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외출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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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럼없는 시간이 또다시 봄을 알려 왔다. 아내의 부재와 함께 맞는 낯선 계절. 지난해 아내는 혼자서 맞아야 하는 낯선 계절들을 선물처럼 한아름 남겨 놓은 채 이 세상과 이별했다.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의 준칙 앞에서 나는 또다시 무너져 내리고 있다. 만발한 목련이 왠지 낯설고, 어제오늘 이어지는 꽃샘추위도 무덤덤하다. 나는 그렇게 예년에 없던 탈색된 봄을 갓 고등학생이 된 어린 아들과 함께 맞는다. 시간의 미끄럼틀을 한바탕 신나게 미끄러져 내려가면 그리운 아내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있을까.

 

마스다 미리의 에세이 <영원한 외출>을 읽었던 건 꽤나 오래 전의 일이다. 리뷰를 남겨야지 생각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감당할 수 없는 슬픔 앞에서 나는 번번이 무너졌다. 속절없는 시간만 흐르고 슬픔은 잦아들지 않았다. 먹구름 사이로 언뜻언뜻 비치는 오늘의 여린 봄햇살처럼 눅진한 슬픔의 시간 속에서 푸석한 시간들이 간간이 지나가는 동안 나는 마스다 미리의 에세이 <영원한 외출>을 애써 외면한 채 그리운 이의 얼굴을 차마 그리워할 수 없었다.

 

"마음속에 구멍이 뚫린 것 같다는 비유를 하지만, 아버지의 죽음으로 내 마음속에 구멍이 뚫린 것 같았다. 그것은 그리 크지 않은 나 혼자 쑥 내려갈 수 있을 정도의 구멍이다. 들여다보면 바닥은 보이지 않는다. 깊이도 알 수 없다. 한동안은 그 구멍 앞에 서 있기만 해도 슬펐다. 그것은 추억의 구멍이었다. 구멍 주위에 침입방지 철책이 있어서 안으로는 도저히 들어가지 못한다." (p.155)

 

자식이 없었던 삼촌의 죽음과 곧이어 맞이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작가는 담담한 필체로 말하고 있다. 만화로만 읽어내던 작가의 마음을 그림이 없는 산문으로 읽는다는 건 왠지 낯설기만 했다. 그럼에도 감정이 깃들지 않은 듯한 단문의 간결한 문장들이 오히려 더 슬픔을 자아내게 한다고 느꼈던 건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암 말기 진단을 받은 아버지가 퇴원하여 오사카의 집에 머무는 동안 작가는 아버지가 좋아하던 음식을 사 가거나 아버지의 어릴 적 추억들을 들으며 남은 시간들을 보낸다.

 

"소중한 사람을 이 세상에서 잃었다고 해도 '있었던'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알고 있으니 괜찮다. 그것이 흰나비를 대신하는 나의 이야기였다. 이야기의 힌트는 바깥에, 사람 수만큼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p.98)

 

지난해 가을,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내가 처음으로 마주했던 절망은 아내에 대해 궁금한 게 있어도 이제 더 이상 물어볼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는지, 아들이 어떤 사람을 아내로 맞이했으면 하고 바라는지,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늙어갔으면 좋을지, 그 어떤 사소한 질문도 내게 답을 해줄 사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그 막막함. 아내가 살아 있을 때 나는 왜 진작 그런 질문들을 묻지 않았을까 하는 자책은 깊은 회한으로 밀려왔다.

 

"슬픔에는 강약이 있다. 마치 피아노 리듬처럼 내 속에서 커졌다가 작아졌다. 커졌을 때에는 운다. 시간이 지나면 그런 파도도 사라질 거라는 예감과 함께 슬퍼하고 있다. 구름이 끼어서 신칸센에서 후지산은 보지 못했다. 대신, 오렌지색 아름다운 저녁놀이 펼쳐졌다. 창에 이마를 대고 바라보았다. 이렇게 예쁜 저녁놀도 아버지는 이제 보지 못한다. 죽음이란 이런 것이구나 새삼 생각했다." (p.73~p.74)

 

작가는 아버지의 죽음과 그로 인해 남겨진 가족이 견뎌야 하는 슬픔에 대해,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오래된 기억들을 아주 담담하게 말하고 있다. 다른 가족과 떨어져 장녀인 마스다 미리와 함께 있을 때는 은근히 허세를 부렸던 아버지, 서로 데면데면 지내면서도 사랑하는 마음을 언뜻언뜻 보여주었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떠나보낸 후 혼자 남겨진 작가의 어머니와 자신의 일상.

 

"본가에서 엄마와 둘이 보내는 날이 2, 3일 계속되자, 도쿄에서의 내 생활이 희미해졌다. 점점 엄마의 세계로 들어가서, "여러 가지 일들이 지나갔네." 하며 베란다에서 저녁놀을 바라보는데, 마치 노년을 보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직 40대라는 사실에 툭 하고 '시간'을 선물 받은 기분이었다." (p.111)

 

나는 아내가 떠난 후에야 비로소 법정 스님의 유언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동안 풀어놓은 말빚을 다음 생에 가져가지 않으려 하니 부디 내 이름으로 출판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아 달라'고 했던 유언. 나에 대한 기억은 나와 조금이라도 추억을 공유했던 사람들의 기억으로 그치는 것으로 족할 뿐 나와 조금의 인연도 없는 먼 후대의 사람들에게조차 내 이름 석 자가 정형화된 문구로 기억된다는 건 축복이 아니라 끔찍한 일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 스님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스산한 봄바람에 어깨가 움츠러들었던 오늘, 나는 오래전에 읽었던 <영원한 외출>에 대한 감상을 쓰기 위해 용기를 냈다. '이 카레는 아마 엄마가 영원한 외출을 하기 전에 자식에게 남긴 마지막 음식이지 않을까' 하는 대목을 사카이 준코의 에세이에서 읽었다는 마스다 미리. 아내가 끓여주던 떡국을 몹시도 좋아했던 나와 아들. 아내가 끓여준 떡국이 사무치게 그리운 오후. 그런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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