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 - 권기태 장편소설
권기태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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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인이 주목하는 남아공 출신의 괴짜가 있다. 미래 과학이나 우주에 대해 특별한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한 번쯤 들어보았음직한 이름, 그의 이름은 앨런 머스크이다. "(나는)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 봅니다. 그러한 가치를 눈에 보이는 형태로 만들면 사람들은 기꺼이 돈을 지불합니다. 나는 돈이라는 것이 사회(다른 사람들)가 필요로 하는 방향으로 흐른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했던 그의 말은 진실일까? 앨런 머스크의 말은 일정 부분 진실이라고 나는 믿는다. 지구 바깥에서 지구를 바라볼 수 있는 특권은 그 희귀성 때문에 사람들의 꿈이 되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호기심과 궁금증으로 인해 더 큰 꿈으로 자라기도 하기 때문이다.

 

권기태의 소설 <중력>에는 우주인에 도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책을 읽는 독자들은 어쩌면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인을 양성하기 위해 260억 원이라는 거액을 투자했던 2006년의 일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나라 국민 전체의 꿈이자 최종 후보로 올랐던 고산, 이소연 두 사람의 꿈이었는지도 모른다. 2007년 9월 최종 후보자로 낙점되었던 고산 씨는 2008년 3월 관련 보안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이소연 씨로 교체되고 만다. 우주선 탑승까지 한 달을 남겨둔 시점이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박사과정에 있었던 이소연 씨는 그렇게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인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유명인이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2012년 8월 미국으로 건너가 경영학 석사(MBA) 과정을 밟았고, 이듬해에는 한국계 미국인과 결혼하여 미국에 정착하였다. 그와 함께 우리는 260억 원을 들인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인을 잃었고, 이소연 씨에 대한 먹튀 논란과 거센 비난이 이어졌다.

 

"나는 내 속에 열정이 숨어 있는 것을 안다. 가끔은 달궈진 마음을 온통 쏟아부을 그 무엇을 기다린다는 것을. 그럴 때 나는 내 몸 이상이며 내 마음 이상의 존재가 된다는 것을. 그런 꿈 없이는 가능성의 흥분이 생겨나지 않는다. 만일 내가 비행기를 만들고 싶다면 가장 먼저 지녀야 할 것은 엔진이나 두랄루민 패널이 아니다. 저 하늘 너머에 대한 상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p.38)

 

소설에는 생태보호연구원의 과장인 이진우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는 퇴직한 아내와 딸 둘이 딸린 가장이다. 대학 시절부터 우주인이 되는 꿈을 꾸었던 그는 석사 전공을 식물학으로 정하고 나서는 우주선 적재함에서 여러해살이 식물들을 키우는 상상을 하면서 마음 속에서 우주 정원사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우주인이 되기 위해 한국에서의 전기공학연구원을 그만두고 미국으로 건너가 항공공학을 전공하는 김태우도 등장한다. 그뿐만 아니라 유일한 문과 출신이자 '투어리스트'라는 벤처 회사에 다니는 정우성, 유일한 여성 후보이자 마이크로로봇연구단의 연구원인 김유진이 이진우, 김태우와 함께 최종 후보가 된다.

 

"생각해보면 나는 경쟁심도 만만치 않았고 질투를 하기도 했다. 낙오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속이 부서지는 느낌도 받았다. 하지만 남이 잘 해놓은 것이 사라지기를 바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렇게 파괴돼서라도 나와 비슷해진다면 하고 바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게 공평하고, 공정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했더라면 나는 이 정도만큼도 살아오지 못했을 것이다." (p.309)

 

네 사람은 최종 후보자가 되기 위해 끝없이 경쟁하고 치열하게 노력한다. 그 과정은 혹독하다. 작가는 너무 세밀하다 싶을 정도로 전 과정을 집요하게 다룬다. 그리고 매 단계를 넘어설 때마다 그들 각자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그리고 어떤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계속해서 되짚는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들 각자의 인생과 흡사하다. 좌절하고 낙담하면서도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용기는 계속할 힘이 아니다. 힘이 없어도 계속하는 것이다. 우레 같은 외침만 용기가 아니다. 쉬었다가 다시 해보자. 나지막이 속삭이는 것도 용기다." (p.318)

 

소설을 구상하고 취재를 시작한 지 십삼 년 만에 출간되었다는 이 소설은 작가가 집필하는 사 년 동안 적어도 서른다섯 번을 개고했다고 한다. 실로 지난한 작업이었음을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토로한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답답하거나 어둡지 않다. '이 겨울이 지나면 우리의 희망은 응달이 걷힌 눈처럼 녹아서 또 시내로 흐르고, 강이 되어서 봄이 숲에 들게끔 숨을 불어넣을 것'이라는 작가의 바람처럼 이 소설을 읽게 될 많은 사람들의 꿈도 그렇게 영글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어쩌면 가능성을 먼저 생각함으로써 지난한 과정을 참게 되는지도 모른다. 중력은 날아오르려는 자에게 큰 짐이 되지는 못한다. 중력조차 가벼워지는 당신의 꿈은 도대체 무엇이냐고 작가는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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