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설계
스티븐 호킹.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지음, 전대호 옮김 / 까치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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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말보다 표정이 더 많은 것을 설명할 때가 있는 것처럼 자연계의 현상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는 것보다 한 번의 수학적 증명만으로 모든 것을 명확히 할 수가 있다. 그래서였을까. 근대 과학의 아버지인 갈릴레이는 신은 수학이라는 언어로 자연을 설계했다고 믿었다. 우주에 대한 갈릴레이의 사유는 다분히 철학적이고 때로는 문학적이기도 하지만 현대 과학 또한 그로부터 발원되었음을 상기할 때 그가 했던 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철학은 우리 눈으로 일찍이 본 적 없는 우주라는 위대한 책에 쓰여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먼저 책에 쓰인 언어를 익히고 등장인물의 특징을 파악해야만 한다. 그 언어는 수학이며, 등장인물은 원 같은 도형이다. 이를 모르고서는 인간의 힘으로 단어 하나도 이해할 수 없고, 어두운 미로를 헛되이 헤매게 될 뿐이다."

 

그러나 수학을 익히고 도형의 성질을 파악한다 해도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특정한 법칙들, 또는 그들의 존재 이유를 밝혀낼 수는 없다. 우리가 철학적 과제로만 미뤄두었던 그러한 근원적인 질문들은 섣불리 대답하기도 어렵지만 현재의 과학 수준에서도 이른 감이 없지 않은 듯하다. 우주와 생명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 철학과 신학의 문제에서 현대 과학의 영역으로 넘어오면서 21세기 최고의 물리학자 스티브 호킹과 믈로디노프는 그들의 저서 <위대한 설계>에서 양자이론을 가지고 단순하게 설명한 바 있다. 물론 그에 대한 대답은 여전히 미진하여 책을 읽는 독자들 역시 명확히 납득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지만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고 그에 대한 대답 역시 꾸준히 진화하리라는 희망과 기대가 책 속에 녹아 있다.

 

"왜 무(無)가 아니라 무엇인가가 있을까?

왜 우리가 있을까?

왜 다른 법칙들이 아니라 이 특정한 법칙들이 있을까?" (p.15)

 

<위대한 설계>는 위와 같은 질문으로 시작한다. 신체에 내려진 천형(天刑)에도 불구하고 만물의 근원을 향한 탐구를 포기하지 않았던 호킹은 물리공식의 제1 조건으로 '우아함'을 들 정도로 그의 삶 전체를 통하여 우아한 사유로 일관했다. 오직 사유의 힘에만 의지하여 특이점 이론과 호킹 복사로 대표되는 빅뱅 우주론의 기초를 수립했을 뿐만 아니라 우주의 시초와 만물의 근원을 밝힐 궁극의 물리법칙을 확신하고 이를 밝히는 데 평생을 쏟아부었다.

 

"일부 사람들은 시간이 빅뱅보다 더 멀리 거슬러 올라간다고 보는 모형을 지지한다. 그런 모형이 현재의 관찰들을 더 잘 설명할지 여부는 아직 불분명하다. 왜냐하면 우주의 진화를 지배하는 법칙들은 빅뱅 시점에서 무력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일 그렇다면, 빅뱅 이전의 시간을 포괄하는 모형을 창조하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다. 왜냐하면 우주 진화의 법칙들의 효력이 빅뱅 시점에서 없어진다면, 빅뱅 이전의 존재는 관찰 가능한 영향력을 현재에 끼치지 못할 테니까, 그냥 빅뱅이 우주의 창조였다는 생각을 유지해도 아무 지장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p.64)

 

이 책에서 전개되는 논의의 상당 부분은 주로 M이론(M-theory)에 의지한다. 저자가 생각하기에 M이론이야말로 궁극의 이론이 갖춰야 한다고 우리가 생각하는 속성들을 모두 갖춘 유일한 모형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속한 우주와 모든 생명이 신에 의해 창조된 것인가 아니면 자연법칙에 의해서 스스로 발생한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는 데에도 M이론이 유효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저자는 여러 물리 법칙들과 과학 발전의 계보를 들여다보고 있다.

 

"M이론은 아인슈타인이 발견하기를 원했던 통일이론이다. 우리 인간 - 인간은 자연의 기본입자들의 집합체에 불과하다 - 이 우리와 우리 우주를 지배하는 법칙들에 대한 이해에 이토록 바투 접근했다는 사실은 위대한 업적이다. 그러나 아마도 진정한 기적은 논리에 대한 추상적인 숙고에 의해서 우리가 보는 놀라운 다양성으로 가득 찬 광활한 우주를 예측하고 기술하는 유일무이한 이론이 나오는 것일 것이다. 만일 그 이론이 관찰에 의해서 입증된다면, 그 이론은 3,000년 넘게 이어져온 탐구의 성공적인 결과가 될 것이다. 우리는 위대한 설계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p.228~p.229)

 

인간의 위대함은 순간의 업적이나 성과에 의해 평가되지는 않는다. 50여 년의 긴 시간 동안 루게릭 병을 이겨내며 천문학과 물리학의 발전에 지대한 업적을 남기고 떠난 스티븐 호킹 박사는 그의 업적도 업적이려니와 병에 굴하지 않았던 그의 열정과 끝없는 탐구정신으로 인해 세계인으로부터 더욱 존경을 받는 게 아닌가 싶다. 우주의 시작과 끝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며 우주에 대한 개념을 재정립했던 위대한 과학자의 죽음에 대해 우주학자 로렌스 크라우스는 "별 하나가 막 우주로 떠났다."고 말했다.

 

서둘러 피었던 봄꽃들이 지고 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한 해의 끝인 겨울과 시작을 알리는 봄이 언제나 맞닿아 있음을 알기에 눈처럼 쏟아지는 분분한 낙화를 보면서도 서럽지 않은 것이다. 우주의 시작과 끝도 계절의 순환처럼 정확히 맞닿아 있는 것은 아닌지 호킹 박사는 묻고 있다. 그가 우리에게 남겨준 것은 우주에 대한 여전한 호기심이 아닐까. 호킹 박사는 이 책을 읽는 독자 누구에게나 위대한 설계를 이해하는 궁극의 이론을 꿈꾸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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