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테라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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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오쿠다 히데오가 있다면 한국에는 박민규가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적어도 <공중그네>를 썼던 오쿠다 히데오가 살짝 정신이 나갔는지 <남쪽으로 튀어>버린 후 생각지도 못한 추리소설로 방향을 선회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변절이 유행하던 시기였고, 범람하던 변절의 유혹으로부터 작가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박민규 작가만큼은 작가 나름의 지조(?)를 지키며 <지구 영웅전설>을 들려주는가 하면 어느 날에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그러나 박민규의 본심은 늘 프란츠 카프카로 향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카스테라>를 먹으며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라고 인사하는 것처럼.

 

박민규의 소설집 <카스테라>에 실린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는 2004년 소설가와 문학평론가가 뽑은 '가장 좋은 소설'에 선정된 작품이기도 하다. 박민규의 유머와 상상력이 스토리에 잘 녹아든 이 소설에서 작가는 평생을 자신만의 계산기대로 살 수밖에 없는 소시민의 삶을 잘 그려내고 있다. 수학이 필요할지도 모르는 일부 특권층을 제외하면 평생을 자신만의 산수로 주먹구구식 계산을 하며 살아가면서도 영원히 다가오지 않을 희망의 신기루를 끝없이 기다린 탓에 기린처럼 목이 길어진 우리의 자화상을 소설 속에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희망에 중독된 우리의 목도 어쩌면 미래를 향해 45도쯤 기울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에겐 누구나 자신만의 산수가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것을 발견하게 된다.'고 단언하는 작가의 냉정한 현실인식이 추위에 언 독자의 뺨을 후려치는 듯한 소설.

 

"미안하구나. 아버지는 그렇게 얘기했지만, 아버지, 이건 나의 산수예요 라고 나는 생각했다. 정기적금 정기적금, 또 한 통의 자유적금. 시급 천오백원과 천원이 따로따로 쌓여가는 통장들을 생각하면, 세상에 힘든 일은 없었다. 말할 것 같으면, 내 주변은 주로 그랬다." (p.73)

 

소설 속의 '나'(승일)는 상고(정보고)에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하는 착실한 학생이다. 말하자면 그렇다. 코딱지만 한 작은 회사에 다니는 아버지와 상가건물에서 청소일을 하는 어머니 그리고 건강이 좋지 않은 할머니와 함께 사는 '나'는 중학생 시절의 어느 날 아버지의 회사에 도시락을 갖다 주면서 자신의 현실을 깨닫게 되고, 그날부터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한다. 편의점 알바에서부터 주유소 알바, 신문돌리기까지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뺑뺑이를 돌지만 형편은 나아지지 않는다. 이런저런 알바를 전전하던 '나'에게 그나마 시급이 좋은 아르바이트 자리를 소개하던 형을 '나'는 '코치'라고 부르며 따르는데, 어느 날 '코치형'이 시급이 좋은 지하철 푸시맨 일자리를 소개한다. '나'는 그렇게 시급은 좋지만 노동 강도가 높은 푸시맨이 되었고, 방학이 아닌 평일에도 담임 선생님의 허락 하에 푸시맨 일을 계속한다.

 

"지금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승객 여러분들은 안전선 밖으로 물러나주셔야겠지만, 그게 될 리가 없는 것이다. 승객들은 모두 전철을 타야 하고, 전철엔 이미 탈 자리가 없다. 타지 않으면 늦는다. 신체의 안전선은 이곳이지만, 삶의 안전선은 전철 속이다. 당신이라면, 어떤 곳을 택하겠는가." (p.74)

 

가을이 시작되던 어느 날 청소일을 하던 어머니가 쓰러지고, 아버지의 회사 사정마저 어려워지자 '나'는 어머니의 병실에서 눈동자가 잿빛이 된 아버지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얘기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그날도 '나'는 출근 시간에 지하철을 타야 하는 아버지를 밀어드렸다. 아버지가 사라진 후 '나'는 아버지의 회사에서 밀렸던 두 달분의 월급을 받고, 할머니를 요양원에 보내고, 어머니를 간호한다. '나'는 여전히 삶의 안전선 안쪽으로 사람들을 밀고 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찾아온다. '나'의 집은 무사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유사한 산수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숨이 트인다. 여느 때처럼 푸시맨 알바를 끝냈는데, 기린으로 변한 아버지를 보게 된다.

 

"나는 혼자 울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자꾸만 눈물이 나오는 것이었다. 아버지... 곧장 나는 가슴속의 말을 꺼냈고, 기린의 무릎 위에 내 손을 올려놓았다. 떨리는 손바닥을 통해, 손으로 밀어본 사람이 기억하는 양복의 질감이 그대로 느껴져왔다." (p.93)

 

어느 날 갑자기 흉측한 벌레로 변신한 그레고르 잠자처럼 소설 속 '나'의 아버지 역시 기린으로 변해 있다. 오지 않을 희망을 평생 기다려온 탓에 종국에는 우리 모두가 기린으로 변하는 것은 아닐까. 때 이른 더위로 인해 정신이 혼미해지는 오후, 나는 오늘도 나만의 산수를 하며 하루를 견디고 있다. '논픽션은 현실을 픽션화하는 작업이고, 픽션은 허구를 현실화하는 작업'이라는데 나의 삶은 과연 픽션인가 논픽션인가. 산수에 지친 나는 픽션과 논픽션의 논쟁에 휘말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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