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들이 난세를 만든다
강철수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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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표현함에 있어 판에 박은 듯이 등장하는 말이 있다. '가깝고도 먼 나라'. 지리적으로는 가깝지만 국민 정서상으로는 아주 멀기만 하다는 뜻이리라. 그런 감정은 한·일 양국 공히 대를 이어 전승된다. 마치 국민 전체의 유전자 속에 일본에 대한 적대감이 고고히 흐르고 있는 것처럼. 또는 일본에 대한 증오나 적대감을 담은 마이크로칩을 국민 개개인의 몸속에 심어 놓은 것처럼. 그것은 마치 대한민국 국민임을 상징하는 정서적 신분증과 같다.

 

"인간의 DNA에 침략, 살인, 충신, 간신 따위는 없다. 그러나 한일 양국 역사의 두루마리를 펼치면 온통 피와 눈물, 참혹한 주검들의 홍수다. 나는 낡고 빛바랜 기록에 의지하며, 때로는 반신반의하며, 서울에서 도쿄로, 에도(江戶)에서 한양으로, 도쿄에서 경성(京城)으로, 다시 조선에서 오사카로. 오늘은 이것을 알아보고 다음 주는 저 사건을 들춰보고…10년…다시 20년…되돌아보니 장장 30년을 집시처럼, 떠돌이 무사처럼 일본 전역을 훑었다." (p.13)

 

만화가 강철수의 에세이 <바보들이 난세를 만든다>는 손과 머리로 썼다기보다 그의 발과 눈으로 쓴 기록이라고 보는 게 타당할 듯하다. 작가는 직접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중심으로 해방 후 많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전혀 달라진 게 없는 작금의 현실을 되짚어보며 도대체 어떤 이유로 한일 양국은 서로 반목한 채 지금에 이르게 되었을까 하는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진다. 단지 과거의 식민 지배와 역사적 불협으로 인한 반목이라면 두 나라의 국민들이 용서와 화해, 평화와 번영으로 나아갈 길은 없을까 모색해보자는 취지인 것이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 바보스러울 정도로 남을 잘 믿고, 잘 속는 한국인.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지난 일은 금세 잊는 한국인. 그렇게 사람 좋은 순둥이들이 그렇게 자주 일본을 드나들면서 일본에만은 마음 전부를 열지 않았다." (p.124)

 

사실 일본에 대한 한국인의 정서는 한국인 개개인에게 직접적인 피해나 직접적인 이득에 의한 결과라고는 보기 어렵다. 예컨대 친일을 했던 선조들에 의해 대대로 떵떵거리며 사는 극소수의 친일 자손들도 있고, 항일 투쟁으로 가산을 탕진한 바람에 대대로 어렵게 살아온 독립운동가의 후손들도 있기는 하다. 그들에게 있어 일본에 대한 애착이나 증오는 직접적인 결과에 의한 감정일 수 있으나 대다수의 한국인이 느끼는 일본에 대한 적개심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정의감이나 교육적 효과일 수도 있고 인간의 속성상 사랑보다는 분노에 민감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제발 양국이 하루만이라도 그놈의 스마트폰 내려놓고 육성을 주고받는 순수 인간으로 돌아갈 수 없을까. 너무도 부끄러운 억지 일란성 쌍생아 그만 끝내고 좋은 나라, 좋은 것만 공유할 수 없을까. 두 나라 손을 꽉 잡고 지구 멸망 촉진제 플라스틱 용기 추방에 나설 수 없을까. 비닐봉지를 10퍼센트대로 낮추고 '시장바구니' 옛날로 돌아갈 수 없을까. 서로 손가락질 그만하고, 축구나 야구로 맞붙으면 서로 박수쳐주고 환호해주는 착한 쌍둥이, 예쁜 쌍둥이가 될 수 없을까." (p.238)

 

작가의 바람은 한낱 공허한 바람으로만 그칠 수도 있다. 일본의 정치지형이 바뀌지 않는다면 말이다. 일본을 움직이는 힘은 일본 국민에 의한 민의라기보다 소수의 정치인들에 의한 가공의 힘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벌어진 일만 보더라도 그러한 사실을 여실히 엿볼 수 있다. 아이돌 가수 BTS의 일본 방송 출연을 갑작스럽게 취소한다거나 순회공연이 열리는 도쿄돔에서 혐한 시위를 펼치는 등 일본 정치인들에 의한 반인륜적 행위가 멈춰지지 않는다면 한일 양국의 화해와 공동 번영의 미래는 기대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오늘은 대입 수능일, 필수 과목인 한국사 시험을 치르면서 일본에 대한 적개심을 은연중에 학습할지도 모르지만 결국 모든 것은 일본 정치인들의 결단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일본 청소년들이 배우는 역사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이 배우는 역사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가해국의 논리와 정서를 피해국의 국민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극우든 극좌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이념이나 사상은 결국 망하고 만다.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이지만 일본 정치인들의 대오각성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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