을 거느리고 나타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렇게나 멋져 보였다는 것이다. 성적인 영역으로 확대할 필요도 없이 그저 특별한 경험으로서 쌍둥이 자매와 파티에 가고 싶을 뿐이라는 것. 나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 없으니 뭐라 거들거나 덧붙일 말은 없지만 아무튼 하루키는 그런 꿈을 꾸었다는 것.

 

 

내가 하루키의 소설뿐만 아니라 그의 에세이까지 빼놓지 않고 읽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한 작가의 작품 세계를 알기 위해서는 적어도 그가 쓴 작품 몇 권쯤은 읽어봐야 하겠지만 그보다는 책을 읽는 재미가 우선인 경우가 많다. 학술적 목적도 없는데 굳이 어떤 작가의 작품 성향까지 알아야 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뭐니 뭐니 해도 하루키의 저서는 독자들로 하여금 읽는 재미를 느끼게 한다. 그리고 책을 읽은 후에는 '이 사람은 정말 독특한걸.'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게 마련이다. 말하자면 나와 어떤 공통점이 있어서 좋아하는 게 아니라 나와 다르기 때문에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은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 머리로는 잘 알면서도 가슴으로 느껴지는 경우는 흔치 않다는 얘기다. 우리 주변에는 나와 다른 사람보다는 비슷한 사람이 더 많은 까닭이다. 이놈 저놈 하면서 욕할 대상만 아니라면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사람이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느낌은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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