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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 - 신달자 에세이
신달자 지음 / 민음사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동이 트기 전의 아침 기온은 정신이 번쩍 들 만큼 낮았다. 마른 갈잎의 버석거림처럼 메마른 바람이 불었다. 짧은 연휴의 뒤끝, 인적이 없는 새벽 등산로는 고요했다. 무겁게 내려앉은 침묵을 깨트리며 간간이 이름도 모르는 산새가 울었다. '그래. 옛날 같으면 보리가 익어가는 이맘때를 보릿가을이라고 했을 테지. 나날이 기온을 높여가며 순하게 여름으로 가던 계절이 갑자기 한 계절을 건너뛰어 곧장 가을이라도 된 듯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한 바람이 불고 낮에는 마른 햇살이 내리쬐는 날들이 아주 잠시 이어지는 게지. 마치 보리를 수확해야 할 시기를 하늘이 알아서 점지해 주려는 것처럼 말이야.' 나는 오늘 아침에 그런 생각을 하며 걸었다. '그래도 시간은 정말 순하게 흘러가는 거야. 예측할 수 없는 일탈이란 게 고작 이런 것이니 말이야. 그에 비하면 우리들 삶은 얼마나 변화무쌍한 것인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어제 읽은 신달자의 산문집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를 떠올렸다.
'나는 결혼을 하면서 기가 죽었고 결혼을 하면서 엄청난 피해를 입은 사람이지. 그게 뭐야. 왜 그런 일이 있어! 그것은 한마디로 보잘것없는 맹목적 감상주의에 휩쓸려 내가 누군가를 구원해 주어야 한다는 값싼 보호 의식이 만들어 낸 건방진 작품이었지. 그러나 나는 안다. 나는 불바다의 결혼 생활을 지나온 사람이지만 결혼은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화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데는 변함이 없어." (p.34)
시인의 에세이는 가볍거나 아름답지 않다. 글이 아니라 차라리 울부짖음이나 넋두리에 가깝다. 경제학 교수였던 남편이 뇌졸중으로 쓰러졌을 때 시인의 나이 35세, 그녀가 책임져야 할 사람은 혼수상태였던 남편 말고도 아이 셋과 여든에 가까운 시어머니가 있었다. 혼신을 다한 간호 덕분에 남편은 겨우 살려냈지만 반신불수의 몸이었고, 그때부터 시인은 남편의 신경질을 받아주며 하루 두 번 목욕을 시키고, 약과 음식을 대령하며 온갖 투정을 군말 없이 들어주어야 했다. 시인은 남편이 깨어난 지 딱 3년 만에 남편이 살아난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셔 준다면 조금은 짐이 가벼울 것 같다'는 고백은 시인의 인간성을 의심하기보다는 고통의 크기를 가늠케 한다.
지금은 절판이 된 이 책을 나는 적어도 3번 이상을 읽은 듯하다. 생각날 때마다 되는 대로 펼쳐 읽었던 것까지 친다면 그보다 배는 늘어나겠지만 말이다. 남편이 호전될 무렵 시어머니가 척추를 다쳐 병석에 누웠다. 시인은 '여름밤 벼락을 맞을까 봐 겁이 났을 만큼 시어머니를 미워했다'고 회상한다. 그러나 막상 시어머니의 죽음 앞에서는 '한 여자의 슬픈 죽음'이 안타까워 눈물을 쏟는다. 짐스럽기만 했던 남편이 2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뇌졸중 후유증을 앓다가 떠난 뒤에도 그의 빈자리를 아쉬워했다.
"희수야. 다시 말하지만 인생이란 너무 눈부시게 살 필요는 없다. 오히려 눈에 잘 뜨이지 않지만 내용이 들어 있는 삶을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그것은 결단코 남과의 비교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느끼고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이야. 그렇게 스스로를 만들며 사는 일, 그것이 아름다운 삶이라고 할 수 있지." (p.35)
시인은 남편이 죽고 5년 뒤에 유방암 수술을 받았다. 절규에 가까운 이 책을 읽을 때마다 나는 이따금 생각하곤 한다. 고통을 부여잡고 고통과 함께 더 깊이 가라앉을 것이냐, 아니면 견디기 힘든 고통에도 불구하고 내 삶은 마치 고통과는 일절 관련이 없는 것인 양 유리된 채, 의식적으로 고통을 밀어내면서 살아갈 것이냐 하는 문제는 다만 내 선택의 영역으로 남겨진 게 아니냐고 말이다.
"나는 세상에 관심이 없었고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고 살았다. 내가 언제 대학을 다녔으며 내가 언제 시인이었던가. 내가 언제 꿈이 있었으며 내가 언제 인간에 대한 이상이 있었던가. 내 머리 위에 언제 푸른 하늘이 있었으며 해는 정녕 날마다 떠오르는 것인지 나는 몰랐다." (p.178)
시인은 '튀고 번뜩이고 남들의 시선을 끌며 빛나는 총천연색 인생은 좋은 삶이 아니'라고 말한다. 자신의 간절한 바람에 신의 가호가 더해져 남 부러울 것 없이 찬란하게 빛나는 총천연색의 인생은 좋은 삶이 아니란다. 자신의 삶을 고통의 크기를 반감시키거나 희생으로 점철되었던 시인의 삶을 미화하기 위해서 그렇게 말했던 것은 아니다. 딸 같은 제자 희수에게 보내는 편지글 형식의 산문에서 시인은 고통이 극에 달했을 때 어쩔 수 없이 불거져 나오던 자신의 이기심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눈물을 섞은 고해성사가 이보다 더 안타까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불행하지 않았을 것이다.이 세상에 절체절명으로 불행한 일은 없다. 사람들은 아직 벗어날 방도가 있는데도 너무 일찍 절망하는지 모른다. 인간은 희망에 속는 일보다 절망에 속는 일이 더 많다. 내가 그랬다.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파 너무 빨리 나는 불행하다고 외쳐 버렸는지 몰라. 그러고는 지쳐 쓰러지고 희망이 없다고 단정했는지 모른다." (p.257)
인간은 타인의 고통을 통해 스스로의 위로를 구한다. 고통의 강도가 크면 클수록 위로의 크기 역시 비례하여 증가한다. 그러므로 누군가의 고통은 반드시 알려져야 한다. 그 고통으로 인해 세상은 잠시 슬퍼하다가도 다시 용기를 얻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고통으로 점철되었던 시인의 삶이 우리의 가슴속에서 세상을 향한 원망의 칼끝을 무디게 하고 닫혔던 마음의 문을 열어젖히는 것처럼 당신의 고통은 순결한 것이다. 결코 헛되지 않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